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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테이프·끈 금지 첫날, 대형마트 자율포장대 가보니

2020년부터 대형마트 자발적 시행…시민들 "환경보호 옳지만, 사전 안내·대안 부족" ​

2020.01.02(Thu) 17:08:06

[비즈한국] 새해 첫날인 1일, 대형마트 3사 매장에서 포장용 종이 박스를 묶을 끈과 테이프가 사라졌다. 환경보호를 위해 재활용이 안 되는 끈과 테이프 제공을 중단키로 한 환경부와 대형마트의 협약이 시작되는 날이기 때문이다.

 

지난 8월 환경부와 대형마트 4사(이마트·홈플러스·롯데마트·농협하나로유통)는 ‘장바구니 사용 활성화 점포’ 운영 자발적 협약을 맺었다. 대형마트에서 무료 제공되던 종이상자 자율포장서비스가 2020년 1월 1일부터 이용 금지된다는 게 핵심 내용이다.

 

2020년 1월 1일부터 대형마트 3사에서 포장용 테이프, 끈 제공이 중단됐다. 사진=유하영 인턴기자


당시 시민들 사이에선 “적어도 4인 가족쯤 되면 구매품목이 많아 장바구니 사용이 안 된다”, “​폐지인 박스를 재활용하는 거라 상관없지 않냐”는 등 ‘탁상 행정’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대형마트는 종이상자 자체를 없애려던 원래 계획을 철회하고 종이상자는 그대로 제공하되 끈과 테이프만 제공하지 않는 것으로 변경했다.  

 

자율 협약 시행 첫날, 종이상자만 있는 자율포장대의 모습은 어땠을까. 경기도 일산의 대형마트 매장 4곳을 다녀왔다. 1일부터 노끈과 테이프 제공을 하지 않겠다고 밝힌 대형마트 3사(롯데마트·홈플러스·이마트)와 아직은 제공하고 있는 농협을 방문해 자율포장대 주변을 살폈다.

 

일산의 한 마트 자율포장대에 테이프와 노끈 없이 종이상자만 놓여 있다. 사진=유하영 인턴기자​

 

롯데마트는 3만 원 이상 구매하면 장바구니를 주는 행사를 진행했다. 장바구니를 주는 고객센터 앞에 모여 있는 사람들. 사진=유하영 인턴기자​


롯데마트를 방문한 정 아무개 씨(42)는 끈과 테이프를 없애면 장 보는 데 타격이 있다고 했다. 정 씨는 “보통 장바구니는 아내가 들고 나머지 무거운 것은 종이상자로 포장해 가는 편”이라며 “한 번에 많이 사서 박스 고정을 제대로 해야 하는데 (끈과 테이프가) 없으니 불편하다”고 말했다.

 

장바구니를 쓰면 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장바구니를 줘도 이런 무거운 건 포장이 힘들다”며 과일상자를 가리켰다. 정 씨는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국민들을 불편하게 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토로했다. 

 

일산의 농협 하나로마트 매장에는 아직 노끈과 테이프가 그대로 있었다. 사진=유하영 인턴기자​


하나로마트는 노끈과 테이프를 없애지 않은 상태였다. 하나로마트 고객센터 관계자는 “농협은 (끈, 테이프와 관련해) 아직 별다른 지시사항이 없다고 들었다”고 답했다. 해당 지점 자율포장대의 끈과 테이프를 관리하는 담당자에 따르면, 설 이후 지침이 내려온 뒤 조치를 취할 예정이다.

 

테이프와 끈을 없애기로 한 것은 환경을 위해 필요한 조치이지만, 예외적인 상황을 고려해 대책을 함께 내놓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농협 안내데스크 관계자 A 씨는 “다른 볼일을 보다가 돌아가는 길에 장을 보는 경우 장바구니가 준비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런 예외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장바구니가 대안이지 않냐고 묻자 그는 “집에 장바구니가 여러 개 있는데 마트에서 또 사면 그게 오히려 낭비 아니냐”라고 반문했다.

 

