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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림 탐식다반사] 홍어, 과메기와 '피단'의 공통점은?

알칼리에 파묻힌 달걀의 황 맛이 작용해 꼬릿꼬릿한 숙성취를 자비 없이 내뿜는…

2018.10.30(Tue) 18:03:39

[비즈한국] 홍콩엘 다녀왔다. 도쿄는 일본이고 상하이는 중국, 호치민은 베트남, 자카르타는 인도네시아고 서울은 한국이지만 홍콩만은 중국 또는 홍콩 그 자체가 아닌, 세계다. 아시아에서 가장 국제화된 도시가 홍콩이다. 아시아에 뉴욕을 시전한다면 홍콩이 펼쳐질 터이고, 실제로 뉴욕과 같은 다양성의 모습이 펼쳐진 곳이 홍콩이다. 특히 식재료의 다양성은 아시아에서 실현이 가능한 최대치를 찍는다. 최고는 아니지만 최고에 준하는 것들이 홍콩에 몰려든다.

 

피단(皮蛋) 역시 홍콩에 좋은 것들이 몰려 있다. 홍콩의 장기인 광둥음식 전문점에 가면 에피타이저에 빠짐없이 피단이 올라 있다. 한국에서 피단을 먹을 기회란 양장피 한편에 놓인 달걀 장조림 같은 것이나 중국 음식 거리에서 간신히 찾아내 먹을 일 정도이지만, 홍콩쯤 되면 골라 먹는 재미까지 있는 것이다.

 

장궈룽(張國榮)뿐 아니라 정치인, 재력가, 배우, 가수 등 온갖 명사들의 단골집으로 알려진 ‘푹람문’의 피단. 사진=이해림 제공


원래 피단은 대부분 오리알, 아니면 달걀이나 메추리알을 흙, 재, 소금과 석회, 쌀겨, 홍차 등을 뒤섞은 것에 파묻어 두세 달가량 숙성한 음식이다. 알칼리에 파묻힌 달걀의 황 맛이 작용해 구수함을 넘어 명백하게 꼬릿꼬릿한 숙성취를 자비 없이 내뿜는다. 예전에는 식당이나 가정에서도 만들어 먹었겠지만, 요즘은 공장에서 특허 기술로 만들어지는 식품이 되었다. 두 달씩 달걀이나 썩히고 있을 여유가 다들 없어진 것이다. 

 

홍콩의 값비싸고 자부심 높은 광둥 식당들 역시 피단은 밖에서 사온 것을 툭툭 썰어서 낸다. 홍콩에 도착한 후 처음으로 피단을 주문한 것은 홍콩섬 완차이(Wanchai) 지역의 유명 광둥 식당인 푹람문(Fook Lam Moon)에서였는데, “피단은 식당에서 만들지 않고 밖에서 사오는 것”이라고 답하는 눈빛에 조금의 민망함이나 수치심 따위는 없었고 ‘이런 걸 식당에서는 못 만들지. 당연한 걸 묻고 그래?’라는 핀잔이 읽혔기에 이후로 피단을 주문할 때마다 공장 것이겠거니 추측할 수밖에 없었다. 홍콩의 지가가 하도 높으니 사실 식당 안에 피단을 숙성할 공간 따위 있을 턱이 없다.

 

결코 처음부터 사랑하진 않았지. 누군가에겐 무시무시할 피단의 자태. ‘레이가든’ IFC점의 것. 사진=이해림 제공


피단은 새콤달콤하게 절인 중국 생강, 설탕과 함께 나온다. 설탕을 슬슬 뿌려서 도톰하게 슬라이스한 생강과 함께 먹는 것이 피단 먹는 법이다. 중국 생강은 한국의 것처럼 찌릿하게 맵지 않아 듬뿍 집어 먹을수록 피단과 조화가 좋다. 푹람문의 피단은 삭힌 정도로 치면 중간 정도. 너무 강하지 않은 숙성취가 대중적인 입맛에 잘 맞았다. 장궈룽(장국영)이 단골이었던 식당으로 유명세를 갖고 있는 만큼 너무 과한 피단을 선택하진 않은 모양이다. 

