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감독과 배우가 두 작품 이상만 함께하면 단박에 ‘페르소나’라는 말이 붙곤 한다. 하물며 변성현 감독과 배우 설경구의 만남은 이번이 네 번째.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을 시작으로 ‘킹메이커’ ‘길복순’을 거쳐 ‘굿뉴스’로 돌아왔다. 변성현 감독은 ‘설경구를 빳빳하게 펴고 싶다’며 ‘불한당’에서 슈트 핏의 설경구를 선보이더니, ‘굿뉴스’에선 다시 유쾌하게 구겨 놓았다. 네 번째 만남 역시 ‘굿굿굿’이다.

‘굿뉴스’는 1970년대를 배경으로 일본항공 요도호 납치사건이란 실화에서 영감을 받았다. 사건은 공산주의 동맹 적군파라 칭하는 테러리스트 9명이 승객과 승무원 130여 명을 태운 비행기를 공중에서 하이재킹하여 평양으로 향하려는 것에서 비롯된다. 일본 정부가 어떻게든 평양행을 막으려고 하는 건 당연한데, 여기에 대한민국 중앙정보부장 박상현(류승범)이 이 문제를 해결해 대통령에게 잘 보이고 싶단 마음으로 가세하며 판이 커진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납치된 비행기를 한국에 멋들어지게 착륙시키라는 중정부장 상현의 미션을 실행하기 위해 등장한 주인공은 아무개(설경구)와 엘리트 공군 중위 서고명(홍경)이다. 서고명이 낸 아이디어는 김포공항을 평양으로 속여서 비행기를 안착시키는 것. 과연 이 대담한 거짓말은 통할 것인가? 영화 처음부터 아무개의 화려한 언변과 그에 대응하는 서고명의 만담 같은 대화가 관객의 혼을 쏙 빼놓는데, 사건은 어떻게 해결되고 이들의 결말이 어떻게 날지 그 좌충우돌을 지켜보는 재미가 만만치 않다.

비행기 납치라는 긴박한 상황이지만 그를 풀어가는 과정은 그야말로 웃음 지뢰밭이다. 실화에서 소재를 얻었지만 이 영화의 문법이 철저하게 블랙코미디의 공식을 따르기 때문이다. 곳곳에 버무려 있는 풍자가 날카롭지만, 슬랩스틱과 엇박자를 경쾌하게 오가는 연출 때문에 웃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러니 관건은 혼을 쏙 빼놓는 변성현 감독의 스타일리시한 연출과 그에 장단을 맞추는 연기 앙상블의 키치한 매력에 얼마나 빠져드냐에 있다. 걱정할 건 없다. 눈과 귀를 활짝 열고 감독과 배우들이 깔아 놓은 판에 입장하면 자연스레 리드당할 테니까. 때때로 배우들이 제4의 벽을 넘어 관객에게 직접적으로 말을 건네기도 한다. 영화지만 마치 관객이 함께하는 한 편의 연극이나 마당극 같은 소동극이란 느낌이 강렬하다.

설경구는 또 한 번 그의 진가를 확인시킨다. 정체가 모호한 중앙정부부장의 해결사 아무개에게서 그 옛날 강철중이나 ‘불한당’의 한재호도 살짝 중첩되지만, 당분간은 꾸러기 모자 눌러쓴 모습만 생각날 만큼 생생하게 활개를 친다. 한국 영화를 이끌 차세대 배우 중 하나로 꼽혀온 홍경은 공명심으로 작전을 맡게 되는 서고명의 여러 얼굴을 내공 있게 풀어낸다. 설경구와 홍경의 투톱 활약이 중심을 잡지만 다채로운 웃음을 책임지는 것은 여러 배우들의 연기 앙상블이다. 충청도 사투리를 능글맞게 구사하는 중정부장 상현 역의 류승범은 반할 지경이며, 박해수, 전도연, 김성오, 최덕문, 윤경호, 현봉식, 박영규, 김종수, 전배수, 박지환 등 치고 빠지는 배우들의 연기에 감탄하게 된다. 운수정무차관 역의 야마다 타카유키, 비행기 기장 시이나 깃페이 등 일본 배우들의 쓰임새도 좋다.

트루먼 셰이디의 명언(?)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끊임없이 풀어놓으며 136분의 러닝타임을 쫀쫀하게 끌어간다. 당신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믿게 될 것인가. 분명한 건, 변성현 감독의 전작들에 매료된 이들은 이번 영화가 무척 맛있을 것이란 것. 벌써부터 변성현의 차기작, 변성현과 설경구의 다섯 번째 만남을 기대하게 될 정도다.
부산국제영화제를 비롯해 토론토국제영화제 비경쟁 부문에 초청될 만큼 일찌감치 기대를 받고 있는 ‘굿뉴스’는 10월 17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다. ‘전, 란’이 공개될 때 대중성과 작품성을 모두 잡는 첫 넷플릭스 오리지널 한국영화가 될 수 있을지 기대된다고 썼는데, ‘굿뉴스’가 한 발 더 나아간 모양새다.
별점 ★★★★
영화 속 삽입된 ‘내일의 죠’처럼, 새하얗게 불태워 버리는 변성현의 야심 찬 소동극.
필자 정수진은?
여러 잡지를 거치며 영화와 여행, 대중문화에 대해 취재하고 글을 썼다. 트렌드에 뒤쳐지고 싶지 않지만 최신 드라마를 보며 다음 장면으로 뻔한 클리셰만 예상하는 옛날 사람이 되어버렸다. 광활한 OTT세계를 표류하며 잃어버린 감을 되찾으려 노력 중으로, 지금 소원은 통합 OTT 요금제가 나오는 것.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