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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국의 천지인] '추상'하지 못하는 자, 지배당한다

이면의 공통점과 원리를 추리하는 능력…'누가, 하필 지금, 그것을 이렇게 말하는가' 되묻자

2018.06.01(Fri) 13:00:12

[비즈한국] 맹자가 “머리(마음)를 쓰는 이는 남을 다스리고 힘을 쓰는 이는 다스림을 받아야 마땅하다(勞心者治人, 勞力者治於人)”고 했다던데, 현실을 정확히 묘사하면서 숨길 것은 정확히 숨겼다. “마땅하다”는 ‘맹자’ 전체 문맥을 고려하여 필자가 의역한 것이다. 머리를 쓴다는 것은 추상(抽象)한다는 것이고, 추상은 상당한 노력(勞)을 요구하며, 그 노력의 대가로 사람들을 다스린다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몸을 수고롭게 해서 직접 생산하는 이들은 추상하는 고통을 겪을 필요가 없으므로 다스림을 받아 마땅하다. 그렇게 생각하면 공자 말씀도 이해가 된다. 농민은 밭을 갈고 어부는 고기를 잡으면 그뿐, “직위를 가지지 않고서 거기에 어울리는 정사를 도모해서는 안 된다(不在其位 不謀其政)”. 

 

바야흐로 민주주의 시대, 이보다 더 시대착오적인 말이 또 있으랴. 그러나 ‘명목적’으로 철인·귀족이 정치를 담당하는 시대는 끝났지만 ‘실질적으로’ 그런 시대가 끝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이제는 만인이 만인을 다스리는 시대지만, 추상할 능력이 없는 다수는 누군가의 하수인에 불과할 수도 있다. 히틀러 치하의 독일인들은 세계대전을 마다하지 않았지만 그들 모두가 히틀러와 같은 전쟁광이었을까? 아마도 다수는 지도자와 그 무리들의 지침을 따라 다녔을 것이다. 

 

순수한 추상 능력이 없으면 배경지식이 다른 사람들끼리 대화가 불가능하다. 추상을 거치지 않으면 이런 표현들이 언어 세계를 점령한다. 아이폰 없으면 ‘거지’, 영어를 못하면 ‘미개인’, 키가 작으면 ‘루저’, 그리고 생각이 다른 사람들은 ‘빨갱이’ 혹은 ‘수구 꼴통’.

 

추상 능력이 없으면 배경지식이 다른 사람들끼리 대화가 불가능하다. 민주주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추상이 필요한 이유다. 사진은 지난 26일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2차 남북정상회담을 마친 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을 배웅하는 모습. 사진=청와대 제공


추상은 이면의 공통점과 원리를 추리하는 능력이다. 어떤 시대를 두고 이론경제학자와 그 시대 전공 역사학자가 만났다고 하자. 경제학자가 당대의 경제현상을 이론적으로 진단한다. 그러나 역사학자에게 그 이론을 반박할 근거는 천 개도 넘는다. 물론 숨겨놓은 긍정적 근거도 천 개는 넘을 것이다. 전공분야를 넘어 추상적인 수준에서 수평적으로 사고하지 않으면 학문 간의 대화도 영원히 불가능하다. 공통의 논리 기반을 만들려는 노력, 즉 추상이 없으면 둘은 서로를 ‘허풍쟁이’ 혹은 ‘우물 안 개구리’라고 손가락질할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 시대를 사는 우리는 스스로를 다스리기 위해 일상적으로 추상적인 대화를 해야 한다. 노력이 필요한 일이지만 남과 공존하고, 가끔은 공통의 목적을 위해 분투하자면 이는 필수적이다. 필자는 어떤 문제 앞에서 독자와 함께 추상하고 나아가 현상의 이면을 모색할 뿐이다. 그러므로 앞으로 필자가 지면에서 하는 전거는 비유이며 생각의 도구일 뿐이다. 필자가 구체적인 경제·경영 현상을 이야기한들 현업 종사자들보다 더 자세할 수 없다. 필자는 추상 수준에서의 구조를 말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추상하는 노력을 통해 우리는 충분히 구체적인 사안에 접근할 수 있다. 예컨대, 한문을 모르고 중국 고대사에 정통하지 않은 이라도, 설명을 듣고 추상을 하면 위에서 든 맹자와 공자의 말이 시대착오적인 동시에 당시의 사회 구조를 노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모두가 바쁜 시대, 누구나 말을 하고 정보는 넘치지만 개개인이 자기 말을 하는 것이고 그 정보는 신뢰할 수 있는 것일까? 소위 언론은 개인에게 추상하는 노력을 하지 말고 주는 정보를 받아먹으라고 한다. 추상화의 체를 거치지 않은 정보는 범주를 무시하기에 대화를 유도할 수 없고, 추상할 능력이 없는 사람은 대량 정보의 홍수 위를 부유할 수도 있다. 심지어 의도적인 거짓말에 휘둘릴 수도 있다. 출발점은 단순하다. ‘누가, 하필 지금, 그것을 이렇게 말하는가’ 되물어보는 것이다. 그 ‘누구’는 인간 개인이나 집단이 아니라 관성처럼 흐르는 구조 자체일 수도 있다. 

 

며칠 전 한반도 비핵화 협상을 이끌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 ‘월스트리트 저널’은 사설에서 이렇게 평했다. “한국의 대통령은 북한에 대한 미국의 목표를 공유하지 않는다(Moon Over Singapore -South Korea’s President doesn’t share U.S. goals on North Korea).” 국내 언론들은 이 보도를 옮기면서 자극적인 제목을 달았고, 역시 어마어마한 수의 댓글이 달렸다. 서로 “빨갱이”와 “수구꼴통”이라 욕하며 찬반 댓글을 다는 것은 우리의 임무가 아니다. 우리는 ‘그 신문의 정체는 무엇이기에 하필 지금 저렇게 말하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해야 한다. 

 

바야흐로 한반도의 명운을 건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 다음 회에는 구체적으로 경제행위의 핵심인 인간과 인간의 협상에 접근해보겠다. 과연 국가 간의 협상에서 빅딜이 가능할까? 

 

필자 공원국은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교 국제대학원에서 중국지역학을 전공했으며, 중국 푸단대학교에서 인류학을 공부하고 있다. 생활·탐구·독서의 조화를 목표로 십 수년간 중국 오지를 여행하고 이제 유라시아 전역으로 탐구 범위를 넓혀, 현재는 러시아와 중앙아시아에서 현지 조사를 수행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춘추전국이야기 1~11’, ‘옛 거울에 나를 비추다’, ‘유라시아 신화기행’, ‘여행하는 인문학자’ 등 다수가 있다.

 

이 연재에서는 먹고 살아가는 행동(경영)을 하면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을 천(天)/지(地)/인(人) 세 부분으로 나눠, 고전을 염두에 두고 독자와 함께 고민해보고자 한다. 

공원국 작가·‘춘추전국이야기’ 저자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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