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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보호하는 윤리적 투자 '그린본드' 정말 믿어도 될까

5년 새 발행 규모 5배 증가…법적 구속력 없는 가이드라인 '그린워시' 논란

2021.01.26(Tue) 14:05:03

[비즈한국] 국내 기업들이 투자금 조달을 위해 친환경 프로젝트 채권 발행(그린본드) 방식을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지만, 관리·대응 체계가 아직 가이드라인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업계에서는 법적인 구속력이 없는 가이드라인의 그린본드 발행 목적·기준·절차 등을 좀 더 객관화하고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그린본드에 대한 발행자와 투자자들의 관심이 해를 거듭할수록 높아지고 있다. 그래픽=연합뉴스


그린본드는 환경 친화적인 프로젝트에 투자할 자금 마련을 목적으로 발행하는 채권이다. 그린본드 인기는 날로 높아지고 있다. 환경부에 따르면 전 세계 그린본드 시장 규모는 2015년 약 60조 원(500억 달러)에서 2019년 약 300조 원(2500억 달러)으로 확대되는 등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그린본드의 인기가 상당하다. 특히 SK그룹 계열사들이 연초부터 그린본드 발행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SK네트웍스 자회사 SK렌터카는 7일 친환경 자동차 렌털 강화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5년 만기 그린본드 발행에 나선다고 밝혔다. SK렌터카는 오는 27일 회사채 발행을 위한 수요예측을 시행할 예정이다. 

 

SK하이닉스도 14일 10억 달러 규모의 그린본드를 발행한다고 밝혔다. 글로벌 메모리반도체 기업 중 그린본드를 발행한 기업은 SK하이닉스가 처음이다. SK이노베이션의 미국 배터리 자회사인 SK배터리아메리카도 20일 10억 달러(약 1조 1000억 원) 규모의 유로본드 발행에 성공했다. 3년 만기 미화 3억 달러와 5년 만기 미화 7억 달러 규모다. 

 

롯데글로벌로지스도 18일 국내 물류 기업 가운데 처음으로 5년 만기 500억 원 규모의 그린본드를 발행한다고 밝혔다. 그린본드로 마련한 재원을 통합물류 플랫폼 구축과 차세대 택배 시스템 도입, 친환경 전기화물차 등에 투자할 예정이다. 발행일은 오는 29일이다. 현대오일뱅크 역시 20일 창사 처음으로 그린본드 발행을 위한 수요예측에 나섰고, 한국남부발전도 같은 날 투자자 모집을 시작했다.

 

사실 그린본드는 기업에 큰 이익을 가져다 주는 건 아니다. 일반 채권을 발행해 투자자로부터 모은 돈은 모든 기업 활동에 쓰일 수 있지만, 그린본드는 ‘환경 친화적 프로젝트’에 한정되기 때문이다. 채권의 발행 및 원리금 상환과 같은 금융적 측면에서 일반 채권보다 기업에 주어지는 혜택이 많은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린본드의 발행 절차가 통상적인 채권 발행 절차에 몇 가지 절차가 추가되어 기업은 일반 채권 발행 시보다 더 많은 발행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그런데도 기업들이 적극적인 것은 그린본드 발행이 투자자 저변을 확대할 기회여서라고 업계는 분석하고 있다. KDB산업은행에서 발간한 ‘그린본드 시장의 성장과 과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시장에는 일반적인 투자자와 달리 투자의 사회적 책임을 중시해 엄격한 투자 기준을 견지하는 윤리적 투자자(ethical investor)들이 존재하는데, 친환경 프로젝트 투자자금 조달이라는 목적을 가진 그린본드가 이들의 투자를 유인하기에 적합한 채권이다. 

 

롯데글로벌로지스는 그린본드로 마련한 재원을 통합물류 플랫폼 구축과 차세대 택배시스템 도입, 친환경 전기화물차 등에 투자할 예정이다. 사진은 경기 김포시 롯데마트 온라인 전용센터에 세워진 전기차 충전소 모습. 사진=롯데글로벌로지스 제공


다만 일각에서는 그린본드를 향한 우려도 적지 않다. 그린본드의 원천적인 발행 목적이 희석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헌영 산업은행 조사부 파트장은 “그린본드의 발행 목적은 환경 보전 및 개선을 위한 투자자금 조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다른 수단을 통한 자금 조달이 가능함에도 투자자 저변을 확대하고 사회적 명성과 시장 평판을 높이기 위해 그린본드를 발행할 수도 있다. 이는 그린본드의 정의와 함께 이에 기반한 그린본드의 진실성 판단에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우려를 해소하고자 나선 민간단체도 있다. 국제자본시장협회(International Capital Market Association, ICMA)가 녹색채권원칙(GBP)을 발표한 것이 그 예다. 현재 GBP는 국제적으로 널리 인정받는 추세다. 우리나라 역시 환경부가 GBP를 바탕으로 국내 현황 및 해외 녹색채권 관련 기준을 참고해 ‘녹색채권 가이드라인’을 수립했다. 

 

그러나 GBP는 민간 자율규제인 까닭에 법적 구속력이 없다. 환경부 가이드라인 역시 마찬가지다. 실질적인 친환경 경영과는 거리가 있지만 녹색경영을 표방하는 것처럼 홍보하는 ‘그린워시’ 행태를 제대로 제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이어지는 이유다. 

 

환경부에 따르면 그린본드 발행자는 채권 발행 전후로 가이드라인을 준수하고 있음을 내·외부 검토를 통해 자체적으로 밝혀야 한다. 그런데 그린본드의 신뢰도를 높일 수 있는 발행 후 외부 검토가 권고 사항이다. 그린본드 발행 방식 또한 발행자가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

 

이헌영 파트장은 “그린본드 발행을 통해 투자 재원을 조달할 때 발행 목적을 명확히 해야 할 뿐만 아니라 투자 대상 프로젝트의 평가 및 선정, 자금의 관리, 외부검토 및 사후보고 등에 대한 제반 기준과 절차들을 엄격하게 수립해 불필요한 논란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또 금융기관은 투자 대상 그린본드의 발행 목적, 제반 기준 및 절차 등에 대한 엄격한 검증과 함께 발행 자금이 목적에 맞게 올바로 사용되고 있는지 등을 면밀히 감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찬웅 기자 rooney@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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