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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 '작가의 산책길'을 이중섭과 함께 걷다

이중섭 예술과 천지연폭포, 자구리해안 아름다움 두루 맛보는 길

2018.11.14(Wed) 18:32:07

[비즈한국] “나 강보난 막 조앙게(내가 가서 보니 너무 좋던데)?​”

 

4.9km, 제주에서 ‘​작가의 산책길’​을 걷는다. 작가의 산책길은 서귀포의 한적함과 예술을 두루 맛볼 수 있는 길이다. 서귀포항을 중심으로 칠십리시공원을 비롯해 이중섭거리(이중섭 문화의 거리)와 이중섭미술관, 천지연폭포와 소정방폭포, 자구리해안 등을 거친다. 숲길 중간중간, 거리 곳곳에서 무시로 제주의 자연과 함께 예술작품을 만날 수 있는 산책길이다. 

 

미처 유명세를 타지 못한 ‘​작가의 산책길’​​은 주민에게나 여행자에게 선물 같은 한적함을 준다. 바다와 숲을 끼고 그림과 시를 벗 삼아 걷다보면 그것으로 휴식이 된다. 사진=이송이 기자


‘​작가의 산책길’​​은 서귀포시 구도심을 ‘벽 없는 미술관’으로 조성한다는 계획 아래 문화체육관광부의 ‘2012마을미술프로젝트’ 공모사업에 선정되어 조성된 길이다. 서귀포 구도심에 위치한 4개의 미술관(이중섭미술관, 기당미술관, 소암기념관, 서복전시관)과 예술시장과 관광극장, 시 읽으며 걷는 칠십리시공원, 자구리해안, 소정방폭포 등을 연결한 길로, 예술에 제주만의 자연풍광을 더해 스토리텔링 했다. 걷기만 하면 2시간, 미술관과 관광극장 등을 둘러보며 걸으면 넉넉히 4시간 정도 잡으면 된다. 순환형 길이라 어디에서 시작해도 상관없다.

 

서귀포에서 태어났거나 한때 머물다 간 작가들의 작품을 느끼며 거닐 수 있어 그 어느 길보다 고요하고 한가롭다. 제주올레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다. 미처 유명세를 타지 못한 것이 주민에게나 여행자에게 선물 같은 한적함을 준다. 바다와 숲을 끼고 그림과 시를 벗 삼아 걷다보면 그것으로 휴식이 된다. 그 길에서 이중섭, 변시지, 현중화, 이왈종, 석주명 등을 만나고 그들의 예술세계를 맛본다. 

 

작가의 산책길 중심에는 작가 이중섭이 있다. 행정도로명도 이중섭로다. 작가의 산책길은 이중섭의 삶을  엿볼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불운한 시대의 천재화가 이중섭은 1·4 후퇴 때 부산을 거쳐 1년간 서귀포에 거주하며 당시의 일상을 화폭에 담았다. 이곳에 이중섭거리와 이중섭미술관, 이중섭거주지가 모두 있다. 작가가 힘들지만 아름다웠다고 표현했던 좁디좁은 단칸방은 물론 아내와 주고받은 편지며 ‘​섶섬이 보이는 풍경’​, ‘​서귀포의 환상’​ 등의 작품을 볼 수 있다. 

 

화가 이중섭은 이 언저리에서 ‘​섶섬이 보이는 풍경’​을 그렸다. 멀리 보이는 섬이 섶섬이다. 지금은 같은 이름의 카페가 있다. 사진= 이송이 기자

 

이중섭거리는 오르막길 초입의 ‘​길 떠나는 가족’​ 조형물을 시작으로 거리 양쪽으로 공방과 소품가게들이 아기자기하다. 소소하게 구경하며 걷는 재미를 준다. 식당과 카페 등도 밀집되어 젊은 여행자들의 발길이 잦다. 시골길 걷다가 문득 작은 번화가와 마주친 느낌이다.  

 

주말이면 산책길 곳곳에서 문화체험을 하고 음악공연도 관람할 수 있다. 매 주말 해설사와 진행하는 탐방 프로그램이 있다. 토·일요일 오후 1시 이중섭공원에서 출발한다. 역시 매주 토·일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서귀포관광극장에서는 문인화 그리기, 도자기 채색 등 문화체험 프로그램도 운영된다. 

 

같은 시간에 이중섭거리 일대에서 서귀포문화예술디자인시장도 열린다. 거리공연을 관람하고 아트마켓도 직접 참여할 수 있다. 도내·외 작가가 운영하는 아트마켓 9동과 그림이나 예술품은 물론 제주 전통 음식을 시식할 수 있는 이중섭 야외전시대 10동, 클래식과 팝, 대중가요를 넘나드는 버스킹도 마련된다. 서복공원 내 불로장생체험관에서는 족훈욕도 할 수 있다. 그와 더불어 주말과 문화가 있는 날인 마지막 주 수요일에는 각종 공연도 열린다. 

