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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노인의 날' 맞는 탑골공원 풍경은 '저렴'했다

국밥 2000원, 소주 2000원…그마저도 손님 절반으로 줄어 상인들 울상

2018.10.02(Tue) 21:35:29

[비즈한국] 오늘(10월 2일)은 ‘노인의 날’​이다. 경로효친 사상을 고양하고 우리 전통문화를 계승 발전시켜온 노인들의 노고를 치하하기 위해 제정된 날이다. 우리 사회는 지금 노인에 대한 공경과 감사의 표현을 다하고 있을까. 서울시가 지난 3월 4~10일 일주일간 노인들의 교통 패턴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무임교통카드를 이용한 할아버지들(남자 노인)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탑골공원이 위치한 ‘종로 3가’로 나타났다. 노인의 날을 하루 앞둔 지난 1일 탑골공원을 찾아 노인들과 그들을 맞이하는 일대의 풍경을 담았다.  

 

오전 11시 30분 무료급식소가 문을 열자 15분 만에 자리가 꽉 찼다. 사진=차형조 인턴기자


“아침 8시부터 기다렸어요. 매일 오는데 아주머니가 음식을 아주 잘해주셔.”

 

오전 11시경 ‘탑골공원 원각사 무료급식소’ 앞, 맨 앞줄의 A 씨(77)가 입을 열었다. 급식까지 30분 남았지만 A 씨 뒤로 이미 50명이 넘는 인원이 줄을 섰다. 

 

무료급식소 앞에 줄 선 노인들. 사진=차형조 인턴기자


지팡이를 짚은 다른 노인은 돌담 턱에 걸터앉았다. B 씨(80)는 “돈 있는 노인은 근처 식당에서 사 먹고, 돈 없는 노인들은 여기 와서 먹지. 그래도 이쪽 노인들 중에 배고픈 사람은 없을겨”라고 보탰다. 

 

2층 무료급식소 내부에서는 자원봉사자 6명이 음식 준비에 한창이었다. 커다란 스테인리스 통에는 애호박무침, 김치, 시래기된장국이 가득 담겼다. 오전 7시 30분부터 무료급식소 자원봉사자가 준비한 음식은 170인분이다. 

 

11시 30분, 손님이 입장하기 시작했다. 계단을 오르거나 식판을 들기 힘든 노인도 보였다. 이곳에서 끼니를 해결해 온 노숙자 2명이 거동이 힘든 노인의 안내를 맡았다. 15분 만에 48석의 급식소가 가득 찼다. 

 

무료급식소 자원봉사자 C 씨(여·​65)는 “하루 첫 끼니이자 마지막 끼니를 여기서 해결하시는 분이 많다. 쌀 30kg으로 밥을 지었는데 170분이 다 드셨다”며 “식사가 끝나도 음식물쓰레기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고 귀띔했다. 이날 준비한 음식은 오후 1시경 동이 났다.

 

탑골공원 인근에는 두 개의 무료급식소가 운영되고 있다. 앞서의 ‘탑골공원 원각사 무료급식소’와 탑골공원 동문에 위치한 ‘사회복지원각’이다. 1997년부터 보리 스님이 운영하던 ‘탑골공원 원각사 무료급식소’가 최근 두 개로 분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둘 다 개인이나 기업의 후원 그리고 자원봉사자들의 봉사로 운영된다. 급식도 모두 11시 30분부터 시작된다. ‘사회복지원각’ 관계자는 “오늘 130명이 다녀갔다”고 전했다. 

 

탑골공원 인근 이발소들은 “한 달에 한 번 이발하던 노인들이 두 달에 한 번 이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차형조 인턴기자


“머리 자르러 천안에서 2시간 지하철 타고 왔어. 우린 딱 보면 알지, 잘 잘러.”

 

1시경 동문 근처 한 이발소, 단장을 마친 D 씨(69)가 웃으며 말했다. 8년째 이곳을 찾고 있다는 그는 “65세 이상 노인은 지하철이 무료”라며 “싸게 머리를 자르기 위해 지하철 타고 이곳에 올 만하다”고 했다. 

 

탑골공원에서 23년째 이발소를 운영 중인 조애정 씨. 사진=차형조 인턴기자


이발소에는 사장 포함 5명이 일하고 있다. 모두 경력 10년 이상의 베테랑이다. 이발비 4000원, 염색비 5000원이다. 23년째 이발소를 운영 중인 조애정 씨(여·55)는 “하루 80~100명의 어르신이 온다. 대부분이 5년 이상 단골”이라며 “7년 전만 해도 손님이 하루에 180명은 왔는데, 지금은 절반 수준이다. 한 달에 한 번 오던 손님이 요즘은 두 달에 한 번 온다”고 했다. 

