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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술응원프로젝트 시즌11] 박순연-바다의 표정을 그린다

2025.12.22(Mon) 09:14:38

[비즈한국] 오롯이 작가를 지원하기 위한 기획으로 시작한 한국미술응원프로젝트가 10년을 이어왔다. 처음 마음을 그대로 지키며 230여 명의 작가를 응원했다. 국내 어느 언론이나 문화단체, 국가기관에서도 시도한 적이 없는 유일한 일이었다. 그 10년의 뚝심이 하나의 가치로 21세기 한국미술계에 새겨졌다고 자부한다. 그래서 ‘한국미술응원프로젝트 10년의 역사가 곧 한국현대미술 흐름을 관찰하는 하나의 시점’을 만들었다고 평가받는다. 이제 시즌11에서 한국미술의 또 하나의 길을 닦으려 한다.

 

박순연 작가는 오랫동안 곁에서 보아온 바다를 그린다. 일상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담아. 사진=박정훈 기자


1990년대 말 처음으로 파리에 갔다. 춥고, 햇살은 인색했다. 아침 7시의 거리는 아직도 어둠 속에 있었다. 구수한 빵 냄새가 이끄는 빵집 문을 열고 들어섰다. 파리에 왔으니 갓 구운 바게트를 먹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그곳에서 책에서만 봐온 파리지앵을 만날 수 있었다. 칠십을 바라보는 나이쯤 돼 보였다. 곱게 빗어 넘긴 은발은 세피아색 중절모와 중후하게 어울렸고, 금색의 가는 금속테 안경은 나이를 무색하게 했다. 풍성한 콧수염은 정성스레 다듬은 듯 단정했다. 순백의 와이셔츠에 푸른빛이 도는 보라색 넥타이, 채도 높은 밝은 빨간색 머플러에 감색 정장 차림이었다. 짙은 갈색 구두도 방금 닦았는지 광이 났다. 잘 연출한 패션 감각이 파리의 겨울 아침 공기만큼 상쾌했다. 황금색 윤기가 도는 커다란 반려견과 함께였고, 방금 구운 바게트를 사서 나서는 중이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그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은은한 향기와 함께 그의 뒷모습은 오래 남았다. 호텔 침대에서 방금 나와 부스스한 내 차림새가 민망할 정도로.

 

아침 식사로 먹을 빵을 사기 위한 잠시의 외출에도 완벽한 준비를 하는 파리인. 일상의 사소한 일에다 의미를 새기고 그에 맞는 격식을 갖추는 마음이 파리를 예술의 도시로 만든 것은 아닐까. 

 

Beyond the Blue: 80.1×35.1cm Acrylic on canvas 2023

 

 

우리가 사는 일도 따지고 보면 하찮은 일들의 연속이다. 보통 사람들은 거의 비슷한 아파트에 살며, 흔한 풍경을 보며 아침을 맞는다. 어제 본 사람들과 만나며 그다지 특별하지 않은 이야기를 한다. 산책에서 만나는 풍경 역시 다르지 않을 게다. 

 

그 작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것에 가치를 붙이면 삶은 그만큼 소중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역사를 바꾸는 위대한 예술이 나타나는 것도 이런 마음에서 시작한다. 

 

작가가 진정한 예술을 찾을 수 있는 것도 자신의 일상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서 시작한다. 예술은 묵직한 사상이나 시대의 고민을 담아야 가치가 있다는 허망한 생각에서 벗어나야 가능한 일이다.

 

Nostalgic: 33.4×45.5cm Acrylic on canvas 2023


 

박순연의 작업 태도도 이런 마음에서 시작한다. 그는 바다가 보이는 고장에 산다. 오래전부터 봐온 바다. 그게 작가의 소재이자 주제다. 

 

“저는 매일 바다를 봅니다. 제 마음 상태에 따라 바다는 다르게 보입니다. 제 일상에서 제일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바다의 표정이 제 작업의 중심인 셈이죠. 이런 바다의 각기 다른 표정을 제 방식대로 표현해보고자 하는 게 제 회화입니다.”

 

박순연의 회화는 자신의 일상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 거기에 의미를 붙이고 다르게 보이도록 하려는 의지가 담긴 작업이다.​

전준엽 화가·비즈한국 아트에디터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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