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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제약 스토리] '한국판 화이자' 꿈꾸는 제약사 M&A 역사

2000년 대 의약분업 이후 중소 제약사 인수 활발…글로벌 경쟁 환경서 '빅딜' 가능성 확대

2021.06.01(Tue) 16:09:33

[비즈한국] 우리나라 제약 산업은 경제 규모에 비해 매우 더디게 발전했다. 국가 주도로 특정 산업을 집중 육성해 단기간에 산업화를 이루었지만, 제약 산업은 기초 과학이 뒷받침돼야 하기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전 세계가 코로나19로 신음하는 요즘, 우리나라는 ‘카피약 강국’이라는 오명을 벗고 선진국과 나란히 경쟁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비즈한국’은 우리나라 제약 산업이 걸어온 길을 되짚어봄으로써 우리 제약 산업이 지닌 잠재력과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점쳐본다.

 

코로나19 백신 개발사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은 화이자는 처음부터 글로벌 제약사로 이름을 날렸을까? 아니다. 1849년 설립된 화이자는 원래 식품첨가물 제조사였다. 이후 2차 세계대전이 발생한 1940년대 페니실린을 대량 생산하며 부를 축적했고, 1950~1960년대 항생제 개발에 성공했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는 관절염 치료제 펠덴, 고혈압 치료제 노바스크, 발기부전 치료제 비아그라 등을 개발하며 글로벌 제약사로서의 기틀을 다져 나갔다.

 

현재 화이자는 글로벌 1위 제약사로 발돋움했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의 ‘2020 데이터북’에 따르면 화이자는 2019년 453억 달러의 처방의약품 매출을 올렸다.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50조 원이 넘는다. 여기에는 앞서 말한 화이자의 신약 연구개발(R&D) 투자와 성공이 큰 영향을 미쳤지만, 성장 동력이 된 또 다른 축이 있다. 바로 ‘인수합병(M&A)’이다.

 

화이자는 현재 글로벌 1위 제약사로 발돋움했다.


M&A는 화이자를 업계 1위로 올라서는 발판이 됐다. 1999년 화이자는 업계 14위에 불과했다. 당시 1118억 달러를 들여 워너램버트제약을 인수함으로써 고지혈증치료제 리피토의 권리를 가져왔고 단숨에 업계 5위로 올라섰다. 이후 2003년과 2009년 파마시아와 와이어스 등을 잇달아 인수하며 세계 최대 제약회사가 됐다. 2014년 화이자는 아스트라제네카에 인수를 제안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지금도 화이자를 비롯한 글로벌 제약사는 대형 인수합병을 통해 신약 파이프라인을 늘리며 경쟁력을 키우고 있다. 지난해 미국 애브비는 아일랜드 엘러간을 품에 안았다. 당초 화이자의 인수합병이 유력하다가 애브비가 최종적으로 인수했다. 그런데 문득 궁금하다. 지금까지 국내 제약업계에서는 M&A가 어떻게 이뤄졌을까? ​우리나라의 경우 대형 제약사라고는 해도 연 매출이 1조~2조 원 정도에 불과해 글로벌 제약사라고 할 만한 기업은 없다. 우리나라에서 화이자 같은 기업이 탄생할 수는 없을까?

 

#2000년대 들어 국내 제약사 M&A 활발

 

국내 제약업계에서는 2000년대 들어 의약분업이 실시되면서 M&A가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주로 경영 위기에 있는 국내 중소기업을 대기업이 인수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2001년 녹십자가 상아제약을 인수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제약업계 구조조정’의 시작으로 불리는 이 인수로 녹십자는 일반의약품 사업을 강화했고, 상아제약은 관리종목에서 벗어났다. 2003년 녹십자는 경남제약도 인수했다.

 

녹십자가 일반의약품 사업을 키우고자 했다면 CJ는 전문의약품 사업을 강화하려 2004년 인수 경쟁에 뛰어들었다. 당시는 국내 제약사들이 특허 만료된 의약품을 개량해 신약으로 내놓으면서 업계에서 전문의약품 경쟁이 치열하던 상황. CJ는 인수 경쟁자였던 효성과 삼양사 등을 제치고 한일약품을 최종 인수했다. 2003년 CJ의 고지혈증 치료제 개량신약 심바스타 매출은 20억 원 정도였는데, 개인병원 영업력이 강했던 한일약품을 이용해 전문의약품 분야의 지위를 공고히 하려는 계획이었다.

 

의약분업은 국내 제약사 간 M&A를 불러일으켰다.


의약분업으로 제약사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해지고, 신약을 개발하려는 국내 제약사들의 의지가 뒷받침되면서 M&A 사례는 꾸준히 나왔다. 2005년 KT&G는 제약·바이오 사업을 미래 수종사업으로 성장시키겠다며 영진약품을 인수했다. 화학섬유 전문기업이던 SK케미칼은 2006년 동신제약을 인수하며 동신제약의 혈액제재와 백신 제품군으로 사업을 확대했다.