한 노부부는 “평소에는 장바구니를 들고 다니는데 오늘만 다른 곳을 갔다 오느라 장바구니를 챙기지 못해 부득이하게 종이 박스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배송 의뢰를 하는 경우에도 박스와 테이프가 필요하다. 전 아무개 씨(66)는 하나로마트 지상에 있는 자율포장대에서 상자에 테이프를 붙이고 있었다. 전 씨는 차를 가지고 오지 않아 배달을 맡길 예정이었다. 그는 평소 장바구니를 이용하지만 배송 의뢰 때는 어쩔 수 없이 종이 상자와 테이프를 이용한다고 했다. 상자를 개봉하거나 헐겁게 닫은 채로 배송을 요구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전 씨는 “재활용이 안 되는 테이프나 노끈은 안 쓰는 게 좋다”면서도 “쓰지 못하게 하려면 배송 때 어떻게 하면 될지 방안을 마련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한 마트 관계자는 “고객 반응을 살펴본 뒤 대책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고객분들이 어떤 면에서 불편함을 느끼는지 확인하는 단계가 필요하기 때문에 대책에 대해서는 아직 말씀드릴 단계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마트 관계자는 “종이 상자만 제공하는 경우 종이 상자를 접어서 사용하면 무거운 물품은 떨어뜨릴 수도 있다”며 “대안으로 57리터 규모의 대형 장바구니를 대여용으로 제공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소비자에게 환경보호 책임을 전가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다. 어린 딸과 장을 보러 온 김 아무개 씨(43)는 자율포장대에서 테이프를 뜯고 있었다. 평소 종량제 봉투 겸용 비닐봉지를 많이 사용하지만, 짐이 많은 경우엔 종이박스를 사용한다고 했다. 김 씨는 “환경부 정책이 잘못된 것 같다. 애초에 마트에 물품을 납품할 때 상자에 테이프가 붙어 나오는데 소비자에게만 쓰지 말라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홈플러스 매장에는 자율포장대가 3곳 있었는데, 지하 주차장에 있는 자율포장대에선 혼란이 빚어지고 있었다. 포장하기 위해 들른 다섯 가족은 모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장을 다 본 뒤 자율포장대의 안내문을 보고서야 끈과 테이프가 없는 줄 알게 된 것. 

 

남 아무개 씨(50)는 “장바구니로 들기 힘든 무거운 짐은 알아서 가져가라는 것 아니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대형 장바구니 대여가 대안이라고 말하자 남 씨는 “그러면 마트 측에서 안내 문자라도 보냈어야 했다. 장을 보는 내내 ‘오늘부터 끈과 테이프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안내 방송도 없었다. 이곳의 안내문은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아 포장하기 전까지는 모른다”고 했다. 

 

홈플러스 지하주차장 자율포장대에서 사람들이 혼란을 겪고 있다. 사진=유하영 인턴기자​


아이 두 명을 데리고 온 부부는 기자가 설명을 해준 뒤에야 끈과 테이프가 없음을 알았다. 아내 B 씨는 “이거 어떻게 하지? 큰일났다”며 어쩔 줄 몰라했다. B 씨는 “대안에 대한 설명과 안내 없이 1월 1일부터 당장 이렇게 하니 당황스럽다. 자율포장대 옆에 그런(안내문을) 걸 마련해주든가 해야지 이게 뭔가”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후로도 자율포장대를 방문한 13가족 가운데 끈과 테이프가 제공되지 않는 걸 아는 가족는 두 가족뿐이었다. 대부분 종이상자를 고르다가 끈과 테이프가 없는 것을 알고 당황했다. 어떤 이들은 테이프가 붙어 있는 박스에서 테이프를 떼어 재사용하려고도 했다. 

 

홈플러스 지하 자율포장대 옆 한쪽 구석에는 끈과 테이프 제공 중단에 앞서 치워놓은 플라스틱 노끈과 테이프가 있었다. 사진=유하영 인턴기자​


이들은 대부분 결국 어쩔 수 없다는 듯 돌아서거나 종이 상자만 가져갔다. 최 아무개 씨(36)는 상자 밑 부분을 엇갈리게 접어 짐을 싸기 시작했다. 최 씨는 “이제 (종이 상자는) 못 쓰는 거죠. 낭비도 많이 됐었고”​라더니 이제부터는 장바구니를 들고 다닐 것이라며 차로 향했다. 

 

테이프 대용으로 박스 밑 부분을 접어 사용하는 모습. 사진=유하영 인턴기자​


홈플러스 측은 지하주차장 자율포장대에서 어떤 혼란이 일어나는지 모르는 듯했다. 현장에서 만난 마트 관계자는 “소비자에게 불편을 줄 수 있는 사항이긴 하다. 우리도 클레임이 들어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하는데 오늘부터 시행된 거라 그런지 아직 클레임이 없다.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환경보호를 위해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았다. 하나로마트에서 쌀을 판매하는 C 씨는 “편하려면 한도 끝도 없다”면서 “테이프와 끈 사용을 모든 마트에서 전면 금지하도록 강제해야 한다”고 의견을 밝혔다. 자율 협약으로는 부족하다는 얘기다. 장을 보러 나온 고 아무개 씨(38)는 “아직 정착이 안 되어 당장은 불편하겠지만 장기적으로 환경을 생각했을 때 없어지는 게 맞는 것 같다”고 했다.

 

한 마트 고객센터 관계자는 “개인 불편을 감수해서라도 시행을 해야 한다고 본다. 처음에는 좀 힘들어도 장바구니를 들고 다니는 걸 생활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을 보던 두 여성은 오늘부터 끈과 테이프가 제공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말했다. 기자의 설명을 듣고 나서 “이젠 장바구니를 들고 다녀야겠다”는 말을 주고 받았다. 한 아무개 씨(44)는 “박스에 익숙해져 있어 당장은 불편하겠지만 환경을 생각하면 해야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두 사람 모두 이 정책을 통해 플라스틱 소비가 줄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임성희 녹색연합 전환사회팀장은 “테이프와 끈 제공을 중단하는 이번 방침은 환경을 생각하면서 마트가 자발적으로 시행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중요한 건 소비자들이 장바구니를 들고 다니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하영 인턴기자​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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