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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덕일기2] 난세의 영웅 ‘박정석’의 출현

2016.05.19(Thu) 10:29:00

월드컵 있었던 2002년 말구요, 스타리그 처음 봤던 2002년이요.

2002년 스카이배 스타리그는 ‘임빠’(임요환 팬)에게는 전승‘준’우승으로, 임요환의 팬이 아닌 ‘임까’(임요환 안티팬)들에게는 ‘영웅의 탄생’으로 기억된다. 사실 스타크래프트의 팬들은 임빠와 임까로 구분돼 있으나 임까는 임요환을 까면서도 좋아하니 곧 임까가 임빠고, 임빠가 임까다. 어쨌거나 그 영웅의 이름은 이름부터 반듯한 ‘박정석’이었다.

   
▲ 영웅 박정석의 전설의 오프닝 장면.

2002년 스카이 스타리그의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영웅’, ‘등짝’ 박정석이다. 지금에야 근엄한 LOL프로게임단 감독님에다가 결혼도 못하고 운동도 덜해서 살만 찐 아저씨지만, 2002년 박정석은 부산에서 막 상경한 순박한 소년이었다. 한껏 올린 머리에 뽀얀 피부와 입술 근처에 큰 점은 그를 순박을 넘어 점박이 소년으로 만들었다.

 

난세엔 영웅이 있나니

시대가 영웅을 만들었다. 스타리그 진출자 16명 중의 프로토스는 2명이었다. 심지어 그 1명은 16강 조별예선 때 탈락했다. 남은 1명이 박정석이었다. 황제의 우아한 결승진출과 달리 영웅의 결승진출은 투박하고 거칠었다.

   
박정석은 선 굵은 외모로 남성팬층이 두터웠다.

박정석의 결승행은 손학규의 기묘한 서민체험처럼 정말 기기묘묘했다. 프로토스의 천적인 저그 2명과 재경기 끝에 8강에 진출했다. 4강에서는 16강에서 만난 홍진호와 다시 만났다. 프로토스 잡는 귀신이던 ‘폭풍’ 홍진호에게는 3:2로 신승했다. 홍진호와 박정석의 악연은 2004년 에버(Ever)배 스타리그까지로 이어진다. 결승에선 ‘황제’ 임요환을 만났다. 박정석은 프로토스전에 약점을 가진 임요환을 3:1로 꺾었다. 온게임넷 스타리그 3회 우승을 바라던 황제였다. 하지만 대관식의 주인공은 황제가 아닌 영웅이었다. 

박정석은 테본(테란전 본좌: 대 테란전 실력이 좋다는 의미)였다. 임요환은 토막(토스전 막장: 대 프로토스전 실력이 낮다는 의미)이었다. 건축학개론의 문구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처럼 임요환은 ‘프로토스 모두의 밥’이었다. 2001년 SKY배 대회 때는 김동수한테 밀렸다. 오영종, 강민의 화려한 데뷔와 즉위식 모두에는 임요환이 조연으로 출연했다.

 

박정석의 무당스톰은 쭉쭉쭉, 임요환의 물량은 줄줄줄

곱상한 임요환의 외모와 선 굵은 박정석의 외모가 대비되듯이 그들의 경기 스타일 역시 달랐다. 임요환의 게임 스타일은 화려함과 유려함 그리고 긴박함으로 무장된 그린그래스식(본 시리즈) 액션영화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드랍쉽, 멈추지 않는 벌쳐, 견제 이후에 진출하는 탱크러시. 그에 비해 박정석은 묵직했다. 견제를 버티고, 전략을 버티고 테란의 병력을 물량으로 찍어 눌렀다. 킹덤 오브 헤븐식 액션영화다. 

   
스카이배 2002 스타리그 결승전 장면.

‘한방러시’(병력을 모아 한번에 치고 나가 게임을 끝내는 방식)로 대표되는 박정석의 스타일은 황제를 짓누르는 마지막 경기에서도 빛났다. ‘무당스톰’(무당만큼 앞을 예측하고 프로토스 기술인 사이오닉스톰을 잘 맞추는 것)으로 웅장하게 마무리했다.

당시 임요환과 박정석의 승부가 갈린 4경기 맵은 ‘네오 포비든 존’이라는 반섬맵이었다. 본진에서 투배럭으로 시작한 임요환은 마린 메딕 드랍으로 박정석을 공격했다. 리버와 다크템플러로 수비한 박정석은 이어 막멀티 + 질럿드라군 조합의 지상군으로 임요환을 압박했다. 마린 메딕 드랍 이후 빠르게 앞마당을 먹은 임요환이었으나, 앞마당에 SCV를 늦게 붙이는 바람에 멀티가 활성화되지 않았다. 무려 6개의 팩토리가 있었으나 대부분 정전이었고 유닛 생산은 조루였다. 당시의 게임 중계를 지금 와서 들으면 꽤나 오그라든다. 

전용준 캐스터 : “으어어어 템플러로 지지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스톰이 많이 나옵니까! 무한 사이오닉 스톰입니다!!!”(→고작 2방의 사이오닉 스톰)

엄재경 해설 : “껄껄, 이 경기 진짜 모르겠네요. 진짜 둘 다 할 말을 잃게 만드는 플레이네요. 임요환 선수 물량전으로 가나요.”(→사실 경기는 프로토스가 시종일관 유리했으며, 테란의 병력은 6팩토리 치고 너무나 초라했다.)

김태형 해설 : “캐리어 나오네요.”(→2기 나왔다.)

박정석은 트레이드 마크인 무당스톰으로 임요환의 병력을 찢고 GG를 받아냈다.

결승전 관중은 2만 5000명이었다. 이 기록은 아직까지 깨지지 않았다. 올림픽공원에서 황제를 꺾고 대관에 오른 영웅이지만, 그의 제위기간은 길지 않았다. 2002스카이배 스타리그를 이은 파나소닉 스타리그에서 새로운 본좌가 탄생했기 때문이다. 그 본좌의 이름은 ‘이윤열’이다.

구현모 필리즘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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