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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스업] '남자가 레깅스라니'라니요?

애슬레저 룩 등 영향 '메깅스' 보편화…"입어라, 말아라"라는 참견이자 훈수는 거두길

2019.04.15(Mon) 16:32:15

[비즈한국] 패션은 때론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갈등을 드러내게도 한다. 어떤 패션이든 그걸 받아들이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존재한다. 그걸 서로의 차이라고 여기면 될 텐데도 굳이 차이가 아닌 옳고 그름의 문제로 보려는 이들이 있다. 사실 패션은 옷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문화와 가치관까지 다 담긴 문제라서 그렇다. 

 

얼마 전 미국에서 ‘레깅스 논쟁’이 있었다. 가톨릭계인 노트르담대학 학교신문에 네 아들의 엄마이자 가톨릭 신자인 마리안 화이트가 ‘레깅스 문제(The legging problem)’라는 기고문을 실었는데, 레깅스 입는 여학생을 보는 게 고통스럽다며, 아들 둔 엄마를 위해서라도 레깅스 대신 청바지를 입어달라는 내용이 있었다. 그러자 학생들은 그 다음날을 ‘레깅스 프라이드 데이(Leggings Pride Day)’로 명명하며 입고 싶은 옷을 입을 권리이자 자유를 얘기했고, 무려 1000여 명의 학생들이 ‘#leggingsdayND’ 해시태그를 달고 SNS에 레깅스 입은 사진을 올리며 시위를 했다. 이는 전 세계로 퍼지며 이슈가 됐다. 

 

얼마 전 미국에서 ‘레깅스 논쟁’이 있었다. 페이스북에서 ‘#leggingsdayND’로 검색된 사진들.


사실 레깅스 논쟁은 수년간 계속 되고 있다. 레깅스 입고 등교한 학생을 학교가 돌려보내거나, 항공사가 레깅스 입은 승객의 탑승을 거부하거나 하는 사례가 발생한적 있었고 그때마다 논쟁을 커졌다. 레깅스 논쟁은 남녀 갈등보다는 ‘신구 갈등’에 가깝다. 이미 2030대, 그리고 10대까지도 남녀 모두 레깅스를 유행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4050대, 그리고 그 이상의 세대들은 레깅스 유행에 불편한 내색을 한다. 

 

이런 일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스키니진이 유행하던 때에도 그랬고, 더 과거로 가면 미니스커트가 유행할 때도 그랬다. 익숙하지 않는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일 때의 태도가 그 사람의 가치관을 대변하는 경우가 많은데, 몸매가 드러나거나 노출된 옷을 불편하게 여기는 시각 속에선 여성에 대한 차별적 시선이 존재한다. 가령 성폭력을 미니스커트나 레깅스 탓으로 돌리는 생각만큼 편협하고 구시대적인 것도 없다. 그건 옷의 문제가 아니라 성을 바라보는 왜곡된 시선의 문제이자 폭력의 문제일 뿐이다. 

 

결국 어떤 패션은 되고, 어떤 패션은 안 되고 같은 구시대적 태도부터 바꿔야 한다. 각자의 패션, 스타일은 각자의 선택일 뿐이다. 그것이 범법이 되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그리고 결코 패션이 어떤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이자 주범이 아니다. 옷은 단지 옷일 뿐이다. 그 옷을 핑계 삼아 사고치는 사람이 문제일 뿐이니까.

 

레깅스 논쟁 속에서 남자 레깅스도 보편적 패션으로 자리 잡는 중이다. 남자용 레깅스는  메일(Male)+레깅스(Leggings) 라는 의미로 ‘메깅스’라고도 부른다. 2007년 이탈리아 패션 브랜드 마르니가 남성 레깅스를 패션쇼에서 선보인 적 있지만, 본격적인 메깅스 제품들을 2012~2013년부터 나오기 시작했고, 2017, 2018년을 기점으로 시장이 급성장했다. 

 

처음엔 스키니진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남자들 사이에서 레깅스까지 시도해본 것인데, ‘애슬레저 룩’ 유행에 맞물려 점차 확산되게 되었다. 애슬레저 룩은 애슬레틱(Athletic) 과 레저(Leisure)의 합성어로, 일상에서도 레저활동을 즐기는 현대인들의 라이프스타일이 반영된 패션이다. 레깅스, 아니 쫄쫄이를 남자가 입는 걸 민망하다고 보는 시각에서 실용적인 데다 멋도 될 수 있다는 시각으로 전환되기 시작한 것이다. 

 

레깅스 논쟁 속에서 남자 레깅스도 보편적 패션으로 자리 잡는 중이다. 남자용 레깅스는  메일(male)+레깅스(leggings) 라는 의미로 ‘메깅스’라고도 부른다. 공연의 한 장면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없다.


