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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달의 조각을 지구가 품고 있다?!

달의 기원 '테이아'의 흔적이 지구 맨틀 최하층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증거 발견

2021.08.17(Tue) 11:15:00

[비즈한국] “이의 있소!” 이 명대사로 유명한 캡콤의 재판 추리 게임 ‘역전 재판’ 시리즈가 있다. ‘역전 재판’의 첫 번째 시리즈 마지막 에피소드에서는 무려 15년간 미제로 남아 있던 살인 사건의 진범이 공소시효가 끝나기 직전 재판장에서 밝혀진다. 사건 당시 찾을 수 없었던 총알이 알고 보니 진범의 어깨에 박혀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 주인공은 금속탐지기를 사용해 진범이 몸에 숨기고 있던 총알의 존재를 밝혀내고 자백을 받아낸다. 

 

놀랍게도 최근 이와 똑같이 오랫동안 심증으로만 남아 있던 대충돌 사건의 전말을 밝힐 증거가 확인되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40억 년 전 갓 태어난 지구를 향해 화성만 한 크기의 고대 행성 테이아가 돌진했다. 대충돌의 결과 떨어져나간 테이아 반쪽의 파편들이 모여서 현재까지 지구 곁을 맴도는 달이 되었다. 하지만 달을 만들고 사라진 테이아의 나머지 절반의 흔적은 지금껏 태양계에서 찾을 수 없었다. 거대한 충돌 순간 떨어져나간 테이아 반쪽이 종적을 감춘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최근 지질학적 탐사를 통해 바로 그 거대한 탄환이 40억 년간 지구 내부에 고스란히 숨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지구의 달을 만든 고대 행성 테이아의 흔적이 지구 안에서 발견되었다.

 

지구 곁을 맴도는 저 거대한 달은 대체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천문학자들은 아폴로 미션 기간에 가지고 온 달 샘플을 분석해서 오래전 지구에 벌어진 거대한 충돌의 결과 달이 만들어졌을 것이라 이야기하는 대충돌 가설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태양계가 완성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지구와 비슷한 궤도를 돌고 있는 작은 행성이 하나 있었다. 이 고대 행성은 지구와 태양의 중력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는 라그랑주 4 포인트에 놓여 지구와 함께 태양 주변을 돌았다. 하지만 점차 균형을 벗어나면서 이 행성체는 서서히 궤도가 요동치기 시작했고 결국 지구를 향해 곤두박질쳤다. 이 거대한 충돌로 인해 지구는 지금처럼 자전축이 살짝 기울어지게 되었다. 충돌 순간 뜯어져나간 지구의 파편과 고대 행성체의 파편이 함께 지구 주변에서 다시 뭉치면서 오늘날까지 지구 곁을 맴도는 달이 되었다고 추정한다. 이렇게 40억 년 전 지구와 부딪히고 사라진 고대 행성체에게 달의 여신 셀레네의 어머니 ‘테이아’의 이름을 붙여서 추억하고 있다. 

 

현재 달의 질량은 지구의 약 1.2퍼센트다. (달의 지름은 지구보다 4분의 1배 작고 밀도도 지구의 60퍼센트에 불과하다.) 천문학자들의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지금 수준의 달을 만들기 위해선 애초에 테이아의 맨틀 질량이 지구 질량이 최소 8퍼센트 이상이었어야 한다. 테이아는 상당히 높은 밀도의 암석으로 구성되었을 거라 추정된다. 테이아의 맨틀 자체만 지금의 달에 비해서 6~7배 더 무거웠어야 한다. 즉 달을 만들고도 상당히 많은 질량의 테이아 조각이 남았을 것이다. 사라진 상당량의 테이아 덩어리들, 이 사라진 탄환을 찾아내야만 대충돌 시나리오의 진위를 밝힐 수 있을 것이다. 

 

지구와 테이아가 충돌하면서 달이 형성되는 과정을 재현한 시뮬레이션. 이미지=Sergio Ruiz-Bonilla

 

오랫동안 천문학자들은 태양계 공간에 흩어진 소행성들 사이에서 그 흔적을 찾아내려 했다. 하지만 속 시원한 답은 찾지 못했다. 이미 사라지고 없는 고대 행성의 존재 여부를 밝히는 건 어려운 일이다. 사건 현장을 아무리 찾아봐도 총알 자국과 화약 냄새만 남아 있을 뿐 가장 확실한 증거인 탄환은 사라진 상황이었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한 흥미로운 가능성이 최근 거론되기 시작했다. 달을 만들고 남은 테이아의 일부가 지금껏 지구 내부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는 것이다!

 

지질학자들은 지구 전역에서 벌어지는 지진의 진동이 얼마나 빠르게 어느 각도로 퍼져나가는지를 통해 직접 들여다볼 수 없는 지구 내부의 지도를 그린다. 지구 내부 물질의 밀도 분포에 따라 지진파가 퍼지는 속도와 꺾이는 각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마치 수박을 직접 자르지 않고 두드려 진동을 통해 과육이 얼마나 단단하게 잘 익었는지를 파악하는 것과 비슷하다. 이런 지진파 탐사를 통해 지구 내부 맨틀 최하층에서 이상한 영역이 발견되기 시작했다. 유독 전단파(Shear wave), S파 지진파가 아주 느리게 전달되는 영역이 있는데, 이를 거대 저속도 전단파 구역, LLSVP(Large low-shear-velocity provinces)라고 한다. 특히 아프리카대륙에서 아이슬란드까지의 영역 아래와 태평양 지하에 맨틀 최하층에서부터 수 Km 높이로 거대하게 이 구조가 쌓여 있다. 최근까지 확인된 이 수상한 영역은 지구 맨틀의 8퍼센트에 달하는 아주 거대한 부피다. 

