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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법] '노 민스 노 룰'만 있으면 안희정은 유죄일까

성차별 논란 해결 묘책으로 떠올랐지만 형법 과잉 부작용 가능성도…좀 더 면밀한 검토 필요

2018.08.18(Sat) 08:53:01

[비즈한국] 지난 14일 올 상반기를 뒤흔들었던 안희정 전 충남지사 사건 1심 선고가 있었다. 안 전 지사가 집권여당의 차기 유력한 대권후보였던 만큼 역사에 기록될 대형 미투(Me Too)사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을 끈 위 사건의 결과는 일단 ‘무죄’였다. 

 

재판부는 안 전 지사가 유력 정치인이고 차기 유력 대권주자로 거명되고 있는 지위 및 도지사로서 별정직 공무원인 피해자의 임면 등 권한을 가지고 있는 점을 본다면 이는 위력에 의한 간음에서 위력에 해당한다고 보았지만, 안 전 지사가 위력을 행사하여 피해자의 자유의사를 제압한 후 간음 및 추행행위를 저질렀다고 볼 만한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지난 14일 오전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1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고 서울서부지법을 나와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임준선 기자


재판부는 말미에 폭행, 협박이나 위력의 행사와 같은 행위가 없더라도 상대방이 부동의 의사를 표명했는데 성관계로 나아간 경우에는 이를 강간으로 처벌하는 체계, 이른바 노 민스 노 룰(No Means No rule), 혹은 상대방의 명시적이고 적극적인 성관계 동의 의사가 있어야 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 성관계로 나아가면 이를 강간으로 처벌하는 체계, 예스 민스 예스 룰( Yes Means Yes rule)을 도입할 것인지 여부는 입법정책적 문제라면서 부연설명을 했다. 재판부가 판결 선고를 하면서 입법정책적인 메시지를 던진 것은 아주 이례적인 일이다. 

 

현행법상 성폭력범죄가 인정되려면 폭행‧협박을 이용하거나, 상대방이 미성년자 내지 피보호자 등일 때에는 위계‧위력에 의해야 한다. 이에 반해 비동의 간음죄는 피해자의 동의가 없음에도 간음하는 경우 처벌을 할 수 있는 범죄행위를 뜻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즉 외관상 폭행 등 별도의 행위를 요하지 않는 것이다. 

 

이미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지난 3월 형법 제297조가 명시한 ‘폭행 또는 협박’이라는 기준보다 ‘피해자의 자발적 동의 없이’라는 기준을 넣어 이를 우선시하도록 수정할 것을 권고했으며, 4월에는 정부‧여당에서 비동의 간음죄 신설을 적극 검토했고 제20대 국회에서도 비동의 간음죄와 관련해 총 7건의 법안이 발의됐다. 또한 여성단체 등은 18일 집회를 열어 안 전 지사 항소심 유죄 선고와 함께 비동의 간음죄 도입을 촉구하기로 했다. 

 

그렇다면 비동의 간음죄 신설 시 안 전 지사 사건과 같은 경우는 군말 없이 처벌되는 것일까. 재판부는 이번 사건에서 피해자 김 아무개 씨의 진술을 믿지 않았다. 더 나아가 김 씨가 안 전 지사의 성관계 요구를 거절한 것으로 보지 않았다. 재판부 판단대로라면 비동의 간음죄가 있었더라도 안 전 지사는 처벌되지 않는다. 오히려 성관계를 전후한 다양한 성적 행동의 각 단계를 고려할 때 ‘동의’라는 개념을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으면 자칫 억울한 피해자가 양산될 수가 있다. 

 

또한 폭행, 위력 등이 수반되지 않는 ‘비동의’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일이 쉽지 않다. 즉 적극적인 동의 거부든 소극적인 비동의든 피해자의 의사를 인식했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간음으로 나아갔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 그리 녹록지 않을 것이다. 안 전 지사 사건과 같이 명백하게 위력에 해당한다는 사실이 인정됨에도 피해자의 진술을 납득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처벌이 되지 않는데, 일반적인 관계에서 비동의 간음죄가 쉽게 인정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형법이 보호하는 성적 자기결정권은 자신이 원하지 않을 때 타인과의 성관계를 강요받지 않을 자유를 뜻한다. 비동의 간음죄를 신설하지 않고 현행 법체계에서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다 적극적으로 보호하는 방안은 없을까. 

 

대법원은 강간죄의 요건으로서 폭행‧협박의 경우 피해자의 반항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일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피해자에게 강간에 대한 저항을 했음을 증명해야 할 책임을 부담시키게 되어 자칫 자기 방어에 소홀한 것을 문제 삼는 경우가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있다. 진지한 거부의 의사표시를 억압하는 정도의 유형력의 행사가 있으면 강간죄의 성립을 인정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대법원이 전향적으로 입장을 바꾸지 않는다면, 입법적으로 해결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 이 점에서 강간죄의 폭행‧협박을 ‘일반 폭행‧협박’의 개념으로 개정한 황주홍 민주당 의원의 법안과 ‘폭행‧협박으로 반항을 곤란하게 한 상태’로 구체화하여 ‘현저히 곤란’할 것을 요구하는 판례의 요건을 완화한 최경환 민주평화당 의원의 법안은 경청할 가치가 있다.

 

최근 홍대 몰카 유출 사건으로 인해 촉발된 성차별 논란은 안 전 지사의 무죄 선고로 인해 기름을 부은 꼴이 되었다. 과연 비동의 간음죄가 성차별 논란을 해결할 수 있는 묘책이 될 수 있을지, 아니면 형법 과잉 논란을 야기할 것인지, 좀 더 면밀한 검토가 필요해 보인다.

 

※ 외부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한규 변호사·전 서울지방변호사회장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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