레깅스 열풍의 가장 큰 배경은 운동과 건강, 몸매 관리가 필수가 되어서다. 밀레니얼 세대는 운동을 가장 좋아하는 세대로 꼽히는데 이들이 유독 좋아하는 운동이 피트니스다. 언제나 자기 시간만 맞으면 운동할 수 있어서다. 이것저것 할 것도 많고 관심사도 많아 바쁜 밀레니얼 세대들은 운동을 선택함에도 합리적 관점이 있다. 피트니스 선호가 만들어낸 유행이 바로 홈트레이닝이기도 하다. 가장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운동이자 가장 싸다. 홈트레이닝은 그만큼 운동을 일상적으로 하게 만들었고, 운동복으로 선호되는 레깅스나 요가복 같은 스타일이 자연스럽게 일상복으로 확산되게 만들었다. 

 

평소 어떤 일상을 보내는지도 패션에 영향을 준다. 군대문화 좋아하는 이들이 군복을 일상복으로 입는 거나, 힙합 좋아하는 이들이 힙합스타일의 옷을 일상적으로 입는 것과도 마찬가지다. 결국 레깅스의 유행은 운동의 일상화로도 봐야 한다.

 

애슬레저 룩은 계속 유행 중이다. 애슬레저는 레깅스를 본격적으로 받아들인 남자들 그룹 중 사이클이 취미인 남자들이 있다. 퇴근 후에 타거나, 주말에 타거나 사이클 마니아들을 보는 건 어렵지 않을 만큼 크게 늘었다. 소득 수준이 높아지고, 삶의 질에서 취미의 비중이 커지면서 돈을 좀 더 쓸 수 있는 취미에 관심 갖는 이들이 늘어나게 되는데, 이런 흐름 속에서 사이클도 대두되었다. 

 

이제 취미를 즐길 때 대충 하지 않는다. 마치 전문 선수들처럼 장비를 갖춘다. 당연히 복장도 마찬가지다. 더 이상 사이클 선수들의 쫄쫄이 같은 스타일이 민망함의 이미지가 아니다. 사실 사이클만 그런 게 아니라, 서핑, 수영을 비롯해 각종 레저 스포츠에서 전문 선수들의 레깅스 스타일이 많다. 덕분에 레깅스 시장은 점점 커지고, 남녀 모두 레깅스를 패션으로 받아들인다.

 

이제 취미를 즐길 때 대충 하지 않는다. 마치 전문 선수들처럼 장비를 갖춘다. 당연히 복장도 마찬가지다. 더 이상 사이클 선수들의 쫄쫄이 같은 스타일이 민망함의 이미지가 아니다.


남자 레깅스 유행의 또 다른 배경에는 젠더리스 패션을 받아들이는 남자들의 증가가 있다. 사실 남자나 여자나 레깅스가 주는 편리함 앞에선 동등하다. 운동할 때 입기엔 이보다 편한 옷도 없을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가 어떻게 레깅스를?’이라는 시각을 가진 이들로선 절대 받아들이기 어렵다. 

 

반면 이런 시각을 깬 남자에겐 선택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몸매를 드러내며 건강미를 강조하는 건 여자만의 얘기가 아닌 남자에게도 적용되는 얘기다. 남녀 모두 건강을 위해, 몸매를 위해 적당히 운동하고 관리하는 게 당연해진 시대다. 이미 스키니진이 더 이상 남녀 구분이 없어질 정도로 남녀 공용의 스타일이 되었다는 점도 남자 레깅스 유행에 힘을 실어주는 배경이다. 심지어 중년 남자의 옷도 점점 슬림해지는 시대다. 

 

‘남자 레깅스 열풍이 왜 불까’라는 질문을 ‘왜 남자들이 쫄쫄이를 입고도 민망해하지 않는 걸까’로 바꿔도 좋다. 이 질문 속에서 우리 스스로가 얼마나 젠더 스테레오타입에 빠져 있었는가를 되돌아 볼 수 있을 것이다. 레깅스 입는 남자라고 모든 옷을 다 레깅스로 입는다는 게 아니다. 때와 장소, 용도에 따라 꼭 필요할 때 입는다. 즉 실용적 용도에 따른 합리적 선택이기 때문이고, 자신이 자발적으로 선택한 패션 취향이기 때문에 당당할 뿐, 결코 민망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레깅스를 입든 말든 그건 각자의 몫이지, 입어라 말아라 라는 참견이자 훈수는 거둬도 된다. 패션에서마저도 자유를 못 누린다면 그건 너무 하지 않은가.

 

필자 김용섭은 TREND Insight & Business Creativity를 연구하는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 소장이자 트렌드 분석가이다. 저서로는 ‘라이프 트렌드 2013: 좀 놀아본 오빠들의 귀환’부터 시작해 ‘라이프 트렌드 2019: 젠더 뉴트럴’까지 라이프 트렌드 시리즈와 ‘실력보다 안목이다’ 등 다수가 있다.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장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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