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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우주배경복사에서 찾은 '태초'의 흔적

미세한 밀도 차이가 급팽창 거치면서 은하 탄생 '씨앗'으로 작용

2019.11.04(Mon) 11:59:02

[비즈한국] 카페에서, 길거리에서 우연히 처음 듣는 노래가 맘에 들면 스마트폰을 꺼내 음악이 흘러나오는 스피커 쪽으로 가져다 댄다. 그러면 놀랍게도 음악 검색 어플리케이션이 무슨 노래인지를 순식간에 찾아낸다. 사람이 어떤 노래인지를 맞히려면 기억력과 음감에 의존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컴퓨터는 인간과 다른 방식으로 음악을 느낀다. 

 

음악을 분석해 곡명을 알려주는 음악 검색 앱처럼, 우주의 배경음악인 우주배경복사를 이용하면 우주가 어떤 식으로 만들어졌는지를 유추할 수 있다.

 

음악 자체는 소리로 전달되는 아날로그 신호다. 하지만 컴퓨터는 아날로그 신호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우선 아날로그로 떠돌아다니는 음악 소리를 컴퓨터가 알아들을 수 있는 디지털 신호로 옮겨주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다음 컴퓨터는 디지털로 번역된 음악 신호의 스펙트럼을 분석한다. 악기마다, 가수마다 특정한 고유의 주파수로 소리를 만든다. 우리가 음악을 들으며 악기나 가수마다 음색이 다르다고 느끼는 그 미묘한 차이가 바로 여기에서 온다. 따라서 컴퓨터는 음악의 각 스펙트럼에 어떤 주파수의 신호가 얼마나 많이 포함되어 있는지를 분석하는 방식으로 음악을 번역한다. 

 

잔잔한 호수에 다양한 크기의 돌멩이를 던지며 파문을 일으키는 모습을 떠올리면 음악 검색 앱의 원리를 이해하기 쉽다. 작은 돌멩이는 호수에 작고 약한 파문을 일으킨다. 돌멩이 크기가 더 커질수록 호수에 발생하는 파문의 크기와 세기가 더 커진다. 호수 수면의 전체적인 파문을 분석하면, 어떤 크기의 돌멩이를 얼마나 많이 떨어뜨려서 그 복잡한 호수의 물결을 만든 것인지를 유추할 수 있다.​

 

잔잔한 호수 위에 동시에 여러 개의 파문이 함께 일어나 뒤섞이면 어떤 돌멩이가 파문을 일으킨 것인지 알기 어렵다. 하지만 그 복잡한 물결 속에 어떤 파문들이 섞여 있는지만 구분해낼 수 있다면 돌멩이 종류를 찾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미지=Zachary Wilson(Source: CK-12 Foundation)

 

음악 검색 앱은 이런 번역 과정을 통해 음악 스펙트럼의 DNA를 뽑아낼 수 있다. 사람마다 다른 유전 정보가 몸속에 들어 있는 것처럼, 어떤 주파수에 해당하는 신호가 얼마나 많이 들어 있는지를 표현하는 방식으로 여러 음악의 음악적 DNA를 추출할 수 있다. 지문 등의 유전정보가 달라서 사람이 구분되는 것처럼 음악 스펙트럼의 ‘음악적 유전정보’를 비교해 아카이브에 저장된 곡 중에서 어떤 음악의 유전정보와 가장 유사한지를 찾아낸다. 

 

#우주 전역에서 울려 퍼지는 BGM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에도 음악이 퍼져 있다. 천문학자들은 음악 검색 앱처럼, 우주 전역에 퍼져 있는 이 음악 소리를 분석해 태초에 우주라는 거대한 명작을 연주한 음악가의 정체를 추적하고 있다. 물론 안타깝게도 우주 전역에 퍼져 있는 이 음악 소리는 너무나 미미해서 그 음악을 연주한 음악가의 정체를 찾기는 쉽지 않다.

