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AI(인공지능)의 파고가 산업 전반을 덮치고 있다. 일상은 물론 기업 경영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AI의 접목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제약바이오 산업도 예외가 아니다. 정부가 ‘ABCD(AI·Bio·Culture·Defence)’ 산업을 차세대 국가성장축으로 육성하겠다고 밝히면서, AI와 바이오의 융합은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AI가 제약바이오 산업의 연구개발부터 임상, 생산까지 어떤 변화를 불러오는지, 그리고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과제는 무엇인지 짚어본다.
제약바이오 업계의 AI(인공지능) 활용법이 진화하고 있다. 수만 개의 신약 후보물질 중 유망한 물질을 골라 효율적으로 R&D(연구개발) 단계를 넘어 가상의 고객 모델인 ‘AI 가상 페르소나’를 생성해 마케팅에 활용하려는 시도가 그것이다. AI 페르소나란 단순히 ‘서울 거주 40대 남성’과 같은 인구통계학적 정보가 아니라, 방대한 디지털 행동 데이터를 기반으로 실제 고객의 성향, 관심사, 행동 패턴을 그대로 모사한 가상의 타깃을 말한다.
글로벌 헬스케어 데이터 통계 전문기업 아이큐비아는 지난해 11월 서울에서 개최한 인사이트 포럼에서 AI가 어떻게 제약 마케팅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는지 구체적인 실무 사례를 소개했다. 핵심은 가상 페르소나를 통한 정밀 타기팅이다.
아이큐비아 분석에 따르면 의료 전문가(HCP)의 40%는 6개월 만에 진료 및 처방 성향을 바꾼다. 반면 기존 제약사들이 마케팅을 위해 타깃 리스트를 업데이트하는 주기는 보통 12~36개월에 달한다. 마케팅 전략이 시장의 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셈이다.
이에 아이큐비아는 AI를 활용해 SNS 활동, 검색 키워드, 학술지 구독내역 등 약 40억 개의 디지털 활동 데이터를 실시한 분석해 개인의 고유한 온라인 행동 패턴과 심리적 특성을 의미하는 ‘디지털 지문’을 도출했다. 특정 질환이나 약물에 관심을 가질 법한 잠재 고객을 찾아내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떤 경로로 의사를 결정하는지 추적하면 그들의 니즈를 즉각적으로 반영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러한 접근법은 AI 페르소나의 상업적 가능성을 엿보게 했다. 제랄딘 존 아이큐비아 옴니채널 마케팅 사업부 총괄은 필리핀의 사례를 들어 구체적인 성과를 설명했다. 아이큐비아는 필리핀 비만 시장 데이터를 AI로 분석한 결과 28~45세의 비만 여성이 질병 치료뿐만 아니라 외모 관리와 정신적 웰빙을 중시한다는 점을 주목했다.
존 총괄은 “이 AI 페르소나가 요가나 패션에 관심이 많고, 페이스북과 유튜브를 통해 건강 정보를 습득하며 스트레스 관리를 위해 아로마테라피를 활용하는 특징을 보였다”면서 “체중 감량이라는 직접적인 메시지 대신 그들이 선호하는 라이프스타일 콘텐츠로 접근했고, 그 결과 타깃 정밀도가 15배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상대적으로 환자군이 많지 않은 질환에서도 AI 페르소나의 진가는 돋보인다. 환자 수가 적더라도 질환의 정보나 치료법을 찾기 위해 온라인에서 활동하는 만큼 이들의 디지털 흔적을 파악해 숨어있는 환자를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호주에서 C형 간염 환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프로그램은 이 같은 AI 페르소나 접근법의 유효성을 보여준 사례다. C형 간염은 주사기 공동 사용 또는 재사용, 수혈, 혈액투석, 성 접촉, 모자간 수직 감염 등을 통해 전파되는 감염병으로, 사회적 낙인 때문에 환자들은 진단받기를 꺼리거나 숨기려는 경향이 강하다. 감염 위험에 노출됐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경우도 많다.
아이큐비아는 AI 분석을 통해 C형 간염 환자들이 병원 웹사이트가 아닌 일반 라이프스타일 웹사이트에 머문다는 점을 발견했다. 이에 해당 라이프스타일 웹사이트에서 지역별로 진료가능한 의료진 목록을 보여주고 상담으로 연결하는 배너를 게시하는 등의 캠페인을 진행했다. 그 결과 캠페인을 실행한 지역의 병원 웹사이트 방문자 수가 71%가량 늘어났다.
AI 페르소나의 도입은 제약사의 비용 효율화에도 긍정적이다. 아이큐비아에 따르면 AI 인사이트를 적용한 캠페인은 기존 디지털 마케팅 대비 2~3배 높은 성과를 냈으며 한 글로벌 제약사는 ROAS(광고비 대비 매출액) 8 대 1을 기록해 광고비 대비 8배의 매출 효율을 달성했다.
AI 페르소나는 마케팅 외에 임상시험, 특히 환자 모집에서도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통상 임상시험 참여자 1명을 모집하고 관리하는 데만 1000만 원 이상의 비용이 소요되는데 임상시험 선정 및 제외 기준을 학습한 AI 모델이 전자의무기록(EMR), 디지털 행동 데이터를 분석해 조건에 부합하는 후보군을 찾아낼 수 있다. 여기에 방대한 환자 데이터를 바탕으로 만든 AI 페르소나가 위약(가짜 약)을 투여군을 대체함으로써 실제 모집 환자 수를 줄여 비용과 시간을 단축할 수도 있다.
다만 한계점도 있다. 미국을 제외하면 전문의약품의 DTC(소비자 직접 판매 의약품 광고)가 제한돼 질환 인식 개선 캠페인 등으로 우회해야 하는 등의 규제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존 총괄은 “AI 페르소나는 어떻게 소통할지를 설계하게 해주고 치료 접근성이나 치료 도입을 지원할 때도 어떤 토픽이 더 공감대를 형성하는지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서 “단독으로 써도 되지만 전통적 방법과 결합하면 속도는 빨라지고 깊이도 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최영찬 기자
chan111@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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