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정부가 정책자금 대출 규모를 대폭 축소하면서 서민 주거 정책이 후퇴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금융위원회(금융위)는 지난 6월 27일 관계기관 합동 ‘긴급 가계부채 점검회의’를 하면서 고강도 가계부채 관리 방안을 내놨는데, 여기에 서민 주거 지원책인 디딤돌·버팀목 대출도 규제 대상에 포함됐다.
금융위가 발표한 가계부채 관리 방안에 따르면 금융권 자제대출과 정책대출의 총량 관리 목표를 감축한다. 정책대출을 제외한 모든 금융권의 가계대출 총량목표를 2025년 7월부터 원래 계획 대비 절반 수준으로 감축하고, 정책대출은 연간 공급계획 대비 25%를 감축한다.
수도권, 규제지역에 있는 2주택 이상 보유자가 추가 주택을 구입하거나 1주택자가 추가 주택을 구입하는 경우에는 LTV(주택담보대출비율)가 0%가 된다. 실거주 목적이 아닌 추가 주택 구입 수요를 차단하기 위해서다.
금융위는 수도권, 규제지역 내 보유주택 담보로 생활안정자금 목적의 주담대 한도도 최대 1억 원으로 제한한다. 또 갭투자 목적의 주택구입을 억제하기 위해 소유권 이전 조건부 전세대출도 금지한다고 밝혔다. 신용대출 한도도 연소득의 1~2배 내로 제한하기로 했다.
문제는 이번 규제 대상에 서민 대출정책인 ‘디딤돌·버팀목’ 대출이 포함된 것이다. 디딤돌 대출은 주택구입목적의 대출, 버팀목 대출은 전세자금대출이다. 주택도시기금이 운영하는 두 정책자금은 무주택 서민에게 낮은 금리로 공급되는 상품이다. 이 때문에 대출요건이 까다롭다. 세대원 전원이 무주택자여야 하고, 버팀목은 연소득 5000만 원 이하, 디딤돌은 연소득 6000만 원 이하여야 한다.
금융위가 발표한 운영 계획에 따르면 일반 디딤돌 대출은 기존 2억 5000만 원에서 2억 원으로 축소됐다. 청년 버팀목 대출 역시 기존 2억 원에서 1억 5000만 원으로 축소됐다.
생애최초로 주택을 구입하는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생애최초 디딤돌 대출도 규제 예외는 아니다. 당초 최대 3억 원에서 2억 4000만 원으로 축소됐다. ‘디딤돌·버팀목’ 대출 모두 신혼부부와 신생아 출산 가구에 적용되던 대출 규모를 축소했다.
정부가 정책자금 축소 시행을 발표 바로 다음 날부터 적용하면서 현장에도 혼란이 생겼다. 버팀목 대출 한도 축소로 계약금을 날리게 생겼다는 A 씨는 “은행에서 가심사를 받았고, 전세계약서를 작성한 상태다. 이제 전세대출 신청이 남았는데 갑자기 한도가 축소되면서 적용 기준에 대한 설명이 다르다. 은행에서는 심사를 받아봐야 정확히 알 수 있다고 설명하는데, 새 정책 적용 기준일이 계약서 작성일인지 전세대출 신청일인지도 명확하지 않다. 만약 대출 실행이 안 되면 계약금을 날려야 한다”고 토로했다.
#윤 정부선 금리 인상, 이 정부선 한도 축소
윤석열 전 정부는 취임 첫해를 제외하고 정책자금 대출 금리를 매번 인상해왔다. 가계부채를 조절한다는 명목으로 디딤돌·버팀목 대출금리를 2023년 8월 0.3%p, 지난해 8월 최대 0.4%p를 인상했다. 올해 3월에는 기준금리는 인하됐음에도 대출금리는 0.2%p 인상했다. 2022년 8월 무주택 서민의 주거비 완화를 위해 기준금리 인상을 반영하지 않고 디딤돌과 버팀목 대출금리를 동결하겠다고 발표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정책 기조다.
새로 들어선 이재명 정부는 디딤돌·버팀목 대출금리가 인상된 지 불과 3개월여 만에 대출 한도를 축소했다. 금융위는 정책대출 한도를 줄이는 대신 주택 공급·저소득 서민 대상 주택자금 지원에 집중한다는 계획이지만, 정책대출 역시 저소득 서민을 대상으로 한 주택자금 지원 정책의 일환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번 규제에 정책자금 대출 규제가 포함된 것이 ‘아쉽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거시경제의 안정성도 무시하면 안 되지만, 주택시장이 분화되고 있는 만큼 아파트, 비아파트를 구분해 대출정책을 병행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시행일 역시 열흘 정도 시간을 주었으면 했다”고 평가했다.
정책자금 규제는 부동산 시장 안정보다는 주택도시기금 재정난 해소를 위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2023년 기준 주택도시기금 순자산은 35조 7284억 원이다. 그러나 지난해 기획재정부가 세수결손을 매우기 위해 주택도시기금에서 3조 2000억 원을 전용하면서 주택도시기금의 여유자금이 대폭 축소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김인만 김인만경제부동산경제연구소 소장은 “서민대출인 정책자금 대출이 규제 대상에 포함된 부분은 아쉽다. 이건 주택도시기금에 해당하는데, 주택도시기금이 고갈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40조 원가량 있던 여유자금이 7조 원가량 남은 상태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같이 줄인 것으로 보인다. 생애최초 주택 구입과 서민 전세자금 대출 자금이 부동산 가격 상승에 큰 영향을 준다고 보기는 어렵다. 긍정적인 부분을 보자면 정책자금 대출을 줄이는 대신 공공임대주택을 늘리겠다는 건데, 이 부분은 단기간에 성과가 보이지 않고 시간이 걸린다는 문제가 있다”고 분석했다.
한편 금융위는 정책대출 한도 축소 대신 집중 운영하기로 한 주택공급, 저소득 서민 대상 주택자금 지원 방안 등에 대해 구체적인 계획을 밝히지 않았다.
전다현
기자
allhyeon@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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