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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춘욱 경제팩트] 트럼프 '멕시코 장벽'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까닭

최장 셧다운 배경엔 장벽 건설비…지리조건·마약전쟁 때문에 이동 막기 어려워

2019.02.11(Mon) 09:28:15

[비즈한국] 얼마 전까지 세계 금융시장 참가자들은 미국 연방정부의 셧다운 때문에 가슴을 졸여야 했다. 세계 GDP의 20% 이상, 그리고 소비자 시장만 보면 30% 이상을 차지하는 거대 시장 미국의 정부가 제 역할을 못한 채 멈춰선 것은 세계경제에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더 나아가 사상 최장 셧다운의 가장 큰 이유가 바로 ‘멕시코 장벽’ 건설 비용 문제라는 걸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 곤혹스러웠던 투자자들이 많았을 것이다. 특히 미국과 인접했다는 ‘지리적 이점’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미국의 5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멕시코의 1인당 국민소득 수준도 이해를 가로막는 또 하나의 ‘장벽’이라 할 수 있다. 

 

1960년 이후 미국·캐나다·멕시코·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 변화(달러 기준). 자료=세계은행

 

그러나 최근 흥미롭게 읽은 ‘21세기 미국의 패권과 지정학’ 덕분에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열대 기후의 악영향에 맞서는 게 멕시코가 가장 먼저 극복해야 하는 난관이다. 이에 맞서 멕시코 사람들은 높은 지대에 사는 방법을 선택했다. (중략) 그러나 열대 기후의 시련에서는 벗어나지만, 산악 지대라는 새로운 시련으로 뛰어드는 셈이다. 왜냐하면 산악 지대는 여러 가지 면에서 열대 기후 못지않게 살기 버겁기 때문이다. 

 

산악 지대는 넓은 평지가 자리 잡기 힘들다. 멕시코에는 미국의 중서부 지역처럼 많은 자본을 창출하거나 넓은 후배지가 있는 도시 지역이 단 한 군데도 없다. (중략) 한 지역에 구축된 기간 시설은 다른 지역과 연결되어 시너지를 내기가 불가능하다. -책 382~383쪽

 

물론 철도의 시대가 열리면서 고립된 산악 지대를 서로 연결할 수 있게 되었지만, 산악 지대의 특성으로 인해 중앙정부의 힘이 지역까지 투사되기 어렵다. 산악 지대별로 토호세력이 자리 잡고 있는 상황에서 전국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중앙정부의 재정도 부실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있는 운송 시설도 지역 토호들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용도로 볼모 잡혀 있다. 이들이 소유한 기간시설을 자동적으로 정부가 사용하게끔 되어 있지 않다. 설상가상으로 지역 토호들이 가장 쓸모 있는 토지를 개발해왔다. 너무 건조한 북부 산악지대나 너무 습도가 높은 남부 산악 지대는 거의 경제적으로 쓸모가 없고, 따라서 지역 토호들의 경제 활동도 부진하고 기간 시설도 거의 없다. (중략)

 

본질적으로 멕시코에는 성공적인 국가가 되기 위해 갖춰야 하는 지리적 특성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중략) 세계적으로 멕시코만큼이나 지리적으로 저주를 받은 또 다른 나라는 아프가니스탄뿐이다. 1900년 무렵 운이 조금 트여 석유라도 발견되지 않았다면 멕시코는 오래전에 망각의 역사 속으로 사라졌을 가능성이 높다. -책 386~387쪽

 

저자 피터 자이한의 말대로라면 멕시코는 앞으로도 미래가 불투명한 나라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북부의 건조한 산악지대를 보여주는 외신의 ‘사진’을 보면 멕시코에서 가장 거대한 도시가 형성되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왜 그럴까? 

