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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인사이트] 계층 이동의 사다리…전세는 반드시 필요하다

집주인과 세입자 모두에게 이점 제공…폐지보다는 발전시켜야 할 사회적 자산

2025.07.14(Mon) 10:40:50

[비즈한국] 2025년 여름, 부동산 시장을 둘러싼 담론의 중심에는 ‘전세의 종말’이 자리 잡고 있다. 전세사기, 깡통전세, 대출 규제, 월세화 등 연이은 악재는 전세 제도의 존립 자체를 흔드는 듯하다. 

 

격변의 한가운데에서, 우리는 전세라는 제도가 지난 수십 년간 한국 사회에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 그리고 앞으로의 주거정책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2025년, 전세는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최근 전세사기와 깡통전세 문제가 심각해지며 전세 폐지론이 강하게 대두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전세 제도 자체의 본질적 문제라기보다는 운영상의 결함과 제도적 허점에서 비롯된 문제들이다. 전세는 한국의 독특한 역사적, 사회적 맥락 속에서 성장하고 유지되어 온 제도로, 폐지가 아니라 개선과 보완이 필요한 중요한 사회적 자산이다.

 

역사적으로 전세는 조선시대부터 500년 이상 이어져 온 제도다. 이미 조선 후기부터 도시화가 시작되면서 전세는 도시 주거 문제를 해결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특히 6.25 전쟁 이후 급격한 도시화와 산업화가 진행될 때, 전세는 국가가 해결하지 못하는 주거 문제를 민간이 해결하는 효과적인 수단이었다. 전세보증금을 활용한 주택 공급 확대는 경제 활성화의 견인차 역할을 수행했다. 이처럼 전세는 단순한 임대차 방식이 아니라, 무주택자들이 자가 주택을 마련하기 위한 중간 과정으로서 중요한 ‘주거 사다리’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왔다.

 

집주인은 목돈을 받고 세입자에게 집을 빌려주며, 세입자는 월세 없이 일정 기간 안정적으로 거주한다. 계약 만료 시 보증금은 전액 반환된다. 6.25전쟁 이후 급격한 도시화와 산업화 속에서 전세는 주택난 해소의 열쇠였다. 금융 인프라가 미비했던 시절, 전세보증금은 집주인에게 무이자 자금조달 수단이자, 세입자에게는 내 집 마련을 위한 ‘강제 저축’이자 ‘주거 사다리’였던 것이다.

 

전세는 단순한 임대차 계약이 아니었다. 월세보다 주거비 부담이 적고, 계약 만료 시 보증금을 돌려받아 자산 형성에 유리했다. 청년, 신혼부부, 중산층 진입을 꿈꾸는 이들에게 전세는 ‘희망의 사다리’였다. 은행 대출이 어려웠던 시절, 전세는 사금융 역할을 하며 주택공급과 경제성장에 기여했고, 장기간 거주가 보장되는 ‘안정’과 ‘희망’의 제도였다.

 

경제적 측면에서 보면, 전세는 집주인과 세입자 모두에게 명확한 이점을 제공한다. 집주인은 전세보증금을 활용해 추가적인 자금을 무이자로 확보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주택 추가 구매나 사업 자금 등 다양한 경제적 활동에 활용할 수 있다. 임차인의 입장에서는 월세 대비 비용이 훨씬 저렴하며, 서울 강동구 ‘래미안 솔베뉴’ 사례에서 보듯 월세보다 월 110만 원 이상 저렴하게 거주가 가능하다. 또한 전세금은 계약 만료 후 전액 반환받아 실질적인 자산 형성의 기회를 제공한다. 특히 청년과 신혼부부 등 경제적 기반이 부족한 계층에게는 내 집 마련의 중요한 디딤돌이자 안정적 거주를 위한 필수적 선택지이다.

