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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춘욱 경제팩트] 차라리 노동착취 공장 제품을 사라?

나이키 불매운동이 아동노동을 근절하지 못한 이유

2017.03.27(Mon) 11:36:51

[비즈한국] 1996년 라이프지 6월호에는 한 장의 사진이 담겼다. 파키스탄 아이가 나이키 축구공을 만드는 이 사진은 전 세계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어린아이가 학교도 안 가고 축구공을 만드는 모습을 본 시민단체와 소비자들은 나이키에 항의했고 불매운동을 시작했다. 

 

나이키의 아동노동을 보도해 전 세계에 충격을 던져주었던 ‘라이프’ 지의 사진. 사진=라이프


그런데 이런 불매운동이 정작 파키스탄의 아동노동을 척결하고 또 삶의 질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까?

 

물론 노동착취 공장(sweatshop)에서 생산된 물건을 사지 않겠다는 생각은 매우 고매한 의도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까지 고매한 것인지 한번 살펴보자는 이야기다. 

 

최근 읽은 책 ‘냉정한 이타주의자’는 매우 흥미로운 반론을 제기한다.

 

노동착취 공장이 불매운동이나 정치적 압박에 굴복해 문을 닫으면 그 공장에서 일하던 근로자들은 더 나은 일자리를 얻을 수 있을까?

 

현실은 반대다. 가난한 나라에서는 노동착취 공장이 좋은 일자리다. 대안이라고 해봐야 저임금 중노동에 시달리는 농장 일꾼, 넝마주이 등 더 형편 없는 일자리뿐이고 심지어 실직자가 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중략)

 

기꺼이 일하려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노동착취 공장이 상대적으로 좋은 일자리라는 사실을 방증한다. 이들 대부분은 자발적으로 노동착취 공장을 택한 노동자들이며, 갖은 애를 쓴 끝에 겨우 일자리를 얻은 사람도 있다. -본문 183쪽

 

참혹한 진실이라 할 수 있다. 1993년 아이오와주 상원의원 톰 하킨은 아동 착취 제품의 수입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아동노동억제법’을 발의했는데, 이런 행동은 뜻밖의 결과를 낳았다.

 

톰 하킨 의원이 ‘아동노동억제법’을 발의할 당시, 방글라데시에는 수많은 아동이 기성복 제조 공장에 고용돼 있었다. 법안 통과를 우려한 공장 측에서 무려 5만 명에 달하는 아동 노동자들을 발 빠르게 해고했는데, 알고 보니 이 아동들은 학교로 돌아가거나 더 좋은 일자리를 찾아 떠난 것이 아니었다.

 

미국 노동부는 “대다수 아동이 더 영세한 미등록 하청 의류공장이나 기타 업종으로 옮긴 것으로 보인다”라고 보고했다. 다국적 기업의 하청공장이 현지 하청업체보다 임금이 높다 보니 이들 아동의 생활고는 더욱 심해졌다. 

 

유니세프 조사 결과 해고당한 미성년 의류 노동자 다수가 생존을 위한 궁여지책으로 길거리 사기단, 성매매 등에 내몰린 사례까지 있었다. -본문 185쪽

 

문제의 원인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다. 

 

아동이 돈을 벌기 위해 기성복 공장에 나가는 것은 그 나라가 매우 가난하다는 것, 더 나아가 부모들이 자녀를 제대로 부양할 만큼 괜찮은 일자리가 없다는 것을 시사한다. 부유한 나라에서 아이를 공장에 내보내는 부모는 처벌 받아야 마땅하지만, 방글라데시나 파키스탄처럼 가난한 나라에서 이 잣대를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느냐는 이야기다. 오히려 아동 근로자들을 고용한 기업의 제품을 구매하는 대신, 더 나은 근로여건에서 아이들이 일할 수 있게 압력을 가하는 게 더 나은 방법이 아닐까?

 

아동 노동으로 생산한 제품의 수입을 금지하자, 아이들은 더 열악한 공장에서 일하게 되었다. 아동 노동 금지만을 주장하기보다는, 아동 노동이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에 관심을 기울이고 일하는 환경이 개선되도록 기업과 정부에 압력을 가하는 게 현실적인 방법이 아닐까.


물론 가장 좋은 방법은 방글라데시와 파키스탄 정부가 한국이나 대만처럼, 성공적인 경제발전 전략을 채택하고 강력하게 추진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아동 노동에 대해 선진국 소비자들이 고민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이건 참으로 쉽지 않다. 한국이나 대만은 북한과 중국이라는 현실적인 위협에 맞서 토지개혁을 비롯한 핵심적인 개혁을 추진할 수 있었다. 한국과 대만에서 이뤄진 토지개혁은 공산화의 위험을 퇴치했을 뿐만 아니라, 계급을 타파하고 사회를 평등하게 만들어 ‘누구나 노력하면 부유해질 수 있다’는 생각을 갖는 계기를 제공한 바 있다. 그런데 과연 다른 신흥국, 특히 지지기반이 불안정한 정부가 그렇게 과단성 있는 조치를 취할 수 있을까? 더 나아가 50년대에 비해 미국 등 선진국의 대외원조 규모도 훨씬 줄어들었는데?

 

저개발국가의 경제 정책을 바른 방향으로 유도하기 어렵다면, 선진국 소비자 입장에서 아동 노동착취에 흥분하기보다는 그런 공장에 일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관심을 기울이는 게 최선이 아닐까? 그리고 ‘상대적으로 더 나은 근로여건을 갖춘’ 공장의 제품을 선호하고, 또 그렇게 되도록 유도하는 게 바른 방향이 아닐까?

홍춘욱​ 이코노미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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