 

아프리카와 태평양 지하 맨틀 최하층에 분포하고 있는 LLSVP 물질. 이미지=D. Rhodri Davies S et al. 2015


지구 맨틀 깊이 가라앉아 있는 이 덩어리의 정체는 무엇일까? 과거 지질학자들은 단순히 고대의 지구 대륙 일부가 맨틀 깊숙이 가라앉은 결과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왜 하필 특정 대륙 지각만 가라앉아야 하는지는 완벽히 설명하지 못했다. 

 

그런데 아이슬란드의 한 화산에서 이 거대한 지하 구조물에서 나온 것으로 생각되는 맨틀이 굳은 암석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분석 결과, 지구의 일반적인 맨틀에 비해서 2~3퍼센트 더 높은 밀도의 물질이 굳어서 만들어진 암석으로 확인되었다. 즉 지구의 맨틀 최하층에 거대하게 가라앉아 있는 이 미지의 성분은 일반적인 지구의 맨틀에 비해서 조금 더 밀도가 높다. 게다가 이 맨틀 조각의 나이는 달보다 더 오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더욱 흥미롭게도 지구 내부 맨틀 최하층에 이 이상한 물질이 쌓여 있는 지역을 따라서 지구의 자기장이 유독 약하게 나타난다. 지구 주변을 맴도는 인공위성도 감지할 수 있을 정도로 아프리카대륙 남부 지역에 지구 자기장이 아주 약한 자기장 구멍이 존재한다. 이 자기장 구멍이 위치하는 영역을 보면 마침 아프리카대륙 바로 아래 LLSVP 물질 덩어리가 분포하는 영역과 일치한다. 지구 맨틀 속에 잠겨 있는 이 수상한 물질이 지구 자기장에도 큰 영향을 주고 있다고 추정할 수 있다. 

 

마침 지진파 탐사로 추정되는 지구 내부 LLSVP 물질의 전체 질량은 대략 지구 전체 질량의 6퍼센트 정도 된다. 달을 만들고 사라진 남은 테이아의 질량에 딱 들어맞는다. 다시 말해서 현재 달의 질량과 지구 맨틀 속에서 확인된 수상한 물질의 질량을 함께 더하면 40억 년 전 지구에 충돌한 테이아의 질량을 모두 채울 수 있다. 게다가 앞선 다른 연구에서는 지구 내부 맨틀 속의 네온과 제논 등의 동위원소 분석을 통해서 LLSVP 맨틀의 나이가 지구와 테이아가 충돌한 시기와 유사하다는 근거도 제시했다.

 

지구에 테이아가 충돌하면서 달이 만들어지고 맨틀 최하층에 테이아의 흔적이 가라앉는 과정을 담은 그림. 이미지=Li et al. 2021

 

결국 이런 시나리오를 완성할 수 있다. 과거 태양계에는 우리가 테이아라고 부르는 고대 행성이 정말 존재했다. 테이아는 지구에 충돌했고, 지구의 맨틀과 테이아의 일부가 뒤섞였다. 바깥으로 떨어져나간 조각들이 모여서 굳은 결과 달이 되었다. 마침 테이아의 맨틀은 순수한 지구의 맨틀보다 살짝 더 밀도가 높았고 지구 맨틀 최하층으로 가라앉았다. 그리고 지금껏 사라지지 않고 고스란히 그 안에 쌓여 있었다. 그래서 유독 아프리카대륙과 태평양 두 지역 아래에서 S파 지진파가 느리게 전파되고, 또 그 지역을 따라 지구의 자기장도 더 약하게 분포하게 된 것이다! 

 

놀랍게도 우리 지구는 과거 자신에게 벌어졌던 격렬한 대충돌 사건의 가장 중요한 스모킹 건을 고스란히 품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사라진 탄환을 지구 내부가 아닌 지구 바깥 우주 공간에서 찾느라 고생하고 있던 셈이다. 그동안 우리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상상 속의 용의자 테이아를 쫓으면서 잘못된 방향으로 범인은 찾는 건 아닐지 내심 불안했다. 하지만 비로소 그 불안감을 날려보낼 수 있는 마지막 남은 실마리, 숨어 있던 탄환의 존재를 확인하게 되었다. 이제서야 하필 우리 지구 옆에 저 거대한 달이 만들어지게 된 특별한 사건의 그림이 완성되는 듯한 느낌이다. 

 

물론 지구를 반으로 쪼개 안을 들여다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언젠가 또 지금의 시나리오에 반하는 새로운 증거가 발견될 수도 있다. (지금 당장은 그럴 일이 벌어질 가능성은 극히 낮아보이지만 말이다.) 만약 그런 새로운 혼란의 순간이 다시 찾아온다면, 누군가 우주를 향해 새로운 증거를 들이밀며 이렇게 외칠 것이다. “이의 있소!” 

 

오늘밤 하늘에 뜬 달을 바라보며 생각해보자. 우리는 머리 위의 달을 바라볼 뿐 아니라 발 아래 딛고도 서 있다는 것을. 달을 만들고 남은 나머지 조각을 지구 맨틀 깊숙이 묻은 채. 

 

참고

https://science.sciencemag.org/content/371/6536/1295.summary

https://www.hou.usra.edu/meetings/lpsc2021/pdf/1980.pdf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61-020-0599-9?proof=t

https://www.nature.com/articles/nature11141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galaxy.wb.z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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