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오늘도 건설 현장에 출근한 노동자가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 건설업은 우리나라 전체 산업 가운데 사망 사고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현장이다. 우리 사회는 안전이나 보건 의무를 다하지 않아 노동자가 죽는 안타까운 사고를 막기 위해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을 만들어 2022년 1월 본격 시행했다. 하지만 한 해 건설 현장에서 목숨을 잃는 노동자는 여전히 세 자릿수에 머무르고 있다. 우리 사회는 건설 현장 사망 사고를 줄이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연이어 발생한 산업재해에 엄정 대응을 주문하면서 산업계와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하지만 산업재해를 막을 수 있는 ‘작업중지권’은 사용 실태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작업중지권은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다고 판단될 때 노동자가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2019년 1월 산업안전보건법이 전부 개정되면서 노동자의 작업중지권도 명문화됐다. 개정된 법에 따라 노동자는 작업중지권을 행사할 때 지체 없이 그 사실을 관리감독자에게 보고해야 하고, 보고받은 관리감독자는 안전·보건 조치를 취해야 한다. 사업주는 작업중지권을 정당하게 행사한 노동자에게 해고나 그 밖의 불리한 처우를 해서는 안 된다.
비즈한국 취재에 따르면 정부는 현재 산업 현장의 작업중지권 발동 실태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는 관련 법 조항이 신설된 이후 현재까지 우리나라 전체 산업 현장은 물론 특정 산업군이나 개별 기업들의 작업중지권 사용 현황을 취합하지 않았다. 고용노동부 안전보건감독기획과 관계자는 “현행법은 작업중지권 행사와 관련해 보고 의무를 규정하지 않았다”며 “(작업중지권 실태 파악과 관련해) 현재 준비하고 있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작업중지권 실태 파악은 기업들의 자율적인 공시에 의존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깜깜이인 경우가 많다. 비즈한국이 6대 상장건설사인 삼성물산, 현대건설, 대우건설, DL이앤씨, GS건설, HDC현대산업개발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현대건설과 DL이앤씨 등 2곳은 지난해 작업중지권 발동 현황을 공시하지 않았다. 나머지 건설사들이 공시한 지난해 작업중지권 발동 횟수는 삼성물산 건설부문 23만 6334건(지난해 4월~올해 3월), 대우건설 13만 993건, HDC현대산업개발 1149건, GS건설 95건 순으로 격차가 컸다.
건설 현장에서 작업중지권을 보장받았다고 말하는 노동자는 소수에 그친다. 지난해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건설노조) 설문조사에 따르면, 시공능력 상위 10개 건설사 현장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노동자 1660명 중 실제로 작업중지권을 보장받은 노동자는 288명(17.3%)에 불과했다. 나머지 1189명(72%)은 작업중지권을 요구해본 적이 없었고, 184명(11%)은 작업중지를 요구했으나 무시당했다.
작업중지권 강화는 이재명 대통령 선거 공약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 21대 대통령선거 후보 시절 ‘노동존중 및 권리보장’ 일환으로 “작업현장 내 유해·위험 발생 농후시 노동자가 사용자에 작업중지 및 시정조치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겠다”고 공약했다. 현행법상 작업중지권 발동 요건을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에서 ‘유해·위험 발생이 농후한 상황’까지로 완화하는 취지다. 현재 정부는 작업중지권 확대, 강화 도입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손진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소장은 “작업중지권 행사로 위험을 드러낸 노동자에게 직·간접적인 불이익을 주는 사례가 많기 때문에, 실제 산업현장에서 노동자들이 작업중지권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다. 작업중지권 작동 실태 파악과 연구가 필요한 상황”이라며 “단순한 작업중지권 발동 횟수뿐만 아니라 어떤 내용이 작업중지 대상이 되었는지,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 등 작업중지권 발동의 질적 측면도 함께 살펴야 한다”고 지적했다.
차형조 기자
cha6919@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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