 

137억 년 전 우주가 시작되었다. 지금 우주를 가득 채우고 있는 모든 물질과 에너지가 원자보다 더 작은 한 점 안에 뭉쳐 있었다. 시간과 공간, 그 무엇도 없던 태초의 순간. 어느 순간 갑자기 이 작은 점은 불안정한 상태를 버티지 못하고 순식간에 팽창을 시작했다. 태초의 우주는 지금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급격히 팽창했다. 천문학자들은 이를 ‘우주의 인플레이션’이라고 부른다. 물가가 갑자기 치솟는 것처럼 우주의 시공간이 급격하게 늘어갔다. 

 

우주의 타임라인을 보여주는 그림. 우주 시공간이 탄생한 직후 아주 짧은 시기에 급팽창이 일어났다. 그 이후 우주는 천천히 팽창했다. 최근 들어 다시 팽창 속도가 빨라지는 급팽창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미지=NASA/ESA

 

급격히 팽창하면서 우주가 머금고 있던 어마어마한 에너지도 우주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우주는 하나의 거대한 고립된 계(system)로 볼 수 있다. 즉 우주의 바깥이란 세계 자체가 정의되지 않기 때문에 우주는 ‘외부’와 열과 에너지를 교환하지 않는다. 우주는 열과 에너지를 고스란히 간직한 채 크기만 커졌다. 이를 외부와의 열 교환이 없는 팽창이란 뜻에서 단열 팽창(adaibatic expansion)이라고 한다. 단열 팽창을 하게 되면 더 넓어진 공간으로 열이 퍼져나가기 때문에 온도가 서서히 내려간다.

 

태초의 우주는 거의 수십조 도에 육박하는 아주 높은 온도로 펄펄 끓고 있었다. 우주 이전에 지옥이 먼저 만들어졌는지도 모른다. 불지옥처럼 끓던 우주는 그 이후 빠르게 팽창하면서 온도가 내려갔다. 급팽창을 시작하고 약 38만 년이 흘렀을 때, 우주의 온도는 약 4000도 수준으로 내려갔다. 뜨거웠던 초기 우주 공간에서 결합하지 못하던 작은 입자들이 서로 붙어 결합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온도가 너무 높을 때는 입자 하나하나마다 너무 높은 에너지를 머금고 너무 빠르게 싸돌아다니기 때문에 다른 입자와 결합해서 더 큰 덩어리로 붙을 수 없다. 하지만 온도가 약 4000도 이하로 내려가면서 조금씩 작은 입자들이 결합해 더 큰 덩어리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우주 최초의 원자인 수소와 헬륨 등이 빚어졌다.

 

초기의 우주는 너무 빠른 속도로 돌아다니는 고에너지 입자로 가득한 입자들의 스프와 같은 상태였다. 이런 상태에서는 빛도 자유롭게 우주를 돌아다닐 수 없다. 출퇴근 시간대의 신도림역이나 강남역을 생각해보자. 건너편 승강장으로 걸어가려는 승객(빛)이 다른 승객(입자)들의 밀도가 너무 높은 탓에, 조금만 나아가면 곧바로 부딪혀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없는 상황이 펼쳐진다. 

 

하지만 사람이 다 빠져나간 한산한 오후라면 자유롭게 역 안을 돌아다닐 수 있다. 마찬가지로 우주가 팽창한 이후 온도가 내려가면서 입자들이 덩어리를 키우며 결합하자, 빛은 더 이상 다른 입자들과 충돌하지 않고 자유롭게 우주를 돌아다닐 수 있게 되었다.

 

플랑크 우주 망원경이 약 15개월 동안 관측한 데이터를 보여주는 영상. 27GHz와 1THz 사이의 주파수로 관측한 하늘 전체의 신호 속에서 배경 은하들과 별, 그리고 우주 공간 속 먼지의 신호 등 다른 배경 신호를 모두 빼면 마지막으로 우주 전역에 남아 있는 우주배경복사 신호만 골라낼 수 있다.

 

그 순간 비로소 우주 공간에 최초로 빛줄기가 퍼져나가게 되었다. 천문학자들은 우주의 나이가 약 38만 살이던 이때, 우주 공간에 처음으로 빛이 퍼져나간 순간이란 뜻에서 안개가 개는 것처럼 ‘우주가 갰다’라는 표현을 쓴다. 

