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오늘도 건설 현장에 출근한 노동자가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 건설업은 우리나라 전체 산업 가운데 사망 사고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현장이다. 우리 사회는 안전이나 보건 의무를 다하지 않아 노동자가 죽는 안타까운 사고를 막기 위해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을 만들어 2022년 1월 본격 시행했다. 하지만 한 해 건설 현장에서 목숨을 잃는 노동자는 여전히 세 자릿수에 머무르고 있다. 우리 사회는 건설 현장 사망 사고를 줄이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
비즈한국은 노동절을 맞아 이동기 한국노총 한국건설산업노동조합연맹 정책실장과 강한수 민주노총 전국건설산업노동조합연맹 노동안전보건위원장을 만나 건설 현장 중대재해 예방법에 관해 물었다.

Q.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3년이 지났다. 그간 건설 현장에서는 어떤 변화가 있었나.
이동기(이): 건설 현장에서 안전관리자 위상이 높아진 것을 긍정적인 변화로 꼽을 수 있다. 변방에 불과했던 건설사 안전 관리 부서가 지금은 회사 핵심 부서가 됐다. 중대재해 발생의 책임을 사업주가 지게 되면서 그간 비용 문제로 도외시했던 안전관리자와 안전관리부서 지적에 귀를 기울인다. 다만 사고 발생 시 서류만 따져보는 현행 제도 때문에 안전 관리 업무가 서류 중심으로 흘러가는 것은 문제다. 안전관리자들이 서류에 매몰돼 현장에 나갈 시간이 없다고 토로한다. 이들이 실제 현장 안전을 더 살필 수 있도록 불필요한 서류 작성을 없앨 필요가 있다.
강한수(강): 중대재해 발생 책임을 사업주에게까지 확대하면서 안전에 대한 본사 차원의 관심도가 높아진 것은 긍정적인 변화다. 건설 현장 원청이 본사 조직과 체계를 정비하고 현장 재해 위험을 줄이기 위한 계획을 수립해 이를 점검하는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최근 안전 조치 의무를 위반해 중대재해를 일으킨 사업주에 대한 처벌 양상을 보면, 그 수준이 집행유예인 징역형이나 벌금형에 그친다. 중대재해처벌법 위반한 사업주에는 강력한 처벌을 내려 안전한 건설 현장을 만들도록 유도해야 한다.

Q. 한 해 건설 현장에서 목숨을 잃는 노동자가 여전히 세 자릿수로 전 산업 최대다. 현행 안전 제도 중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게 있나.
강: 노동자의 작업중지권이다. 노동자가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다고 판단해도 불이익을 우려해 제때 작업중지권을 행사하지 못한다. 회사가 보기에는 위험하지 않은데 작업중지권을 행사하겠다고 나섰다가 해고나 징계, 업무방해에 따른 민형사 소송에 휘말리는 경우도 있다. 노동자가 불이익에 대한 걱정 없이 작업중지권을 제때 사용할 수 있도록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 노동자의 정당한 작업중지권 행사에 불이익을 주는 사업주를 처벌하는 규정도 필요할 것 같다. 산업재해 수습 비용이 예방 비용보다 크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 현재 다수의 건설 노동자들은 위험을 인지하고도 불이익을 우려해 작업중지권을 쓰지 못한다. 대형 공사에서는 눈치를 보는 수준이지만 300억 원 미만 중소형 공사에서는 작업중지권을 쓴다고 하면 ‘현장을 떠나라’는 분위기이기 때문에 엄두조차 못 낸다. 건설사들은 노동자의 작업중지권 악용을 우려하는데, 노동자가 인지한 위험을 감리단이 검토하는 방식으로 작업중지권이 행사된다면 서로의 우려를 보완할 수 있을 것 같다. 건설 현장 위험은 일하는 노동자가 가장 잘 안다.
노동자(근로자)의 작업중지권은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 노동자가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보장되는 노동자 권리로, 노동자는 작업 중지권을 행사할 때 지체 없이 그 사실을 관리감독자에게 보고해야 한다. 관리감독자는 이 보고를 받으면 안전 및 보건에 관해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하고, 사업주는 작업중지권을 정당하게 행사한 노동자에게 해고나 그 밖의 불리한 처우를 해서는 안 된다. 다만 작업중지권을 행사한 노동자에게 불리한 처우를 한 사업주를 처벌할 규정은 현재 없다.

Q. 건설 현장 중대재해를 막기 위해 추가로 도입이 필요한 제도가 있다면.
이: 공사 금액 50억 원 미만 현장에도 안전관리자 선임이 필요하다. 지난해 건설 현장에서 목숨을 잃은 노동자 70%가량이 공사금액 50억 원 미만 현장에서 사망했는데, 이런 곳은 아직 안전관리자 선임 의무가 없다. 더욱이 건설 현장에서 일어나는 사망 사고 원인 1위는 사실상 가장 예방하기 쉬운 ‘추락’이다. 현장에서 기본적인 안전 장비나 장치를 점검하는 안전관리자가 있다면 건설 현장 재해는 크게 줄어들 것이다. 또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으로 안전관리자 수요가 늘어나면서 인력난이 심화하고 있다. 안전관리자 인력난 해소를 위한 정부 지원이 병행돼야 한다.
건설 현장 안전관리자 선임 의무는 공사금액 50억 원 이상 사업장에 한정된다.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에 따라 공사금액 50억 원 이상인 공사를 수행하는 건설 현장 사업주는 사업주나 안전보건관리책임자를 보좌하고 관리감독자에게 지도·조언하는 ‘안전관리자’를 둬야 한다. 법이 정한 안전관리자 수는 공사금액이 커짐에 따라 1명(50억~120억 원)에서 11명 이상(1조 원 이상)으로 늘어난다. 하지만 50억 원 미만 사업장에는 아직 안전관리자 선임 의무가 없다. 지난해 공사금액 50억 원 미만 현장에서 목숨을 잃은 노동자는 181명으로 전체 건설업 사망자의 66%를 차지했다.
강: 안전과 관련한 발주처 책임과 의무를 새롭게 규정해야 한다. 사실상 건설 현장 안전에 영향을 미치는 근본적인 변수는 공사 기간과 공사비다. 공정별로 안전을 확보하는 데 필요한 필수적인 공사 기간과 공사금액을 규정하고 발주 시 이를 지키도록 만드는 규제가 필요하다. 적은 비용으로 빨리 공사를 마무리 짓도록 발주가 나면 하도급업체로 갈수록 안전에 신경 쓸 여력은 사라진다. 원청의 책임을 규정한 중대재해처벌법에서 발주처에 대한 부분이 빠진 게 아쉽다. 중대재해처벌법 개정이나 별도의 건설안전특별법 제정을 통해 안전과 관련한 발주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
차형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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