 

여기서 잠깐. 그래 봐야 한국의 피단에 비하면 어디까지나 본격의 영역이다. 푹람문의 마일드한 피단조차 노른자는 잿빛이 된 채 반쯤 녹아 젤 상태로 출렁이고, 한국에서 먹는 지고지순한 피단에 비하면 꼬릿꼬릿한 향이 세 배쯤은 된다. 홍어, 과메기와 피단의 공통점은 숙성을 했다는 것이고, 모든 사람이 처음부터 즐길 수는 없는 음식이라는 것이다.

 

‘레이가든’의 피단은 푹람문에서 한 발 더 갔다. 역시 광둥 식당으로 명성이 있는 곳인데 홍콩뿐 아니라 해외에도 곳곳에 지점을 두었다. 외국인들과 여행자들이 주로 찾는 센트럴의 IFC 지점에서 주문한 피단은 손님에 대한 배려가 전무했다. 반쯤 녹은 노른자는 여기도 마찬가지. 보석처럼 투명해진 흰자 역시 여기도 마찬가지. 

 

시장에서 파는 피단 진열 모습. 사진=이해림 제공


하지만 향은 한층 더 강력하다. 향의 결 또한 다르다. 재래 된장 맛이 다 다르듯, 같은 밭의 와인도 해마다 다른 맛이 나오듯, 피단 역시 자연에 의존도가 높다 보니 공장마다, 제조법마다 다 다른 맛이 나오는 점이 매력이다. 단연 내 피단 취향은 레이가든이고, 그래서 홍콩에 갈 때마다 한 끼 이상은 먹고야 마는 것이다.

 

두껍게 슬라이스한 생강 절임에 반쪽씩 나오는 피단을 한 입 가득 넣고 코로 숨을 쉬자면 내가 유황이 된 것 같고 내가 미생물이 된 것 같은 호접몽에 빠질 수 있다. ‘利苑’이라는 광둥어 이름보다도 영어로 풀이한 ‘LEI Garden’을 공식적으로 더 내세울 정도로 외국인 친화적인 이 식당이 ‘네이버 맛집’ 수준으로 한국 여행객들 사이에 특별할 것 없이 흔하게 발에 차임에도 홍콩에 갈 때마다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이유다. 본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배려하는 태도가 그 수많은 지점으로 이어진 게 아닐까 한다.

 

피단을 두드려보는 방법을 알려주는 카오룽 시티 시장 안 피단 가게 사장님. 사진=이해림 제공


한편 어느 식당에서도 알려주지 않았던 진귀한 피단 정보는 카오룽 시티(Kowloon city) 지역의 시장에서 얻을 수 있었다. 맛있는 피단은 1차적으로 노른자에서 결정된다. 액체인 노른자가 반쯤은 젤리 상태가 되어 굳고, 반쯤은 여전히 젤 상태로 흘러내리는 것이 맛있는 피단이다. 시장의 한 가게에서 피단을 사다가 얻은 것이 두드려보라는 꿀팁이다. 안에서 꾸덕한 액체가 출렁이는 특유의 둔탁한 진동이 느껴지는 것을 골라야 이상적인 피단이다. 

 

필자 이해림은? 패션 잡지 피처 에디터로 오래 일하다 탐식 적성을 살려 전업했다. 2015년부터 전업 푸드 라이터로 신문, 잡지 등 각종 매체에 글을 싣고 있다. 11월 초 출간될 ‘탐식생활: 알수록 더 맛있는 맛의 지식’ 외에도 몇 권의 책을 늘 준비 중이며, ‘수요미식회’ 자문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페이스북 페이지에서도 먹는 이야기를 두런두런 하고 있으며, 크고 작은 음식 관련 행사, 콘텐츠 기획과 강연도 부지런히 하고 있다. 퇴근 후에는 먹으면서 먹는 얘기하는 먹보들과의 술자리를 즐긴다.

이해림 푸드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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