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업종 간 경계가 허물어지고 융합하는 ‘빅블러‘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특히 우주, 인공지능(AI), 모빌리티, 바이오 등 미래 유망 분야에서 새 시장이 열리면서 기존 기업들이 이들 영역을 흡수·통합하는 사례가 늘었다. 기업들이 미래 생존을 위해 주력 사업 영역을 벗어나 새로운 분야에 들어오면서 업종 간 구분도 희미해져 가고 있다.
빅블러는 ‘기존 경계가 모호해지는 현상’을 말한다. 4차 산업혁명이라 일컬어지는 미래 산업 구조는 제조업, 정보통신업 등 영역별로 산업을 구분해온 과거와 달리 여러 산업을 융합해 이전에 없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한다.
산업계에 따르면 최근 중견 제약사로 알려진 ‘보령’이 주력 사업과 상관없는 우주정거장 사업에 진출했다. 미국 우주기업 액시엄 스페이스와의 국내 합작법인 ‘브랙스 스페이스’를 공식 출범한 것. 브랙스 스페이스는 우주정거장 내 연구·실험 플랫폼 서비스, 한국인 유인 우주 개발 프로젝트, 우주정거장 모듈 공동 개발 등을 추진한다. 김정균 보령 대표는 2022년 취임한 후 사명에서 ‘제약’을 제외하고, 우주 분야로 사업을 확장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신약과 리딩 품목을 도입하며 ‘연 매출 1조’를 앞둔 보령은 중장기 성장 동력으로 우주 사업을 낙점하며 ‘우주 헬스케어’라는 제약업계의 전례 없던 과감한 행보를 선보이고 있다. 우주 헬스케어란 우주 관광 시대에 대기권 밖에서도 인간이 정신적, 신체적 상태 변화에 대응해 건강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분야다.
업계에선 우주 사업의 성공 가능성에 회의적인 반응도 나온다. 특히 사업 진출 당시 주주들은 ‘수익화’에 대한 우려가 가장 두드러졌다. 본업인 제약 분야와 너무 다른 우주 산업이 언제 이익이 날지, 이익 규모가 얼마나 될지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울러 우주 기술을 독자적으로 개발하기 어려운 제약기업이라는 현실도 사업 지속가능성을 의심하게 만들고 있다. 이에 대해 김정균 대표는 “많은 분이 보령 본업인 제약업과 너무 다른 우주에 투자해 기업을 망치는 게 아니냐고 한다”면서 “진행하는 사업 중 하나가 잘 안되더라도 나머지 하나는 전혀 영향이 없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제약회사인 한미약품그룹도 ‘빅블러’ 행진에 동참하고 있다. 신소재·재생에너지 기업 OCI그룹과 통합하기로 결정한 것. 양 사는 그룹 간 통합에 대한 합의 계약을 맺었다. 한미약품은 현금성 자산을 1조 705억 원 보유한 OCI와의 통합으로 신약 개발에 투입할 자금을 확보하게 됐다. OCI는 2018년 진출 이후 지지부진한 바이오 사업의 동력을 확보했다. 양 사는 기존 포트폴리오에 없는 신사업에도 뛰어들 계획이다.
다만 송영숙 한미약품그룹 회장과 송 회장의 장녀 임주현 한미약품 사장이 주도한 통합에 장남인 임종윤 코리그룹 회장이 반발하면서 법적 대응에 나서 통합에 대한 불확실성이 남아 있다. 또 OCI가 제약·바이오 산업을 진출하기 위해 부광약품을 인수했지만 적자를 보고 있는 점도 악재다. 제약업에 이해가 전무한 상황에서 영업망 축소 등 갑작스러운 조직개편과 건강기능 식품의 무리한 진출이 경쟁력을 약화시켰다는 말이 나온다.
경동나비엔과 귀뚜라미 등 국내 보일러 양대 산맥도 빅블러 흐름에 올라탔다. 경동나비엔은 가전, 귀뚜라미는 건축자재 사업에 각각 진출했다. 최근 정체를 보이는 보일러 사업 의존도를 낮추고 신사업 비중을 늘려 미래 먹거리로 삼겠다는 전략이다.
경동나비엔은 400억 원으로 SK매직으로부터 가스레인지와 전기레인지, 전기오븐 등 주방가전 3종 사업 부문을 인수하기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본 계약은 오는 2월 중 체결할 예정이다. 경동나비엔은 기존 보일러에 이어 난방, 주방가전 등의 라인업을 구축해 종합 생활가전회사로 도약할 계획이다.
귀뚜라미는 건축자재 부문에 뛰어들었다. 귀뚜라미는 전기난방판넬, 전기난방필름을 대체하는 ‘귀뚜라미 카본보드 온돌’을 선보였다. 귀뚜라미는 향후 시장 흐름에 부합하는 다양한 아이템을 통해 지속 성장 동력을 확보할 방침이다.
전현건 기자
rimsclub@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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