 

처음 우주 공간으로 퍼져나간 태초의 빛줄기는 그 이후로도 꾸준히 팽창하는 우주의 시공간에서 계속 더 식었다. 우주 전역으로 퍼져나간 당시의 빛은 현재 절대온도 약 2.7의 아주 낮은 온도까지 식어버렸다. 지금도 우주 전역에서 고르게 수신되는 아주 미미한 노이즈 신호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우주 전역에 배경음악처럼 고르게 퍼져 있는 이 신호를 우주배경복사(CMB, Cosmic Microwave Background)라고 한다. 

 

#우주배경복사에 각인된 태초 순간의 악보 

 

우주배경복사는 우주 전역에 아주 고르게 퍼져나간 초기 우주 잔열의 흔적이다. 거시적으로 보면 우주는 통째로 같은 온도로 퍼져 있다. 하지만 우주가 완벽하게 균일한 온도를 갖고 있었다면 우리는 애초에 존재할 수 없다. 우리가 사는 은하가 만들어지려면 태초에 아주 미세한 밀도의 불균형이 있어야 한다. 

 

주변보다 아주 미세하게 더 밀도가 높은 지역을 중심으로 중력에 조금씩 물질이 끌려가고, 설산에서 굴러내려오는 눈덩이처럼 점점 더 많은 물질을 끌어모으며 성장하게 된다. 이렇게 물질이 모여드는 영역에 은하들이 형성될 수 있다. 이처럼 태초의 우주에는 오늘날 우주의 모습을 만들 수 있게 해준 미세한 밀도의 불균형, 바로 밀도 요동(Density fluctuation)이 존재했어야 한다.[1]

 

플랑크 우주 망원경이 새롭게 완성한 가장 정밀한 우주배경복사의 모습. 사진 속 빨간색과 파란색으로 표현된 색깔의 차이가 미세한 온도·밀도의 차이를 의미한다. 이미지=European Space Agency·Planck Collaboration

 

태초 우주의 밀도 요동은 우주배경복사를 아주 자세히 들여다보면 확인할 수 있다. 우주배경복사는 크게 보면 동일한 낮은 온도로 우주 전역이 식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약 10만 분의 1도 수준까지 감도를 조절해보면 미세한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일부 지역은 주변보다 온도가 10만 분의 1도 더 높기도 하고, 10만 분의 1도 더 낮기도 하다. 

 

미세한 온도 차이는 우주배경복사의 빛줄기가 새어나오던 그 순간에 존재한 태초 우주의 미세한 밀도 불균형의 흔적을 보여준다. 이것이 우주배경복사에 각인되어 있는 태초의 순간의 악보, 이 우주를 작곡하고 연주했던 그 거대한 연주자의 연주 스타일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유일한 증거다. 

 

우리 은하와 주변 은하들 역시 태초에 존재한 작은 밀도의 씨앗에서 만들어졌다. 그렇다면 이 태초의 씨앗, 밀도의 미세한 불균형은 대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최근 플랑크 우주 망원경의 관측에 따르면 실제로 확인된 우주배경복사 속 미세한 밀도의 차이는 예상보다 그 정도가 작은 것으로 파악된다. 우리 우주의 거대구조를 성장시킨 씨앗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더 강한 밀도 차이가 있어야 한다. 이 영상은 예상치와 실제 관측치의 미세한 차이를 보여준다.

 

#악보에 따라 충실하게 연주되는 은하들 

 

빅뱅 직후 초기 우주에 존재한 미세한 불균형은 순전히 우연에 의해 만들어졌다. 사실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은 약간의 ‘불확정성(Uncertainty)를 가지고 있다. 어떤 물질이 존재할 때, 그 물질이 정확히 어떤 ’위치‘에 있는지, 정확히 어떤 ’속도‘로 움직이는지를 동시에 다 파악할 수 없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위치‘를 파악하고자 하면, ’속도‘ 측정에 엄청난 불확정성이 생긴다. 반대로 ’속도‘를 정확히 측정하고자 하면, ’위치‘ 측정에 엄청난 불확정성이 생긴다. 우주에 있는 모든 존재는 위치와 속도, 두 가지 물리량을 동시에 완벽하게 측정하는 데 물리적 한계가 존재한다. 

