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부' 묻힌 독립운동 성지, 효창공원

[비즈한국] 최근 정부가 안중근 의사 유해 찾기에 본격적으로 나선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를 위해 남북 협력은 물론 중국의 협조도 받을 계획이라고 한다. 중국 다롄의 뤼순 감옥에서 순국한 안 의사는 감옥 묘지에 안장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아직도 유해를 찾지 못했다.

그런데 서울 용산구의 효창공원에는 이미 안중근 의사의 묘지가 있다. 아직 비석도 세우지 못한 가묘일 뿐이지만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의사 등이 잠든 ‘삼의사묘’와 나란히 자리잡았다. 이곳에 독립운동가의 묘지를 만든 백범 김구 또한 효창공원에 묻혔다. 우리에게는 ‘효창운동장’으로 익숙한 효창공원은 이렇듯 독립운동의 성지다.

효창공원에 있는 삼의사묘. 맨 왼쪽은 안중근 의사 가묘이며,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의사 순이다. 사진=구완회 제공

하지만 이승만은 이곳을 운동장으로 만들어버렸다. 이렇게 역사는 숨겨졌고, 이제는 찾는 이 드문 사적지가 되어버렸다. 여기에 김구와 삼의사의 묘가 있는 것도, 안중근 의사의 가묘가 있는 것도 아는 이가 드물다.

사실 효창공원은 ‘없애고 싶은’ 문화유산이었다. 1956년 대통령 이승만이 이곳에 있는 독립운동가들의 묘를 이장하고 운동장을 건립한다고 발표했을 때, 반대 여론이 들끓었다. 결국 이승만은 무덤들을 그대로 둔 채 운동장을 세웠다. 그 뒤를 이은 박정희 또한 이곳에 골프장을 지으려고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대신 이곳에 반공투사 위령탑과 노인회관을 세웠다. 1989년에야 사적 제330호로 지정된 효창공원에는 김구,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의 묘소와 백범 김구 기념관이 효창운동장과 함께 어색한 동거를 이어가고 있다.

# 우리 현대사처럼 굴곡진 공간

효창공원의 정문인 ‘창렬문(彰烈門)’은 보통 사당의 정문 양식인 외삼문이다. 여느 공원과는 대문부터가 사뭇 다르다. 대문을 들어서면 사방에 자리잡은 송림들이 이곳의 옛 모습을 증언한다. 이곳은 원래 어린 나이에 죽은 정조의 큰아들 문효세자와 그 어머니 의빈 성씨의 무덤이었다. 그러니 주변에 소나무가 울창했던 것이다.

효창공원의 정문인 ‘창렬문’. 이곳은 원래 어린 나이에 죽은 정조의 큰아들 문효세자와 그 어머니 의빈 성씨의 무덤이었다. 사진=구완회 제공

이들의 무덤을 강제로 이장하고 여기를 공원으로 만들어버린 것은 일제였다. 조선 왕실과 관련된 장소를 공원으로 만들어 사람들의 구경거리로 삼은 것은 일제의 전략이었다. 경복궁은 전각을 헐어낸 뒤 박람회장으로 삼았고, 창경궁은 아예 이름마저 창경원으로 바꿨다. 해방 후 조국에 돌아온 김구는 이곳에 윤봉길과 이봉창, 백정기 등 삼의사의 유해를 안장했고, 안중근 의사의 가묘를 만들었으며, 자신이 눈을 감은 후에는 이곳에 안장되었다.

송림을 지나면 삼의사의 묘가 나오고, 다시 오솔길을 지나면 김구의 묘를 볼 수 있다. 그 아래에는 임시정부 요인들을 모신 사당인 의열사가 있고, 의열사 바깥에는 웅장한 대리석 건물인 백범 김구 기념관이 관람객들을 맞는다. 기념관 맞은편에는 효창운동장이 자리잡았다. 이승만의 기념비적 운동장과 김구를 기념하는 건물이 지금도 나란히 마주보고 있는 셈이다.

# 죽어서 바뀐 라이벌의 운명

이승만과 김구는 역사의 라이벌이었다. 하지만 살아서 치른 라이벌전은 모두 이승만의 승리였다. 김구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문지기를 자청했을 때, 이승만은 이미 임시정부 대통령 명함을 들고 미국을 누비고 있었다. 김구가 미 군정에 막혀 귀국 비행기를 타지도 못하고 있을 때, 이승만은 맥아더와 함께 국민들의 환영 인사를 받고 있었다. 김구가 38선을 베고 쓰러지겠다며 남북협상에 나섰을 때, 이승만은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이 되려는 준비를 착착 진행하고 있었다. 결국 이승만은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었고, 김구는 안두희의 총탄에 쓰러졌다.

김구가 세상을 뜬 뒤에는 이승만의 단독 질주가 이어졌다. 이승만은 국부가 되었고, 그의 생일은 국경일이 되었으며, 김일성의 동상만큼이나 거대한 동상이 남산에 세워졌다. 수십 년에 걸친 이승만과 김구의 라이벌전은 이승만의 완벽한 승리로 끝나는 듯 보였다. 승리의 절정에서 라이벌의 무덤을 파버리려고 한 것은, 자신의 승리를 자축하기 위해서였을까, 아니면 아직도 불안했기 때문이었을까?

만일 후자였다면, 이승만의 불길한 예감은 적중했다. 불과 몇 년 후부터 전세는 역전되었으며, 이후로 그 차이는 점점 벌어졌다. 몇 년 전 한 신문사에서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새누리당 국회의원들에게 ‘가장 존경하는 정치인’을 묻자 김구를 꼽은 이는 12명, 이승만은 3명이었다. 보수 세력을 자처하는 새누리당 국회의원도 이런 대답을 했으니, 죽어서 얻은 역사의 평가에서 김구가 이승만을 앞선 셈이다.

여행정보

▲위치: 서울시 용산구 효창동 일대

▲문의: 02)2199-8823

▲관람 시간: 06:00~21:00(연중무휴)

필자 구완회는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여성중앙’, ‘프라이데이’ 등에서 기자로 일했다. 랜덤하우스코리아 여행출판팀장으로 ‘세계를 간다’, ‘100배 즐기기’ 등의 여행 가이드북 시리즈를 총괄했다. 지금은 두 아이를 키우며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역사와 여행 이야기를 쓰고 있다.

구완회 여행작가 writer@bizhanko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