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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덕텔링] '천궁 블록2' 이대로 중단되면 안 된다

개발지연도, 비용·납기·테스트에서 문제가 생긴 것도 아닌데 국방장관 한마디에 '위기'

2017.10.31(Tue) 16:29:19

[비즈한국] 70년 가까운 대한민국 방위사업의 역사에는 부침이 많았다. ‘국산화’ ‘수출 대체’라는 단 하나의 목표에 수십 년 동안 매달린 한국 방위산업의 여러 에피소드 중에서는 웃지 못 할 이야기들이 많았다. 정사로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누군가는 20mm 발칸포 제작을 위해 청계천 상가에 생산능력이 있는 정밀도를 갖춘 공업사를 찾아 다녔다고 하고, 누군가는 야포 국산화 사업을 위해 공장을 돌리다가, 납기가 늦은 죄로 유치장에 들어갔다고 한다. 

 

천궁 포대. 사진=국방과학연구소


실패와 좌절의 역사도 있었다. 1981년부터 1985년까지 개발된 해룡(Sea Ray)은 한국에서 개발된 최초의 함대함 미사일로, 7km의 사거리를 가진 레이저 유도 성능이 흠잡을 데 없었다. 문제는 서해안이었다. 세계에서 해무가 가장 심한 서해안에서는 레이저파의 도달 거리가 짧아지는 문제는 날씨를 조절하지 않는 한 해결하기 어려웠다. 레이저 유도 미사일로는 세계 수준의 성능을 갖추었지만 환경이 문제였던 것이다. 

 

과욕과 과신이 부른 실패도 있었다. 1500대에 이르는 3세대 전차인 K1과 K1a1을 개발하면서 쌓인 노하우로 K2 흑표전차를 양산할 때만 해도, 기술적 신뢰성과 성능이 전 세계의 최신형 전차와 동급 이상, 혹은 세계 최고라는 자부심을 가지기에 충분했다. 해외 전차 선진국들은 탈냉전시대 이후 전차 기술개발에 소극적으로 투자해 거의 모든 면에서 선진국 수준 이상의 우수한 전차로 K2 흑표전차가 완성되었다.

 

문제는 해외 기술에 도달하지 못한 단 하나의 부품, 파워팩이었다. 엔진과 트랜스미션이 결합된 부품인 전차용 파워팩은 단순한 엔진이 아니라 전차 기술의 결정체로, 파워팩의 성능이 강하고 고장이 적을수록 실제 전투력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파워팩의 출력이 약하면 기동성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화력과 방어력을 늘리는 데에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K-2 전차는 원래 독일제 파워팩인 MTU883을 장착할 예정이었다. MTU883은 독일이 당시 개발한 가장 최신형 파워팩으로, 신뢰성이 높고 출력이 강할 뿐만 아니라 K1 전차의 파워팩보다 크기가 더 작은 혁신적 엔진이었다. 전차 선진국인 프랑스도 자체 생산한 파워팩 대신 이 MTU883 파워팩을 장착한 전차를 수출했다. 그만큼 세계 톱클래스 성능이었던 셈이다. 미국 역시 진지하게 이 파워팩을 전차용으로 검토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 K-2 전차의 생산 막바지에서 갑자기 이 파워팩을 국내에서 개발한다는 결정이 내려졌다. 왜, 어떤 이유로, 어떠한 연구 결과로 이 파워팩을 국내 개발한다는 근거는 지금도 명확히 정리된 자료가 부족하다. 세계 최고 수준의 파워팩을 만든다는 야심찬 목표는 제한된 시간과 조건, 기반 기술과 노하우의 부족으로 수년째 개발지연과 연기를 겪었다. 

 

세계 최고의 성능을 갖춘 K2 흑표전차는 ‘심장이 아픈 아이’라는 오명을 받게 되었다. 국산 흑표 파워팩은 작전요구성능을 낮춰 엔진은 몇 년의 지연 끝에 겨우 통과했고, 파워팩의 다른 구성품인 변속기는 요구사항을 결국 만족하지 못해 독일에서 수입할 예정이다.