 

특히 이런 불확정성은 질량이 아주 작은 물질일수록 더 뚜렷해진다. 우리 몸처럼 질량이 큰 물질은 불확정성이 아주 미미하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 내가 어디에서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를 크게 염려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원자 속 전자처럼 아주 작은 입자들의 미시 세계에서는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문제가 된다. 

 

비유하자면 우리는 매순간 전자가 어디에서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절대 알 수 없다. 잡으려고 하면 사라졌다가 갑자기 다른 곳에서 나타나는 여름 모기와 같다고 할까. 

 

크기가 아주 작던 태초의 우주 역시 불확정성으로 요동쳤다. 매 순간 아무것도 없는 듯한 진공 속에서 물질과 반물질이 쪼개져 나오고, 곧바로 다시 물질과 반물질이 충돌해 함께 사라지는 쌍소멸(annihilation)이 빈번하게 벌어졌다. 

 

태초 우주의 밀도 요동은 아주 미미한 수준이었다. 이후 우주가 급팽창을 겪으면서 요동도 아주 큰 규모로 함께 성장했다. 그 결과 작은 홈에 불과했던 밀도의 미세한 차이는 순식간에 큰 산맥과 깊은 해구가 되었다. 그렇게 성장한 거대한 밀도의 차이는 주변 물질을 끌어당겨 은하를 만드는 우주거대구조의 씨앗이 될 수 있었다.[2]

 

그래서 천문학자들은 현재 우주에 분포하는 은하들의 공간 배치에 태초 우주에 각인되었던 미세한 밀도 요동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으리라 추측한다. 실제로 우주에 존재하는 은하들끼리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를 통계적으로 분석해보면, 흥미롭게도 약 150메가파섹(Mpc, 1Mpc은 326만 광년)의 특정한 간격을 둔 경우가 많이 발견된다.

 

은하들의 공간적 분포를 보면 흥미롭게도 마냥 무작위로 분포하지 않는다. 각 은하단에서 서서히 거리가 멀어지면서 발견되는 은하들의 수가 감소하다가 중간에 150Mpc 정도의 거리 간격을 두고 있는 지점에서 갑자기 발견되는 은하들의 수가 증가하는 분포를 보인다. 이미지=BOSS

 

은하들의 공간 분포를 비교해 확인되는 ‘두 지점 관계 함수’를 분석하는 과정. 은하들이 서로 얼마만큼 떨어져 있는지를 통계적으로 비교하면 위에서 설명한 특정한 거리 간격을 둔 은하들의 비율이 높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은하들이 무작위로 우주에 존재한다면 은하의 간격이 더 멀어질수록 발견되는 확률이 서서히 떨어지는 간단한 분포를 보여야 한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중간에 약 150Mpc 간격을 둔 경우가 예상보다 더 많이 발견된다. 태초 우주에 존재했던 미세한 밀도 요동의 악보에 따라 우주가 충실하게 연주되었다는 명백한 증거다! 

 

태초에 존재한 밀도 요동의 씨앗을 중심으로 퍼져나가거나 모여드는 암흑 물질과 일반 물질(바리온), 광자와 뉴트리노 등의 양상을 비교한 영상.

 

오직 중력에 의해서만 작용하는 암흑 물질이 먼저 미세한 밀도 요동의 씨앗을 향해 중심에 모여든다. 그동안 가스 물질과 같은 일반 물질(바리온, baryon)은 빛과 함께 사방으로 퍼져나가지만, 모여든 암흑 물질의 중력에 의해 영원히 퍼져나가지 못하고 다시 모여들면서 정체하게 된다. 바로 이 정체 구간이 밀도 요동의 씨앗 중심에서 대략 150Mpc 거리를 두고 형성되어야 한다. 놀랍게도 우주의 은하들은 바로 이렇게 특정한 간격을 두고 서로 떨어져 있다. 

