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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식이법' 한계 극복할 '보행안전법 개정안', 어떤 내용?

보행자·차량 공존하는 '보행자 우선도로'로 문제 해결…이미 서울 87개 운영

2019.12.20(Fri) 18:46:06

[비즈한국] 이른바 ‘민식이법’으로 불리는 도로교통법 개정안과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 통과로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그러나 민식이법과 함께 스쿨존 사고를 예방할 또 다른 법은 현재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상황이다.

 

현재 계류 중인 해당 법안은 ‘보행안전 및 편의증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다. 주승용 국회 부의장(바른미래당)이 대표 발의한 법안이다. 현행법에 보행자의 안전과 편의를 먼저 고려하는 ‘보행자 우선도로’ 정의 조항을 신설하자는 게 골자다.

 

덕수궁 돌담길로 잘 알려진 서울 중구 서소문동 일대. 보도에 연석이 없고, 보행자가 차량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 보행자와 차량이 공존하는 네덜란드 보행자 우선도로 본엘프와 흡사하다. 사진=박찬웅 기자


흥미로운 대목은 보행자 우선도로가 보행자와 차량을 구분 짓지 않는다는 점. 전문가들은 보행자와 차량이 공존하는 게 오히려 보행자 사고를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가령 네덜란드에서 1970년대 처음 도입한 ‘본엘프’는 도로에 연석을 제거해 보행자와 차량이 같은 높이에서 통행하게 한 보행자 우선도로의 한 유형이다. 스쿨존에 펜스를 설치해 보행자와 차량을 구분하는 국내 유형과는 상반된 개념이다. 

 

단, 공존에는 조건이 있다. 보행자는 본엘프에서 마음껏 뛰어다닐 수 있지만, 본엘프에 진입한 차량은 보행자보다 빨리 달릴 수 없도록 속도를 시속 5~7km 정도로 제한한다. 여기에다 지그재그식 도로, 과속방지턱, 화분 등 운전자가 스스로 주의할 수 있는 장치를 설치한다. 또 지정된 곳만 주차할 수 있도록 제한하고, 본엘프 진출 입구를 다른 곳과 구분 짓는 게 특징이다.

 

오성훈 건축도시공간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예전에는 안전을 위해 보도와 차도를 구분해야 한다는 인식이 대부분인 터라, 스쿨존도 아무리 도로가 좁더라도 보도에 울타리를 설치하고 감시 카메라를 달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며 “문제는 스쿨존 앞 보도 폭이 좁아 보행에 불편함을 느낀 사람들이 많다는 점이다. 차도로 뛰어든 사람들을 달려오는 차량으로부터 보호할 방법이 없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유정훈 아주대학교 교통시스템학과 교수는 “사람들은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곳에서 오히려 조심한다. 본엘프와 같은 보행자 우선도로는 운전자는 물론 보행자까지 서로를 의식하며 조심스럽게 행동할 수 있도록 유도할 좋은 모델”이라며 “지금까지는 모든 도로가 차량 이동을 중시하는 관점에서 설계됐지만, 스쿨존만큼은 보행자 중심으로 탈바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건축도시공간연구소가 발표한 ‘2017 보행자 우선도로 현황과 평가’에 따르면 시민들이 평가한 서울 은평구 연서로35길의 전반적인 만족도는 사업 시작 전 63.08점에서 87.01점으로 상승했다. 안전성은 63.93점에서 85.98점으로, 편리성은 63.42점에서 86.67점으로 쾌적성은 59.63점에서 87.69점으로 증가했다. 자료=2017 보행자 우선도로 현황과 평가

 

보행자 우선도로는 서울시만 87개소가 설계됐을 정도로 국내에도 상당수 존재한다. 행정안전부 주관으로 설계된 보행자 우선도로는 15곳 정도다. 시민들의 만족도 역시 높다. 건축도시공간연구소가 발표한 ‘2017 보행자 우선도로 현황과 평가’에 따르면 서울 은평구 연서로35길의 경우 보행자 우선도로 사업 시작 후 시민들의 전반적인 만족도뿐만 아니라 안정성, 편리성, 쾌적성 부분에서 만족감을 나타낸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는 스쿨존 앞에 조성된 보행자 우선도로는 국내에서 손에 꼽힌다는 점이다. 이는 국토교통부가 시행하는 ‘도시·군 계획시설의 결정·구조 및 설치기준에 관한 규칙’ 제19조2에 따라 각 지방자치단체는 차량과 보행자의 통행을 구분하기 어려운 이면도로에만 보행자 우선도로를 설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보도와 차도가 함께 있는 도로를 보행자 우선도로로 설계할 수 없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보행안전법 개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 개정안이 보행자 우선도로에 대한 개념을 더 포괄적으로 정의했기 때문이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이면도로가 아니더라도 보행자 안전을 우선할 필요가 있는 도로라면 보행자 우선도로로 지정될 수 있다. 

 

오성훈 선임연구위원은 “민식이법도 중요하다. 그러나 이는 부수적인 사안이다. 본질적인 건 스쿨존 앞 도로의 설계를 바꾸는 일이다. 보행자 우선도로 마련으로 안전 사각지대에서 보행자가 법적으로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주승용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이 통과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법안을 발의한 주승용 의원도 “차량 중심이 아닌 보행자 중심으로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 처음에는 적지 않은 이가 복잡하고 불편하게 느낄 것이다. 특별히 규제하지 않더라도 보행자를 우선으로 생각할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며 “20대 국회 내에 임시국회가 얼마나 열릴지 모르겠지만 그 안에 통과시킬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박찬웅 기자 rooney@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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