 

작가의 산책길은 서귀포시 구도심을 ‘벽 없는 미술관’으로 조성한다는 계획아래 4개의 미술관(이중섭미술관, 기당미술관, 소암기념관, 서복 전시관)과 예술시장, 관광극장, 시 읽으며 걷는 칠십리시공원, 자구리해안, 소정방폭포 등 문화예술에 제주만의 자연풍광을 더해 스토리텔링 했다. 사진=서귀포 지역주민협의회 제공


서귀포 원도심의 상징이었던 서귀포관광극장은 1963년에 영화극장으로 개관한 것을 최근 리모델링해 예술전용 공연장으로 변신했다. 매 주말 클래식에서 대중음악까지 폭넓은 장르의 공연을 무료로 볼 수 있다. 공연장을 무상으로 대여해주기도 한다. 

 

이 외에도 작가의 산책길을 걸으며 기당 강구범 선생이 고향 서귀포를 위하여 건립하고 기증한 기당미술관, 진시황제의 명을 받아 불로불사의 꿈을 찾아 온 서복의 여정을 볼 수 있는 서복전시관, 서귀포 앞바다에 위치한 소암기념관 등 3개의 전시관을 더 들러볼 수 있다. 

 

걷다가 문득 바다가 그립다면 해안 쪽으로 방향을 틀어도 좋다. 해안의 좁은 마을길을 걷다가 갑자기 훤하게 드러나는 바다에 잠시 넋을 놓는다. 사진=이송이 기자

 

걷다가 문득 바다가 그립다면 해안 쪽으로 방향을 틀어도 좋다. 해안의 좁은 마을길을 걷다가 갑자기 훤하게 드러나는 바다에 잠시 넋을 놓는다. 문득 커피 생각이 간절해져 어느 카페에 들어섰다. 카페 2층에 올라서는 순간 갑자기 눈물이 핑 돌 듯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장엄하게 늘어선 주상절리나 붉은 빛을 꺼뜨리며 바다 속으로 가라앉는 일몰의 풍경을 말하는 게 아니다. 초가을 완숙한 황톳빛 잔디에서 아이들이 뛰어놀고 애견과 산책하는 사람들의 평범한 풍경이 불현듯 가슴을 저민다. 

 

긴장했던 마음도 순간 노곤하게 녹아내린다. 길 잃은 어린애가 저 멀리 손 흔드는 엄마를 발견한 듯 익숙하지만 그리운 감정, 안심이다. 바다 너머 가까운 듯 먼 듯 섶섬이 바라다 보인다. 알고 보니 화가 이중섭이 이 언저리에서 ‘​섶섬이 보이는 풍경’​을 그렸다 한다. 카페 이름도 ‘섶섬이 보이는 풍경’이다. 깊어진 감정처럼 커피 맛도 왠지 진하다. “삶은 외롭고 서글프고 그리운 것/ 아름답도다 여기에 맑게 두 눈 열고/ 가슴 환히 헤치다”고 노래한 이중섭이 어딘가에 앉아 그림을 그리고 있을 것만 같다. 

 

‘작가의 산책길’ 부제가 ‘유토피아로’다. 긴장했던 마음도 순간 나른하게 녹아내린다. 길 잃은 어린애가 저 멀리 손 흔드는 엄마를 발견한 듯 익숙하지만 그리운 감정, 안심이다. 사진=이송이 기자


길 떠난 사람이 길 위에서 흔히 느끼는 자유와 긴장, 낯섦과 호기심 사이에서 갑자기 불러들이는 참으로 안심되는 풍경. 그러고 보니 저 아래 쌓아 놓은 돌 위에는 버젓이 ‘​유토피아로’​라고 써 있다.

    

‘작가의 산책길’ 부제가 ‘유토피아로’다. 유토피아로가 있는 자구리해안은 지붕 없는 갤러리를 표방한다. 마을미술프로젝트와 공공미술을 접목해 육체적·정신적 안식처로서의 ‘​숲’​과 삶의 터전으로서의 ‘​집’​, 인간의 꿈의 원천으로서의 ‘​바다’​, 예술혼을 찾아 가는 ‘​길’​을 주제로 조성되었다. 갤러리 유토피아라고도 불린다. 바닷게와 아이들이 뒤엉켜 노는 모습을 드로잉하는 이중섭의 손 조형물에서 이중섭이 느꼈을 또 다른 안심을 맛본다. 

 

​드로잉하는 이중섭 손 조형물. ​“삶은 외롭고 서글프고 그리운 것/ 아름답도다 여기에 맑게 두 눈 열고/ 가슴 환히 헤치다”고 노래한 이중섭이 어딘가에 앉아 그림을 그리고 있을 것만 같다. 사진=이송이 기자


“자연을 통해 신을 볼 수 있다”고 한 괴테, “걷지 않고 떠오르는 생각은 믿지 말라”고 한 니체, “인간은 걸을 수 있을 만큼만 존재한다”고 한 사르트르, “나는 걸을 때만 명상에 잠길 수 있다”고 한 루소, “걷는 것은 청복(淸福, 맑은 즐거움)이다”고 말한 다산 정약용까지. 인간에게 걷는다는 것은 ‘걷는다’는 것 이상이다. 이국적이면서도 푸근한 자연을 안은 제주에서라면 그 즐거움은 더 커진다.

 

“들엉 몰르난 혼저 강보게(듣기만 해서는 모르니까 빨리 가서 보자).”

서귀포=이송이 기자 runaindia@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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