 

각 은하를 중심으로 원을 그렸을 때 그 안에 얼마나 많은 수의 다른 은하들이 들어오는지를, 원의 사이즈를 늘이고 줄이면서 비교하면 태초 우주가 어떤 악보를 그려 우주를 지휘하고 연주했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 이렇게 은하와 같은 일반 물질(바리온)의 분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태초 우주에 존재한 미세한 밀도 요동의 흔적을 바리온 음향 진동(BAO, Baryonic Acoustic Oscillation)이라고 한다. 말 그대로 태초의 우주 전역에 울려 퍼졌던 음악의 미세한 흔적을 추적하는 것이다.[3] 

 

초기 우주의 미세한 밀도 차이, 임의의 불확정성으로 만들어진 밀도 요동이 고스란히 현재 우주의 거대 구조를 만들었다. 오늘날 우주에 분포하는 은하들의 공간 분포를 파악하면, 놀랍게도 137억 년 전 태초에 어떤 방식으로 밀도 요동이 만들어졌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이미지=BOSS

 

천문학자들은 점점 더 미세한 차이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우주배경복사 관측 망원경들 덕분에 태초 우주가 연주한 ‘천지창조’의 악보를 조금씩 추적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미스터리가 많다. 사실 지금까지 확인된 바리온 음향 진동의 흔적은 단순히 은하 하나와 그 주변 은하 하나, 두 은하 사이 간격의 통계적 분포를 바탕으로 파악한 현상이다. 이렇게 은하 두 개만 놓고 비교한 은하들의 사이 간격의 통계적 관계를 ‘두 지점 관계 함수(two-point correlation function)’이라고 부른다. 

 

만약 우주가 정말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졌다면 ‘두 지점’뿐 아니라 더 많은 은하들의 거리를 비교해서 세 지점, 네 지점 관계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4] 

 

다만 관계성을 찾기 위해 활용하는 은하들(지점)의 개수가 더 많아질수록 우리가 감지할 수 있는 신호의 세기는 더 미약해진다. 뚜렷하게 파악되는 바리온 음향 진동의 흔적은 ‘두 지점 관계’에서만 확인할 수 있다. 

 

우리는 아주 좋은 현미경으로 우주라는 거대한 볼링공 표면을 들여다보면서, 매끈한 줄만 알았던 우주 표면의 미세한 요철을 확인했다. 그 덕분에 우주가 전반적으로 어떤 스타일로 연주되어왔는지, 우주라는 거대한 작품의 스타일과 음색, 장르 정도를 파악하게 되었다. 하지만 우주의 악보를 모든 박자 마디마디마다 다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 요철 속에 숨어 있는 더 작은 요철을 파악해야만 한다. 스피커 밖으로 새어나오는 음악 소리의 스펙트럼을 분석하고 마디마디를 쪼개서 정확하게 곡명을 맞히는 음악 검색 앱처럼 말이다. 

 

플랑크 우주 망원경이 관측한 우주배경복사의 밀도 요동을 통계적으로 분석하면 특히 어떤 규모에서 바리온 음향 파동이 뚜렷하게 나타나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우주배경복사의 요철을 비교하는 규모를 변화시키면서 각 규모에서 파악된 요철의 정도를 비교한다. 이렇게 분석된 우주배경복사 신호의 특성을 파워 스펙트럼(power spectrum)이라고 한다.

 

실제 관측된 우주배경복사의 파워 스펙트럼. 앞서 설명한 은하들의 공간 분포 함수에서 볼 수 있었던 피크(peak)가 보인다. 바로 이 피크가 실제 은하들의 공간 분포와 잘 들어맞는다.


가까운 미래, 은하 세 개, 네 개씩을 모아 파악한 더 복잡한 관계 함수가 우주배경복사 속에서 발견된다면, 우리는 태초의 순간 빅뱅은 무슨 생각으로 우주를 작곡했는지를 물어볼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주의 다음 악장은 또 어떤 무대가 펼쳐질지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지구라는 객석에 앉아 여유롭게 기다릴 수 있게 될 것이다. 

 

[1]https://www.esa.int/Science_Exploration/Space_Science/Planck/Planck_finds_no_new_evidence_for_cosmic_anomalies

[2] https://iopscience.iop.org/article/10.1088/1126-6708/2003/05/013

[3] https://academic.oup.com/mnras/article/427/4/3435/974307

[4] https://www.quantamagazine.org/physicists-hunt-for-the-big-bangs-triangles-20160419/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galaxy.wb.z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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