 

이렇듯, 한국의 방위사업 역사에는 그 성공만큼이나 좌절과 실패의 기록들이 존재하지만, 지난 10월 30일 보도된 내용은 그 사실이 진짜라면 한국 방위사업 역사상 가장 놀랍고 황당한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천궁과 천궁 블록2 미사일. 사진=김민석 제공


국방부 대변인에 따르면, 원래 10월 20일 열릴 예정이었던 제106회 방위사업 추진위원회가 11월 17일로 연기되었으며, 여러 가지 연구 과정 중에서 현재 추진 중인 사업들의 우선순위를 조정 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복수의 언론에 따르면, 이것은 단순히 행사가 연기된 것이 아니라, 송영무 국방장관이 방어적 무기보다는 공격적 무기를 갖추어야 한다는 지시 때문에 국외 도입 사업인 탄도유도탄 조기경보레이더와 국내 연구개발 사업인 천궁 블록2 성능개량 대공미사일 사업을 취소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게다가 김종대 정의당 의원의 보도자료에 따르면 송영무 장관은 천궁 블록2를 취소하는 대신, 해군 이지스함에 탑재할 수 있는 스탠다드 SM-3 탄도미사일을 고려하고 있어, 미국에서 미사일 구매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국산무기의 양산을 취소시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제기되는 중이다. 이런 과정에서 천궁 블록2의 레이더를 생산하는 한화시스템과 미사일을 생산하는 LIG넥스원은 아무런 정보나 통보도 받지 못하고 멀뚱히 상황만 지켜볼 뿐이다.

 

황당한 점은 천궁 블록2는 올해 탄도탄 표적으로 상정한 사격에서 모든 표적을 요격하는데 성공하고, 개발 일정과 비용을 초과한 적이 없는, 국산 무기 개발의 모범사례로 꼽을 수 있는 우수한 성과를 내고 있었다는 점이다. 천궁의 개발비는 약 8000억 원, 천궁 블록2는 1300억 원의 예산으로 개발을 끝낼 수 있었는데, 사거리 1000km 미만의 중단거리 탄도탄을 요격하는 미사일로는 가격 대 성능비가 매우 우수한 편이다. 

 

그런데, 이런 천궁 블록2가 수년째 개발지연된 것도 아니고, 비용이나 납기에 문제가 생기거나 테스트 과정에서 문제가 생긴 것도 아닌데 이렇게 하루아침에 양산 결정이 중단되는 초유의 사건이 생긴 것이다. 

 

천만 다행이 11월 17일 다시 개최되는 방위사업 추진위원회에서 천궁 블록2의 양산이 결정되면 이런 걱정은 기우에 불과하겠지만, 만약 수천억 원의 개발비가 드는 국산 무기 연구개발 사업이 국방부 장관의 말 한마디에 좌우된다면 한국의 방위산업체들 중 그 ‘장관 리스크’를 짊어질 수 있는 곳은 아무도 없다. 가뜩이나 방산비리의 적폐로 비난받는 한국 방위산업에 대한 인식을 문재인 대통령의 서울 에어쇼 행사를 통해 개선한 지 얼마 안 되어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것이 또한 충격적이다.

 

만약 정말로 송영무 국방부 장관이 방어무기보다 공격무기에 치중해야 하기 때문에 천궁 블록2의 생산을 중단하거나 줄일 생각이라면 문제는 더더욱 심각하다. 국방부가 제시한 북핵 대응 ‘한국형 3축 전력’은 대한민국이 독자적으로 구축하는 미사일 방어막 KAMD, 적의 도발의도를 사전에 파악해 신속히 격멸하는 킬 체인, 적의 공격시 핵심 지휘부 및 목표를 즉각 괴멸시키는 보복전력인 KMPR로 나눌 수 있는데, 이 중 KAMD의 가치에 대해서 사실과 다른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KAMD는 한국형 3축 체제의 근본이자, 3축 체제 완성의 기본 전제 조건이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전력을 공격하고 보복하기 위한 기본 전제 조건은 북한의 선제 기습공격을 막아내는 것이다. 적의 공격의도를 아무리 사전에 인지할 수 있어도, 이것이 보복과 역습, 선제 타격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북한의 공격을 우선 막고 난 다음의 일인 것이다. KAMD가 없다면 우리는 공격적인 공세작전을 수행하기 위한 공정사단이든, 탄도미사일이든, 스텔스 항공기든 북한의 기습 타격에 의해서 제대로 된 작전을 수행하지 못할 것이다.

 

진정 대한민국의 방위산업을 개혁하고자 한다면 이런 급작스럽고 고려 없는 의사결정은 반드시 근절해야 한다. 미래전에 대한 명확한 비전과 이기는 방법을 정한 다음, 이기는 방법에 맞는 무기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 주의 깊게 고민하는 것이 방산업체뿐만 아니라 군과 국방부가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국방부 장관이 만약 사기업의 사장이었다면, 회사의 핵심 전략 자산인 미사일 방어 능력을 이렇게 쉽게 포기한다는 말을 할 수 있을까. 국방부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 

김민석 한국국방안보포럼 연구위원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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