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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ONF 김하늘①] 왜 하필 쌀이며 무엇을 남길 것인가

무게로 값 매겨지는 쌀 유통구조, 원인은 '무관심'…이제는 양보다 질적 변화에 주목해야

2021.10.19(Tue) 11:16:00

[비즈한국] 내 직업은 ‘라이스큐레이터’. 나는 쌀생산 데이터를 기반으로 쌀을 큐레이션하는 일을 한다. 쌀도 우리 인간처럼 개체마다 타고난 개성들이 있다. 라이스큐레이터는 쌀의 고유한 품종 데이터와 생육 및 생산 데이터를 종합 분석하여 용도와 목적에 따라 상품 기획 및 가공, 유통한다. 이렇게 일목요연하게 내 업을 정리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난 농부도 아니고 농대를 나온 것도 아니고 밥소믈리에​도 아니다.

 

밥소믈리에는 일본 취반협회가 쌀에 대한 지식, 밥을 지을 때의 과학적 기술,밥의 영양소, 위생관리 등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맛있는 밥을 평가할 수 있는 사람에게 주는 자격을 말한다.

 

대신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 스위스, 필리핀 등 어디에 살든 단 한 끼도 허투루 먹은 적 없다. 먹는 게 업이 되면 행복하겠다 싶어 호텔, 음식점, 외식 프랜차이즈 기업에서 갖가지 푸드 비즈니스를 경험했다. 허구한 날 시장조사를 핑계로 하루 평균 다섯 끼를 먹었다. 그런데 그때마다 밥맛 없는 게 불만이었다. 내가 쌀을 선택한 건지 쌀이 내 삶으로 굴러들어 온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쌀로 밥벌이를 하고 있는 건 순전히 먹성, 재미, 소비자 관점의 호기심 덕분이다. 그 세 가지가 나를 움직이는 밥심이었다. 하지만 밥심은 원동력일 뿐 길을 가르쳐주지 않는다. 그런지라 격렬하게 헤맸다. 진로 탐색의 시간이라 아름답게 말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명백한 방황이었다.

 

“밥맛 없어서 왔습니다.” 

 

“혼합미 때문입니다.” 

 

품종 연구자, 육종가, 농부, 정미업자, 유통업자, 즉석밥 연구원 및 마케터 등 밥맛에 일가견이 있는 전문가들을 찾아 인터뷰했다. 대부분 전문가들은 밥맛 없음에 주된 원인으로 ‘혼합미 유통’을 꼽았다. 그렇다며 혼합미는 무엇이며 왜 만들어질까? 

 

밥 지을 준비를 해보자. 쌀밥의 주재료는 쌀이다. 일단 개인의 취향과 용도에 맞는 단일 품종의 쌀을 선택한다. 품종 고유의 특성을 잘 지켜 좋은 밥맛을 낼 수 있도록, 깨지지 않고 금이 가지 않은 온전한 상태의 쌀 즉, ‘완전미’가 많아야 한다. 이것이 쌀의 등급을 결정하고, 특상일수록 밥맛이 좋아진다. 그리고 도정 일자가 구매 시기에 가까울수록 좋으며, 되도록 일주일 안에 도정된 쌀을 구매하기를 권장한다. 

 

혼합미는 생산지, 생산자, 품종, 도정 일자 등이 섞인 쌀을 뜻한다. 그렇다면 혼합미는 나쁜 것인가? 왜 섞었느냐에 따라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다. 문제는 정체불명의 쌀을 마구잡이로 섞었을 때 발생한다. 

 

쌀은 품질이 아닌 무게로 값이 매겨진다. 매년 쌀값이 폭등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쌀의 품질이 올라가진 않는다. 생산자는 고품질의 다양한 품종의 쌀을 정성 들여 키우지 않아도 되고, 유통업자는 마구잡이로 저품질의 쌀을 섞어 무게와 마진을 늘려 유통하고, 소비자는 매번 다른 컨디션의 저품질 쌀을 품질에 맞지 않는 값을 주고 살 수밖에 없다. 왜 그럴까? 정책 대상 품목이기에 가격결정에 많은 요인이 작용하는데 이를 모두 차치하고, 소비자가 쌀에 관심이 없는 게 가장 큰 이유다. 

 

쌀로 배를 채우던 시대는 끝났다. 바야흐로 미식의 시대다. 더불어 코로나19로 우리는 일상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고, 지나쳤던 일상에 공을 들이기 시작했다. 4년 전 페이스북을 통해 ‘쌀도 커피처럼 품종이 다양하다’는 내용의 포스팅을 했을 때, 음식 전문가들로부터 관종이니 사기꾼이니 하는 말을 많이 들었다. 4년이 지난 지금, 쌀시장은 의미 있는 성장을 했다. 부모님 때부터 구전되어 오던 지역 브랜드 쌀이 아닌, 지역과 품종을 내세운 다양한 쌀들이 마트 매대를 채우고 있을 뿐만 아니라, 즉석 도정 및 1인 가구를 위한 소포장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도 등장했다.

 

김하늘 라이스앤컴퍼니 대표. 사진=임준선 기자

 

그렇다면 ‘밥맛 없는 나’는 무엇을 해야 하며 무엇을 남길 것인가. 이제껏 발품을 팔며 귀동냥한 쌀 비즈니스의 파이프라인을 톺아봤다. 이 산업에서 필요한 것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소비자로 하여금 쌀에 관한 관심을 끌며 그들과 함께 새로운 쌀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쌀 전문 콘텐츠 크리에이터다. 두 번째는 전국 단위의 쌀 연구 및 생산에서 소비까지 파편화되어있는 구슬을 하나의 이음새로 꿸 수 있는 플랫폼 기업이다. 이걸 추리고 구분하는 데 짧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우리나라에서 쌀은 주식이다. 국내에서 개발된 쌀 품종은 300여 가지로 다양하지만, 그 각각의 특성이 밥으로 뚜렷하게 구분되기 어렵다. 하지만 우리는 다채로운 쌀 문화를 가지고 있다. 이는 익숙하고 친숙하지만 그만큼 바꾸기 어렵다는 걸 말한다. 하지만 뒤집어 봤을 때, 작은 변화가 일어난다면 더욱 더 신선하고 쉽고 빠르게 전파될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결국 한국의 식생활에서 쌀이 차지하는 양적 수치에 질적 변환을 이뤄낼 때, 쌀을 둘러싼 패러다임 시프트 또한 가능해진다.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나의 철학을 오롯이 실현할 때, 라이스앤컴퍼니는 한국 푸드 비즈니스에서 의미 있는 마일스톤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김하늘 라이스앤컴퍼니 대표의 ‘My Story = A Brand Story’​ 강연은 ‘브랜드비즈 컨퍼런스 2021’​ 다시보기 영상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김하늘 라이스앤컴퍼니 대표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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