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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와이너리] 서울로7017를 부유하는 콘크리트 화분의 '거추장스러움'

1970년대 세워진 고가도로가 17개의 보행길로 재탄생…동서남북 조망 가능한 '천혜의 입지' 못살려

2023.09.01(Fri) 16:09:00

[비즈한국] 경부선 철도는 수많은 사람과 물자를 실어 나르며 도시를 풍요롭게 해 주었다. 그러나 도시 한가운데를 지나는 철도로 인해 서울역 인근이 동서로 길게 양단되는 문제가 생겼다. 1960-70년대는 ‘불도저’​ 김현옥 시장의 지휘 아래 도시 입체화의 기치를 내걸고 수많은 고가도로와 지하차도가 서울 곳곳에 만들어진 시기였다. 그리하여 서울역 앞의 원활한 소통을 위한 고가도로가 추진됐다.

 

회현동과 만리동 사이에 놓인 서울역 고가도로는 1970년 개통되어 오랜 시간 서울역 동서 교통을 잇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여러 갈래로 나뉜 램프 선형은 발전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 건설이 진행된 다른 교량처럼 90년대 말부터 점차 안전성 문제가 제기됐고, 매년 보수공사를 진행했으나 2000년대 들어오면서 결국 차량 통행에 부적합하다는 결론이 났다.

 

옛 서울역 고가도로. 사진=서울시 홈페이지

 

본래 용도를 잃은 서울역 고가도로의 처리를 두고, 주변 지역 도시재생 및 도시자원의 효율적 활용을 위하여 철거 대신 기본 틀을 살리면서 보행길로 활용하는 사업이 추진됐다. 고가의 기본적인 구조는 유지하면서 바닥 판과 일부 램프를 철거하고 상부를 리모델링했다. 새 랜드마크의 이름은 ‘서울로7017’로 명명됐다. 숫자 7017은 완공년도(1970)와 리모델링 년도(2017)를 가리키며, 70년대에 만들어진 고가도로가 17개의 보행길로 다시 태어난다는 의미도 담은 이름이다.

 

7팀을 지명한 국제 공모전에서 당선된 네덜란드 건축 사무소 MVRDV의 설계안 ‘서울 수목원’은 고가도로를 꽃과 나무로 둘러싸인 수목원으로 변신시키자는 계획이었다. 이를 위해 상판에 600개가 넘는 수목 화분을 심고 각종 조명으로 이를 밝혔다.

 

서울로 7017는 수많은 콘트리트 화분이 놓여진 공중정원 콘셉트로 재탄생했다. 사진=서울시 홈페이지

 

이렇게 완성된 서울로7017은 도심 속 거대 공중정원을 연상케 하는데, 나름의 장점이 없는 것은 아니나 장점보다 아쉬움이 많다. 디자인이란 관점으로 보면 큰 조형물부터 작은 조형물에 이르기까지 원형 테마가 남발되어 지나치게 단조롭게 느껴지는 것이 문제다. 잘게 만들어진 화분들이 긴 선으로 된 형태의 의미를 확장하기보다 내부의 여유를 갉아먹는 데 그친다.

 

사람들이 서울로7017을 찾는 이유엔 단순 이동도 있겠지만, 그보다 ‘시설 안에서’ 무언가를 누리고 싶은 심리도 있다. 서울로7017은 위치상 서울역 앞 동서남북을 한 번에 조망할 수 있는 천혜의 입지를 지니고 있다. 끊임없이 오가는 차량의 행렬은 비록 물성은 달라도 한강의 물결을 생각나게 한다. 현재의 시설은 이용자의 그런 필요를 적절히 충족시켜 주지 못하고 있다고 본다.

 

서울로 7017에 서면 서울역을 비롯해 서울시 동서남북이 조망 가능하다. 사진=서울관광재단 홈페이지

 

고가도로에 입장한 사람들은 여유를 찾기보다 장애물에 가까운 크고 작은 콘크리트 화분 속에서 부딪히지 않기 위해 앉지도 못하고 이리저리 부유할 뿐이다. 서울로7017이기 때문에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문화예술 프로그램이나 축제도 있을 텐데 콘크리트로 된 고정식 시설들은 그런 가능성을 원천 제거해 버렸다. 노천 공원보다 전망대라는 개념을 도입하면 어땠을까? 지금의 서울로7017은 인간이 아니라 조형물 본위의 공간이 된 것 같다.

 

현재 서울역 앞을 국가상징공간으로 조성하는 계획이 논의되고 있다. 이것이 현실화되면 매년 방문객이 줄고 유지보수비가 많이 드는 서울로7017은 철거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좋은 조건을 살리지 못하고 존재 유무를 두고 갑론을박이 오가는 현실이 안타깝다.​ 

한동훈 서체 디자이너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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