 

조 씨는 “임대료, 월급 주고 나면 남는 게 없다”면서 “손님 대부분이 수당(기초연금)이나 자식들이 준 용돈으로 생활할 텐데, 자녀들이 돈 잘 벌어서 용돈을 넉넉하게 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다른 이발소를 운영하는 김근수 씨(60)는 “손님이 없으면 인건비, 임대료가 감당이 안 될 때가 있다. 하루 100명은 오셔야 타산이 남는다”며 “그래도 어르신들 형편에 (가격을) 맞춰야 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또 다른 미용실에서 일하는 김창환 씨(65)는 “나도 내일모레면 그 나이가 되는데, 돈을 번다기보다 봉사하는 마음으로 한다”고 했다. 지난 2월 탑골공원 일대 이발소는 가격을 기존 3500원에서 500원 인상했다. 20년 만이었다. 

 

탑골공원 동문의 좌판들. 사진=차형조 인턴기자


“신발이 그렇게 싸서 먹고 살겄어, ‘취화루’ 짜장면 한 그릇은 사 먹을 수 있어야지.”

 

동문에서 F 씨(70)가 신발 좌판에서 가격을 깎자 옆에 있던 노인이 소리쳤다. 그는 중고 신발 한 켤레를 2000원에 샀다. 좌판은 정오 무렵 탑골공원 동문 담벼락 앞에 펼쳐졌다. 상인들은 각자 준비한 중고 물품을 싼 가격에 내놨다. 집에서 쓸모를 다한 중고물품부터 물 건너온 구제 물건까지 종류는 다양했다. 

 

거리는 이를 구경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F 씨는 “남는 시간이 있으면 종종 근처를 돌며 물건을 산다. 우린 없는 시절에 태어나 이런 물건도 곧잘 쓴다”며 “간혹 고가품도 나오는데,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잘 모를 때가 있다”고 말했다.

 

“2000원에 이렇게 싸게 먹을 수 있는 집은 대한민국에 없어.”

 

오후 2시경 국밥집에서 늦은 점심을 마친 G 씨(74)가 식당 평을 했다. 이곳의 국밥은 2000원, 소주와 막걸리는 한 병에 2000원이다. 이 식당은 60년째 우거지 국밥을 판다. 멀건 국물에 시래기와 두부가 들어간 것이 전부다. 반찬은 깍두기뿐. 

 

사장 H 씨(여·​73)​는 “4년 전 가격을 올려서 지금까지 2000원에 팔고 있다”고 전했다. ‘요즘 장사가 잘 되느냐’는 질문에 “예전에는 이 시간에도 쉴 새가 없었는데 이렇게 당신이랑 얘기하고 있잖아”라고 맞받았다. 

 

공원 안에서 사색을 하거나 담소를 즐기는 노인들이 보였다. 벤치에 앉아 있던 I 씨(92)는 “두 시쯤부터 이곳에 와 앉아 있다”며 “두 달 전 아내가 세상을 떴는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했다. 한국전쟁 참전용사였던 그는 “국가유공자라고 매달 30만 원씩을 받아. 다른 사람들은 국위 선양했다고 몇백 만 원씩 받는 것 보면 화가 나”라고 했다. 그는 한동안 전쟁 당시 일화를 들려줬다. 

 

의암 손병희 선생 기념탑 근처에서 담소를 나누는 노인들. 사진=차형조 인턴기자


의암 손병희 선생 기념탑 근처에는 노인들이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서로의 관계를 묻자 J 씨(80)는 “얘기 나누는 노인네 중에 동네 친구는 드물어. 이곳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이지”라며 “소싯적 얘기도 하고, 장기도 두고, 쌈박질도 하고 뭐 그러려고 오는 거지”라고 말했다.

 

“물가는 오르는데 기초연금이 그대로니, 우리가 안주 값을 어떻게 올려요?”

 

북문 근처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K 씨(여​·​62)가 호소했다. 오후 5시가 되자 식당은 손님들로 붐볐다. 막걸리는 2000원, 소주는 3000원, 맥주는 4000원이다. 음식과 안주는 6000원을 넘지 않았다. 

 

K 씨는 “10년 전부터 이 가격으로 팔고 있는데 요즘 장사가 너무 안 된다. 30% 정도 이윤이 남는데 월세와 월급을 주고 나면 떨어지는 건 100만 원도 안 된다”며 “장사를 정리하고 싶지만 인수하려는 사람도 없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으니 살려달라고 데모라도 할 판”이라고 했다.

 

탑골공원 물가는 시중보다 많게는 절반가량 쌌다. 상인들은 불황으로 노인의 발길이 줄었다고 호소했다. 기자가 만난 노인 대부분은 자신의 경제적 형편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꺼렸다. 

 

노인의 날은 경로효친 사상의 미풍양속을 확산시키고, 전통문화를 계승 발전시켜온 노인들의 노고를 치하하기 위해 제정됐다. 그러나 지금 ‘노인’이라는 말에서 ‘경로’ ‘전통’ ‘미풍양속’보다는 ‘고독’ ‘빈곤’ ‘소외’라는 말이 먼저 떠오른다. 탑골공원이 대한민국의 미래 모습과 겹쳐지는 건 지나친 걱정일까.

차형조 인턴기자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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