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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국회 온 환경기초시설 노동자 "쓰레기 처리는 공공, 노동은 외주"

민간위탁 노동자, 휴식시간 등 명확한 인력 기준 없어…지하화 추세에도 작업공간은 지상화 고려해야

2025.11.27(Thu) 17:17:59

[비즈한국] “여름에는 선별장 안이 40도를 넘어요. 컨베이어 옆에 선풍기 한 대가 전부죠.” “마스크를 써도 코랑 귀에서 분진이 계속 나와요.” 재활용 선별장, 컨베이어 벨트 앞에 선 50대 여성 노동자들이 쏟아져 들어오는 플라스틱과 캔, 깨진 유리 조각을 쉴 새 없이 골라낸다. 악취와 분진이 뒤섞인 공기, 귀를 때리는 소음, 언제 손이 베이거나 끼일지 모르는 탓에 긴장감이 일상이 됐다. 바로 몇 달 전에도 노동자가 압축기에 끼어 사망했다. 재활용 선별장에서는 사람이 압축기나 분쇄기에 딸려 들어가는 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난다. 

 

11월 27일 국회에서 용혜인 국회의원(기본소득당), 기본소득당 노동·안전위원회, 전국환경노동조합, 여성환경연대가 주최한 ‘환경기초시설 노동자 처우 개선을 위한 법률 개정 방향 국회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국내 최초로 지자체에서 진행한 서울시의 장기 건강영향조사 결과와 함께 민간 위탁 구조의 문제와 제도 개선 방향이 논의됐다. 

 

11월 27일 국회에서 용혜인 의원(사진) 등이 주최한 ‘환경기초시설 노동자 처우 개선을 위한 법률 개정 방향 국회 토론회’​가 열렸다. 사진=기본소득당 제공

 

발제를 맡은 박진덕 전국환경노동조합 위원장은 환경기초시설이 지침이나 가이드라인 수준으로 운영되면서 노동자의 안전과 처우가 보장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박진덕 위원장은 “대부분의 환경 기초시설은 민간 위탁, 재위탁 방식으로 운영돼 고용 형태가 불안정하다. 임금과 복지 수준 역시 입찰 가격에 따라 좌우되는 구조적 불평등 속에 놓여 있다. 공공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지역 업체별로 격차가 발생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박 위원장은 “환경 기초시설의 운영 체계 대부분이 고시와 가이드라인에 의해 관리되고 있다. 이 지침은 행정 효율과 비용 절감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노동자의 안전은 뒷전이다. 안전 보호구나 휴게 시설 등 필수 항목도 모두 권고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설명했다. 

 

환경기초시설의 지하화도 현재 진행형이다. 지자체들이 주민기피시설인 환경기초시설을 ‘지하’에 두어 보이지 않게 하려는 추세다. 지하에 만들어지는 시설은 화재에 치명적이다. 전국환경노동조합에 따르면 지난해 동대문 환경자원센터에서 화재가 발생하자 135명의 소방 인력과 37대의 소방차가 투입됐지만, 진압에는 21시간이 걸렸다. 

 

박 위원장은 “휴식 시간을 보장받지 못하고, 인력 운영도 부족하다. 현행 지침상에는 명확한 인력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보호 가이드라인은 법적 구속력이 없어 현장에서는 참고 수준에 머문다. 계약의 필수 조건, 노동자에 대한 법적 지위 등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현주 이대목동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환경기초시설의 운영체계와 안전보건 책임을 명확하게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진=기본소득당 제공


이어 발제를 맡은 김현주 이대목동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환경기초시설의 운영체계와 안전보건 책임을 명확하게 일체화하는 관리체계 구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관리체계가 없는 노동 환경은 중대재해를 만들어낸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1년까지 폐기물 처리업 사고 사망자는 총 104명으로, ‘끼임’, ‘떨어짐’, ‘부딪힘’ 등이 원인이었다. 김현주 교수는 “베트남 고엽제 사례로 다이옥신의 악영향은 익히 알려졌으나 소각장 노동자들이 노출돼 있다는 것은 잘 모른다. 일본 등 다른 나라에서는 다이옥신 농도를 노동자에서 측정한 사례들이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인근 주민에게만 측정한다”고 말했다. 

 

김현주 교수는 지난해부터 서울시에서 하는 소각장 근로자 건강조사도 언급했다. 김 교수는 “소각장 노동자들에게 다이옥신 측정 연구를 시작하게 된 건 정말 중요한 기회다. 다만 불화화합물, 프탈레이트 등 핵심 위험인자에 대한 조사는 여기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짚었다. 

 