 

그러나 2025년, 전세는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신축 빌라를 중심으로 전세사기와 깡통전세 피해가 속출했고, 집값 하락과 다주택자·법인 임대인의 도산이 겹치며 보증금 반환이 막히는 사태가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정부는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가입 의무화, 전세사기특별법 제정 등 대응에 나섰지만, 피해자들의 불안은 좀처럼 해소되지 않았다. 임차인의 소득과 기존 대출을 반영해 전세대출 보증 한도가 대폭 축소되고, 은행의 대출 심사도 엄격해지면서 전세자금 마련은 더욱 어려워졌다. 금리 인상까지 겹치면서, 세입자들은 월세나 반전세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실제 현장 통계를 보면, 2025년 5월 기준 전국 임대차 계약 중 월세 비중은 61%에 달한다. 비아파트(빌라, 다세대) 월세 비율은 76%를 넘었고, 수도권 평균 월세는 80만 원을 상회한다. 전세 재계약률은 75% 이상으로 회복세이나, 저가주택·지방은 월세화가 고착되고 있다. 월세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렇게 월세화가 가속화되면서, 주거비 부담은 커지고 있다. 월세는 2년이면 2000만 원이 넘는 돈이 사라진다. 청년, 신혼부부, 저소득층일수록 월세에 내몰리고, 자산 형성 기회는 줄어든다. ‘월세→전세→자가’로 이어지던 주거 사다리가 무너지고, 내 집 마련의 꿈은 멀어진다.

 

월세는 매달 돈이 빠져나가지만, 전세는 계약이 끝나면 보증금을 돌려받는다. 전세보증금은 내 집 마련의 종잣돈이 되고, 사회적 이동의 사다리가 된다.

 

물론 전세의 문제점도 분명하다. 전세사기와 깡통전세는 제도 자체의 결함이라기보다 정보 비대칭, 허술한 대출심사, 임대인의 도덕적 해이, 부동산 시장의 왜곡 등 복합적 요인에서 비롯됐다.

 

임차인은 집주인의 재정 상태, 담보 설정 현황 등 핵심 정보를 알기 어렵고, 임대인은 과도한 레버리지로 다주택을 소유하다가 시장 침체 시 도산하는 구조가 반복됐다. 전세대출 규제 강화, 보증보험 한계, 공공임대주택 공급 부족 등 정책의 미비도 문제를 악화시켰다.

 

해외 사례를 보면, 미국, 독일, 일본 등은 월세 중심이다. 보증금은 1~2개월치에 불과하며, 계약갱신청구권 등 임차인 보호가 강하다. 반면, 한국의 전세는 ‘목돈’이 필요하지만, 장기 거주와 자산 형성에 유리하다. 

 

볼리비아의 안티크레티코처럼, 전세와 유사한 제도는 일부 개발도상국에만 존재한다. 그러나 선진국의 월세 중심 체제도 임대료 급등, 주거 불안정, 계층 간 격차 문제를 겪고 있다. 월세 중심 체제가 반드시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전세의 위기는 제도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운영과 관리, 그리고 시장·정책의 실패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에스크로 제도 도입, 임대인 신용정보 공개, 적정 수준의 대출 지원, 공공임대주택 확대, 임차인 보호 강화 등 제도 개선의 여지는 충분하다. 전세는 폐지의 대상이 아니라, 개선과 보완을 통해 더 안전하고 투명하게 발전시켜야 할 소중한 사회적 자산이다.

 

전세가 없는 한국 주거시장은,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사라진 사회만큼이나 삭막할 것이다. 우리가 전세를 포기한다면, 내 집 마련의 꿈도 함께 사라질 수 있다. 한국 주거정책의 미래는, 전세의 본질적 가치를 지키면서도 시대 변화에 맞는 혁신과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데 달려 있다. 전세는, 여전히 한국 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제도다.

 

필명 빠숑으로 유명한 김학렬 스마트튜브 부동산조사연구소장은 한국갤럽조사연구소 부동산조사본부 팀장을 역임했다. 네이버 블로그 ‘빠숑의 세상 답사기’와 유튜브 ‘스튜TV’를 운영·진행하고 있다. 저서로 ‘경기도 부동산의 힘(2024)’​ ‘서울 부동산 절대원칙(2023)’ ‘인천 부동산의 미래(2022)’ ‘김학렬의 부동산 투자 절대원칙(2022)’ ‘대한민국 부동산 미래지도(2021)’ ‘이제부터는 오를 곳만 오른다(2020)’ ‘대한민국 부동산 사용설명서(2020)’ 등이 있다.​

김학렬 스마트튜브 부동산조사연구소장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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