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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춘욱 경제팩트] 21세기 한국, 19세기 아일랜드의 '공통점'

출산율 역대 최저, 여성들이 결혼 기피하게 만드는 환경…아일랜드 대기근 당시와 비슷

2019.05.13(Mon) 09:42:55

[비즈한국] 최근 발표된 2018년 출산율 통계는 또 한 번의 쇼크였다. 2018년 출생아 수는 32만 6900명으로 전년보다 8.6%, 3만 900명이 줄었다. 통계가 작성된 1970년 이후에 가장 적은 수치였다. 특히 여성 1명이 평생 동안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를 의미하는 합계출산율은 2017년 1.05명에서 2018년 0.98명으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으며, 처음으로 1.0명 이하로 떨어지고 말았다. 

 

대체 왜 한국의 출산율이 급락하는 걸까?

 

여러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일단 이미 결혼한 기혼 여성의 출산율이 급락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결국 가장 큰 문제는 미혼 여성이 결혼을 기피하고, 또 결혼 자체가 어려워지는 환경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2018년 출생아 수는 32만 6900명, 여성 1명의 합계출산율은 0.98명으로 통계가 작성된 1970년 이후에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지난 5일 청와대에서 열린 어린이날 맞이 초청행사. 사진=청와대 제공

 

그런데 세계 역사를 살펴보면 지금의 한국과 비슷한 사례를 하나 발견하게 된다. 19세기 중반 아일랜드다.

  

‘세계인구의 역사’의 저자 마시모 리비 바치는 18세기 말 아일랜드에서 벌어진 비극을 담담하게 묘사한다. 

 

아일랜드는 언제나 서유럽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 중 하나였다. 잉글랜드에 복속되어 있던 아일랜드의 국민은 주권의 독립과 자치권을 박탈당하였고, 잉글랜드인 부재지주(不在地主)가 주도하는 농업경영 시스템 하에서 공납을 바쳐야만 하였다. (중략) 이런 빈곤 속에서도 아일랜드의 인구는 급속도로 늘어났다. 심지어 이웃의 잉글랜드보다 더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17세기 말부터 18세기 중엽까지, 아일랜드 인구는 200만을 조금 넘는 수준에서 800만 명 이상으로 늘어났다. -책 93쪽

 

경제적 빈곤이 심화되는데도 아일랜드의 출산율은 왜 계속 높아졌을까? 바치 교수는 먼저 아일랜드 사람들이 독실한 가톨릭 신도였던 것에 주목한다.

 

비참하고 희망이 없던 그들의 생활환경, 장래에 대해 별다른 대비를 하지 않는 기질, 미혼으로 남아 있어 보아야 어떤 이득도 없었던 상황, 그리고 정신적 지도자들의 설교 등이 아일랜드인을 조혼(早婚)으로 이끄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책 95쪽

 

그러나 아무리 독실한 종교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굶주리고 병드는 상황에서 혼인하기는 쉽지 않았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아일랜드 농촌을 뒤흔든 변수가 더 있었다.

 

감자가 빠르게 핵심 작물로 자리 잡았고, 이내 아일랜드인의 거의 유일한 식량이 되었다. 감자의 유입과 전파의 결과로 1인당 경작면적은 더욱 줄어들었다. (중략) 감자가 특별한 역할을 수행하게 된 데에는 두 가지 결정적 이유가 있었다.

 

첫째, 감자는 생산성이 아주 높았다. 사람들이 점점 더 감자에 의존하면서 “오직 한 가족의 생계만을 겨우 유지할 정도의 토지가 이제는 분할되어 그 아들들이나 재소작인까지 부양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중략)

 

둘째, 감자가 함유한 높은 영양가였다. 감자는 식단에서 놀랄 만큼 큰 비중을 차지할 수 있었고, 특히 상당량의 우유와 함께 섭취하면 영양가 높은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책 96~97쪽

 

감자가 높은 생산성을 자랑한 것은 물론, 영양가도 높았기에 인구의 증가를 유발했던 것이다. 특히 예전 같으면 결혼해 분가할 엄두를 내지 못했던 사람들조차 결혼을 할 동기를 유발했던 셈이다. 그러나 감자 농사의 성공이 비극의 씨앗으로 작용하고 말았다.  

 

지속적인 인구 증가가 무한정 지속될 수는 없었다. 감자 재배로 토지 생산성이 높아지긴 했지만, 토지는 농업 생산성을 결정짓는 요인임에 분명하기 때문이다. 1841년 대기근이 시작되기 10년 전부터 이미 혼인 연령의 점진적인 상승 및 이민 증가가 관측된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가 대재앙을 피하게 해주지는 못했다.

 

감자마름병(Phytophthora infestans)이 1845년에 이미 큰 피해를 입혔고, 1846년에는 감자 농사를 완전히 망쳐 놓았다. 이 때문에 1846~1847년 겨울에는 기근, 빈곤, 절망적인 상황에 쫓긴 대량 이민, 그리고 티푸스 같은 전염병의 유행이 있었다. -책 98쪽

 

대기근 당시 숨진 아일랜드인들을 추모하는 더블린시의 조각상.


여기서 잠깐 첨언할 것은, 이 끔찍한 기근이 아일랜드를 덮쳤음에도 산업혁명으로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던 잉글랜드는 제대로 된 지원을 하지 않았다. 1840년 아편전쟁에서 나타난 잉글랜드의 본성은 국경과 인종을 가리지 않았던 셈이다. 이상과 같은 비극 속에 아일랜드 사람들은 그간의 ‘전통’을 버리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대기근 이후 새로운 혼인 질서와 대량 이민 영향으로 인구의 지속적인 감소가 나타났다. 평균 초혼연령은 1831~1841년에 23~24세였지만 19세기 말에는 27~28세로 늦어졌다. 가임연령의 기혼 여성 비율은 1841년부터 19세기 말 사이에 급속히 떨어졌다. 19세기 말 아일랜드 여성의 약 5분의 1이 평생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살았다고 한다. 이 영향으로 아일랜드 인구의 1841년 820만 명에서 1901년 450만 명으로 급속하게 감소하였다. -책 98~99쪽

 

1820년 이후 아일랜드 인구 변화. 자료=The Maddison Project(2018)


감자마름병이 창궐하면서 시작된 심각한 기근으로 인구가 급격히 감소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이 사라지자 아일랜드 여성들은 결혼을 늦추거나 평생 독신으로 살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1845년 대기근의 트라우마가 사회 전체의 패턴을 바꾼 셈이다. 

 

물론 1845년의 아일랜드와 최근의 한국을 1 대 1로 비교할 수는 없다. 다만, 지속적인 출산율의 저하 및 만혼(晩婚) 경향이 보편화된 데에는 미래에 대한 불안이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이철희(2012), “한국의 합계출산율 변화요인 분해: 혼인과 유배우 출산율 변화의 효과”. 한국인구학, 35(1)

홍춘욱 이코노미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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