김 교수는 “원청 지자체의 실질적인 안전보건 책임을 명문화해야 한다”며 “환경기초시설을 단순한 ‘환경설비’가 아닌 ‘노동이 벌어지는 고위험 작업장’으로 재정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진 토론에서 기호운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사무국장은 “시민과 가장 밀접하게 연관되는 폐기물처리와 재활용시설 등 환경기초시설 노동자들은 대부분 민간 위탁업체에서 일한다. 민간 위탁은 비용 절감이라는 측면에서 최저가 입찰제로 운영된다. 그 과정에서 노동자의 안전은 배제된다. 이런 민간 위탁 구조가 지금에 와서는 공공의 책임을 개별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형태로 이르렀다”고 주장했다. 기 사무국장은 “민간 위탁 구조 자체가 갖는 구조적 한계다. 직영이나 시설관리공단을 통해 운영하는 공영화 방식으로 운영해야 현실적인 재해 예방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안현진 여성환경연대 여성건강팀장은 재활용 선별장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짚었다. 안현진 팀장은 “폐기물 처리업에서 여성 노동자의 비율은 13~15% 추정된다. 반면 재활용 선별장의 경우 95% 이상이 여성 노동자로 구성돼 있다. 특히 중장년, 고령의 여성 노동자가 집중된 사업장이다”고 설명했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재활용 선별장 노동자들에게 화학물질 23종, 카드뮴, 크롬, 페놀 등 유해 물질이 검출됐다. 안현진 팀장은 “플라스틱류에서 유인되는 유해 화학물질의 경우 여성 호르몬 기능을 교란할 가능성이 높아 여성 노동자들에게 더 심각한 건강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안 팀장은 “지난해 국내 재활용 선별장 노동자를 대상으로 노동 환경 실태조사를 진행했다. 먼지와 악취, 더위와 추위, 소음, 불편한 자세, 균 오염 등을 유해인자로 꼽았다. 심지어 노동자 전원이 찔리거나 베이는 사고를 경험했다”고 밝혔다. 

 

서정구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 일반노동조합 창원시 지부장은 “나도 진해에서 근무하는 소각 노동자다. 오늘 새벽 4시 반까지 일한 후 여기로 왔다”며 “소각, 매립, 재활용 선별, 하수처리, 음식물 처리 등 환경기초시설은 핵심적인 공공서비스 분야지만 공공노동자로서 지위나 보호받지 못한다”고 토로했다. 서정구 지부장은 “환경기초시설의 공공성을 명문화하고 노동자 보호 조항을 신설해야 한다. 또 민간 위탁의 최저가 낙찰제를 폐지하고, 근로 환경과 복지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영주 경일대학교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재난상황에서 지하공간이 취약한 이유를 설명했다. 이영주 교수는 “지하 공간은 열, 연기가 배출되지 않아 화재 확산이 빠르고 치명도도 높다. 집중 호우 시엔 가장 먼저 침수할 위험이 있다. 환경기초시설의 지하화는 일반적인 지하공간보다 위험이 ​더 크다. 가연물이 많아 대형 화재의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고 지적했다. 

 

#서울시, 지자체 최초 소각장 근로자 건강조사…전국 확대해야

 

서울시는 지자체 최초로 2024년부터 2026년까지 3개년 ‘자원회수시설 작업환경측정 및 근로자 건강영향조사’를 진행 중이다. 지난 2022년 안전보건공단에서 서울 소각장 노동자 10명을 조사한 결과 혈액에서 다이옥신이 검출됐기 때문이다. 강남·노원·마포·양천 등 서울 소재 4개 자원회수시설 근로자를 대상으로 작업환경측정, 근로자 건강영향조사를 진행해 현재 2차까지 결과가 나온 상태다. 

 

작업환경 중 유해 물질 농도와 근로자 체내 유해 물질 농도는 모두 참고 기준 이내로 측정됐지만, 문제는 명확한 기준이 없다는 점이다. 서울시 조사에 따르면 1, 2차 조사 결과의 평균은 작업환경 중 유해 물질 농도 다이옥신류 0.4 피코그램(참고 기준 0.6), 근로자 체내 유해 물질 농도 다이옥신류 6.17피코그램(참고 기준 6.83)이다.

 

토론자로 나선 장지훈 서울시 자원회수시설과 팀장은 “서울시에서 3개년 장기 조사를 전국 최초로 시행하고 있다. 1차에는 40명, 2차에는 48명을 대상으로 조사했고, 3차에는 60명을 대상으로 할 예정이다. 현재 소각 시설 작업 환경에 대한 법적 기준이 없어서 대기 환경 기준을 적용했고, 기준치 이내로 결과가 나왔다. 근로자의 체내 유해 물질 농도도 측정했다. 다만 관련한 기준 데이터가 없어서 2000년대부터 시행한 주민 건강 영향 조사와 비교했다”고 설명했다.

 

장지훈 팀장은 소각장 근로자의 건강조사가 전국적으로 시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 팀장은 “서울시 조사가 최초인 만큼 조사 항목을 확대하고, 전국 단위의 표준 마련이 필요해 보인다. 장기적인 데이터를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 최근 자원회수시설을 지하화하는 것에 대한 논의가 커지고 있는데, 주민과 근로자 모두 고려하는 방향이 필요하다. 관련법에 따라 주거지역 인근의 경우 폐기물 처리 시설을 지하화하는 것이 불가피한 부분이 있다. 그럼에도 주요 작업공간은 지상화하거나 이동 동선을 고려해 안전 구역을 확보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현장에서는 기준치에 근접하게 측정된 체내 다이옥신류 농도를 ‘안전한 상태’라고 볼 수 있느냐는 질의가 나왔다. 이에 대해 김현주 이대목동병원 교수는 “유해인자가 하나만 노출됐을 때 기준을 초과하지 않으면 상대적으로 안전하다. 그런데 소각장에서는 다이옥신, 미세먼지, 중금속 등에 노출되고 있다. 측정하지 않는 발암물질에도 복합적으로 노출된다. 그래서 단일 지표만 보고 판단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또 노출 기준이라는 것은 관리를 위한 사회적 합의이기 때문에 최소 노출을 유지하는 것이 발암물질 관리의 원칙이다”고 설명했다. 

 

용혜인 의원은 “오늘 아침 다른 의원들로부터 토론회 자료집 요청을 많이 받았다. 그만큼 지역 환경기초시설 노동자들에 대한 관심이 많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며 “실질적인 제도 개선과 환경의 변화로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전다현 기자

allhyeon@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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