 

2007년 3월에 찍은 미국과 멕시코 국경 지대. 놀랍게도 왼쪽이 미국의 샌디에이고이고, 오른쪽 번화한 곳이 멕시코 티후아나이다. 사진=미 연방정부

 

멕시코의 처지가 아무리 참혹하다고 해도 제대로 볼 줄 아는 사람이라면 아프카니스탄만큼 참혹하다고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세계적인 소비 시장, 미국이 바로 옆에 있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멕시코의 약점이 성공을 보장해준 셈이다. (중략) 

 

멕시코의 노동력은 저렴하고 남아돌게 되므로, 거의 무한한 미국의 수요를 충족시키려는 사람에게 멕시코는 매우 매력적인 노동시장이다. 이러한 차이가 멕시코의 경제적 성공의 비결이다. -책 387쪽

 

이제 트럼프 대통령이 거대한 멕시코 장벽을 건설하려는 이유가 밝혀졌다. 참고로 2018년 통계에 따르면 미국 내 히스패닉계의 비중은 18%에 이른다고 한다. 그리고 이 거대한 인구집단이 미국으로 이동을 멈추기는커녕 더욱 늘어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바로 멕시코의 마약 전쟁 때문이라고 한다. 

 

멕시코가 (가혹한) 지리적 여건 때문에 박탈당한 경제적 기회를 누리게 해주는 것은 멕시코와 미국의 임금격차다. 이 임금 차이가 멕시코 경제의 생명줄이다. 멕시코를 강타하고 있는 마약 전쟁만큼 멕시코의 임금 수준을 끌어내리는 요인은 없다. 실제로 마약 전쟁에서 폭력이 난무할수록 멕시코 임금은 하락하므로 (중략) 미국 시장에서 경쟁 우위를 누리려는 외국인 직접투자 자본에게 멕시코는 더 매력적인 투자처가 된다. -책 393쪽

 

끔찍한 마약 전쟁 때문에 오히려 멕시코는 점점 더 미국과 가까워지는 셈이다. 이 결과 미국-멕시코 국경은 이미 사라진 것과 같은 상태가 되었다. 

 

2014년 현재 미국은 하루에 20억 세제곱 피트의 천연가스와 100만 배럴에 달하는 정제 연료를 멕시코에 수출하고 멕시코는 하루 100만 배럴에 달하는 원유를 미국으로 수출한다. (중략) 2013년 현재, 양국 국경을 가로지르는 상품은 5100억 달러어치로 멕시코는 미국에게 세 번째로 큰 교역 상대국이다. (중략)

 

2014년 3억 5000만 건의 합법적인 월경이 있었다. 불법적으로 국경을 건너는 경우를 제외하고도 이는 인류 역사상 가장 발길이 빈번한 국경이다. (중략) 미국이 멕시코와 통합하기를 바라는지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는 게 문제가 아니다. 미국은 이미 멕시코와 통합되어 있다. -책 394~395쪽

 

이상과 같은 변화는 경제 전반으로 보면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무엇보다 물가가 안정되며, 가계는 예전보다 더 강력한 구매력을 갖게 될 것이며 기업은 저임금을 무기로 공격해오는 해외의 경쟁자에게 대응할 수단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 대신 미국의 근로자들은 자신의 직장이 멕시코로 이동하고, 더 나아가 멕시코 사람들이 입국해 자신과 저임금 일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일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트럼프 대통령의 뜻대로 50억 달러에 달하는 거대한 장벽을 멕시코에 쌓는다고 해서 현재의 흐름에 변화가 나타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왜냐하면 멕시코의 국가적 실패는 미국으로의 통합을 가속화할 가능성이 높은 데다, 미국의 성공이 멕시코와의 통합을 유발하는 측면도 많기 때문이다. 부유하며 상대적으로 투명한 정부, 더 나아가 훨씬 좋은 근로조건이 기다리고 있는데 멕시코 사람들의 미국으로의 이동을 ‘장벽’ 하나 쌓는다고 막을 수 있겠는가? 

 

어쩌면 트럼프 대통령은 ‘패배가 예정된 싸움’을 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정치인으로서 그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되나, 부디 빠른 시간 내에 장벽 관련 협상이 타결되기를 바란다. 

 

필자 홍춘욱은 연세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 2011년 명지대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3년 12월 한국금융연구원에 입사한 후 교보증권, 굿모닝증권에서 경제 분석 및 정량 분석 업무를 담당하며 ‘베스트 애널리스트’로 선정되기도 했다. KB국민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와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투자운용팀장을 거쳐 현재 키움증권 리서치센터에서 투자전략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홍춘욱 이코노미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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