 

녹십자에 인수됐던 경남제약은 2007년 다시 HS바이오팜에 인수됐다. 당시 녹십자는 500억 원이 넘는 장·단기 차입금을 청산할 필요가 있었고, 수익이 그다지 많지 않은 경남제약을 팔아 이를 메우자는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매각 차액도 45억 원 정도로 크지 않았다고 한다.

 

글로벌 제약사와 비교하면 국내 제약사 인수 규모는 턱없이 작았다. 신약 개발 등 R&D에 자금을 투입해야 하는 상황에서 자본이 부족한 기업이 M&A에 많은 돈을 쓰기는 무리다. 국내 제약사와 글로벌 제약사 간 이렇다 할 M&A도 없었다. 국내 제약사들은 자본도 넉넉지 않은 데다 경영권 유지 등을 이유로 해외 기업과의 M&A를 기피한 것으로 전해진다. 또 신약보다는 제네릭(복제약)에 관심을 두는 국내 기업이 적잖았다.

 

#해외 의약품 시장 중요해지면서 해외 제약사와의 M&A 늘어

 

2010년대에 들어서는 정부의 공격적인 약값 인하정책으로 국내 기업 간 M&A가 좀 더 활성화됐다. 중소제약사의 경우 약가 규제로 생존에 위협을 받으면서 지금이 최고 가격에서 매각할 적기라 판단한 것이다. 대형 기업의 입장에서도 약가인하, 리베이트 근절 정책 등으로 수익성이 약화한 상황에서 제품군을 다양화하고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게 과제였다. 2010년 동아제약, 녹십자, 한독은 원료 전문 기업인 삼천리제약을 놓고 인수전을 벌여 동아제약이 최종 인수자가 됐다. 2013년 한독은 태평양제약의 제약사업부문을 인수하며 업계 10위권에 진입할 수 있었다. 

 

점차 해외 의약품 시장의 중요성이 언급되면서 해외 기업으로 눈을 돌리는 기업도 나왔다. 2013년 대웅제약은 원료의약품 생산 공장을 보유 중이던 중국 제약회사인 바이펑사와 인수계약을 체결했다. 같은 해 동아쏘시오홀딩스도 스페인 제약사 인벤트 파르마 인수를 추진했다. 다만 조건이 맞지 않아 계약은 성사되지 않았다. 

 

최근에는 해외 기업들을 인수하거나 반대로 해외 기업들에 매각하는 사례도 나왔다. 지난해 6월 셀트리온은 다케다 아시아태평양지역 프라이머리케어 사업부를 2억 7830만 달러에 인수했다. 인천광역시 연수구에 위치한 셀트리온 본사. 사진=이종현 기자


‘빅딜’이 성사되기도 했다. 한미약품은 2015년 사노피와 당뇨병 치료제에 대해 약 4조 원의 기술수출 계약을 체결하는 등 그해에만 5건의 기술수출 계약을 맺었다. 2016년 사노피가 기술수출 계약 중 일부를 변경하겠다고 통보하고 2019년 얀센이 2015년 취득한 비만 당뇨치료제의 권리를 반환하면서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전례 없던 규모의 거래에 주목받았다.


해외 기업들을 인수하거나 반대로 해외 기업에 매각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지난해 6월 셀트리온은 다케다 아시아태평양지역 프라이머리케어 사업부를 2억 7830만 달러에 인수했다. 지난해 7월 GC는 북미 혈액제제 계열사 2곳을 스페인 그리폴스에 4억 600만 달러에 매각했다.

 

국내 기업과 해외 기업 간 M&A는 앞으로 점차 활발해지리라는 전망이 나온다. 국내 제약사가 해외 제약사와 경쟁하기 위해 필요한 과제여서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혁신적인 신약 개발을 기반으로 하는 기업의 재편이 시작됐다고 본다. 신약을 개발하는 주류 기업들을 정부가 조세 지원하고 그 기업들이 외국 기업에 투자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주는 일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2018년 한국콜마가 CJ헬스케어를 약 1조 3000억 원에 인수한 사례처럼 국내 제약사 간 대형 M&A 사례가 나올지도 관심이 모인다. 앞서의 관계자는 “우리 기업이 해외에 본사를 둔 기업에 합병될 수도 있고, 우리 기업에 투입된 해외 자본이 국내 자본보다 더 많아질 수도 있다. 국내 기업 간 M&A도 당연히 여지가 있다고 본다. 신약을 위주로 재편되고 있기 때문에 모든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고 했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국내 제약사끼리의 M&A는 독과점 현상을 유발할 수도 있고, 시장 확보보다는 당장의 매출을 늘리려는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글로벌 제약사들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글로벌 제약사와 손을 잡아야 한다. 화이자도 M&A를 통해 성장해왔다. 글로벌 기업이 되려면 결국 기술력이 있는 유망한 해외의 중소형 제약사와 기술제휴, 합병까지 가는 방법을 고려하는 게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김명선 기자 line23@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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