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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일해도 가난한 나라'가 과연 선진국일까

최저임금 인상 됐지만 생계 유지하기엔 여전히 부족…'최저임금+복지' 근본적 전환 이뤄져야

2025.07.11(Fri) 11:09:42

[비즈한국] 내년도 최저임금이 시급 1만 320원으로 결정됐다. 올해보다 2.9%, 290원 오른 수치다. 월급으로 환산하면 약 215만 6880원. 정부는 노사가 17년 만에 합의점을 찾았다는 점에 의미를 두지만, 실상은 절반의 합의였다. 한국노총은 찬성했으나 민주노총은 반대했고, 경영계 역시 인상률에 대한 강한 불만을 표했다. 사실 모두가 만족할 합의점은 늘 없다. 이보다 더 본질적인 질문은 따로 있다.

 

“우리는 최저임금으로 혼자 살아갈 수 있는 나라인가?”

 

현실은 여전히 ‘아니오’에 가깝다. 지금의 최저임금으로는 서울은 물론이고 지방 소도시에서도 자립적 삶을 유지하기 어렵다. 서울 기준으로 원룸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50만 원, 식비 30만 원, 교통비 15만 원, 통신비와 공과금 약 17만 원을 더하면 최소 월 112만 원이 든다. 여기에 의료비, 의복비, 비상금까지 고려하면 적어도 월 150만 원 이상은 필요하다.

 

한국의 내년도 최저임금은 시급 1만 320원으로 인상됐지만, 실수령액 기준으로는 서울은 물론 지방에서도 자립적인 생활이 어려운 수준이다. 단순한 임금 인상보다 ‘최저임금+사회적 임금’ 구조로의 전환과 자영업자·중소기업에 대한 실질적 지원, 그리고 예측 가능한 임금 결정 체계가 필요하다. 사진=최준필 기자.

 

하지만 최저임금 월 환산액 215만 원에서 4대 보험료와 세금을 제하면 실수령액은 약 190만 원 내외다. 이 금액으로 독립적인 생활을 유지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 지방이라고 사정이 나은 것도 아니다. 부산이나 광주 같은 대도시도 생활비는 높고, 중소도시는 일자리 자체가 최저임금 수준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즉, 성실히 주 40시간 일하고도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구조는 선진국이라 자부하는 나라의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다.

 

한국은 분명 경제 규모로는 세계 10위권, OECD 가입국이며 글로벌 기업과 문화 콘텐츠를 보유한 국가다. 1인당 GDP도 3만 5000달러를 넘었다. 수치로만 보면 ‘선진국’의 조건을 충족한다. 그러나 진정한 선진국은 “모두가 잘사는 나라”가 아니라 “누구도 버려지지 않는 나라”여야 한다. 경제성장의 과실이 사회 전반으로 균등하게 퍼지고, 사회의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람도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한국의 최저임금은 다른 나라에 비해 낮은 것일까. 절대 금액만 보면 중상위권이다. 한국의 시급 1만 320원은 일본(961엔, 약 8200원)이나 미국 연방 기준(7.25달러, 약 9900원)보다 높고, 프랑스(11.65유로), 독일(12유로), 영국(11.44파운드)보다는 낮은 수준이다. 그러나 이 수치를 ‘중위임금 대비 비율’로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한국은 약 52%로, OECD 평균인 55~58%에 대부분 못 미친다.

 

또한 실질 구매력의 차이가 크다. 유럽 주요국의 최저임금 노동자들은 단순 임금 외에도 주거수당, 교통비 감면, 의료비 지원 등 다양한 사회적 급여를 통해 생활의 질을 높인다. 반면 한국은 최저임금이 사실상 ‘생존 임금’의 전부다. 공공임대주택 재고율은 OECD 평균의 절반 수준이며, 주거급여나 생계급여 같은 복지도 자격 요건이 까다롭고 행정 장벽이 높아 실제 수급률은 저조하다.

 

물론 경영계가 주장하는 부담론에도 일정 부분 타당한 맥락이 있다. 인건비 상승은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에게 실질적인 비용 압박으로 작용한다. 인상된 최저임금이 고용 축소나 근무시간 단축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경영 여건이 악화된 소상공인들에게는 정부의 지원 없이 임금 인상만 요구하는 구조는 불균형하다.

 

그렇기에 단순히 최저임금을 올리는 것만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이 되지 않는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최저임금+복지’를 통해 실질 생활임금을 구성하는 사회적 임금(social wage) 개념이다. 프랑스는 임대주택 보조와 가족수당, 교통비 지원을 통해 낮은 임금의 한계를 보완하고, 독일은 기본생활보장제(Bürgergeld)를 통해 주거비와 생계비를 지원한다. 북유럽은 법정 최저임금이 없지만, 강력한 노조 협상과 공공복지로 노동자의 삶을 보호한다.

 

지금 한국은 ‘최저임금=생존선’인 구조다. 여기에 사회적 임금 개념이 부재하니, 임금 인상이 곧 생존 투쟁이 되고, 노동자와 사업주 모두가 갈등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반복된다. 갈등을 줄이고 지속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최저임금 결정방식부터 재설계해야 한다. 매년 정쟁처럼 반복되는 교섭구조가 아니라, 물가상승률, 생산성, 중위임금 등을 반영한 자동조정 공식이나 중장기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동시에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도 강화해야 한다. 사회보험료 지원, 세제 감면, 경영 컨설팅 등 실질적인 정책 도구로 부담을 나눠야 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임금 격차를 줄이는 정책도 병행돼야 한다.

 

‘한 명의 노동자도 존엄하게 살 수 있는 나라’​가 되어야 하지 않는가. 그 한 명이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든, 요양보호사든, 음식 배달원이든, 청소용역 직원이든 상관없다. 그들이 하루 8시간, 주 40시간을 성실히 일했을 때 혼자 살아가며 존엄을 유지할 수 있도록 임금과 제도를 설계하는 것, 그것이 선진국의 품격이고 국가의 책임이다.

봉성창 기자

bong@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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