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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 패피 탐사대③] 음반 하나에 버전이 열 개…K팝 뜰수록 쓰레기 폭증?

수많은 버전의 실물 앨범 사야 팬싸·순위·인기 증명…기획사 "어쩔 수 없는 부분, 차트 집계 방식 바뀌어야"

2023.02.10(Fri) 10:47:26

[비즈한국] 패션 산업은 ‘환경오염을 일으키는 산업’ 2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지만, 한국에서 이 같은 상황을 바꿀 논의는 아직 찾아보기 힘들다. 기후 위기 시대가 도래해 세계 각국과 글로벌 기업이 경영 방식까지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는데도 말이다. ‘패션피플(패피)’은 ‘최신 유행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트렌드에 민감한 이들은 ​패스트 패션을 많이 소비하는 것으로 비치지만, 이제는 환경과 기후위기 문제를 인식하고 이에 기반해 소비하는 ‘그린 패피’로 달라지고 있다. ‘그린 패피 탐사대’는 새로운 패피의 눈으로 패션을 비롯한 일상의 환경 문제를 파헤치고 그 대안을 살펴보고자 한다. 

 

‘K팝 데뷔가 곧 세계 데뷔’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K팝은 세계인의 문화가 됐다. 빌보드 차트에서도 한국 가수를 쉽게 볼 수 있다. 지난 7일에는 BTS의 동생 그룹인 투모로우바이투게더가 ‘빌보드 200’ 1위에 올랐다. 앨범 판매량도 늘고 있다. 써클차트에 따르면 2022년 앨범 판매량 400(1위부터 400위까지의 판매량 합계)은 2021년 대비 35.1% 증가했다. 2022년 월간 상위 400위 기준 합산 앨범 판매량은 8074만 4916장이다. 2017년 1693만 491장, 2018년 2281만 9118장, 2019년 2509만 5679장, 2020년 4170만 7301장, 2021년 5708만 9160장으로 매년 가파른 속도로 판매량이 증가한다. 인기 아이돌 그룹의 앨범 판매량이 100만 장을 넘기는 사례도 쉽게 볼 수 있다. 

 

교보문구에서 판매하고 있는 앨범 진열대 모습. 앨범 크기가 커 제대로 진열하기 어려울 지경인 앨범도 많다. 사진=전다현 기자

 

K팝의 영향력은 늘었다는 방증이지만, 마냥 좋아하긴 어렵다. 그만큼 앨범 쓰레기도 늘었기 때문이다. 앨범 판매량은 인기를 보여주는 척도지만, 동시에 아이돌 문화가 얼마나 기형적인지 보여준다. ‘앨범 사재기’ 문화 없이는 아이돌을 응원하기 어려운 구조가 됐다.

 

물론 자성의 목소리도 나온다. K팝 팬들은 기후위기에 대항하기 위해 케이팝포플래닛이라는 플랫폼을 조직했다. K팝이라는 공통분모를 바탕으로 기후위기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소수자와 연대하는 식이다. 이들은 엔터사에 플라스틱 CD와 과도한 패키징 대신 디지털 플랫폼 앨범을 발매하라고 요구한다. 2022년에는 무분별한 앨범소비문화를 비판하는 의미로 대량의 앨범을 모아 기획사에 ‘반환’했다. 

 

그러나 현실은 만만찮다. 좋아하는 아이돌의 팬 사인회에 가려면 다량의 앨범을 사야 한다. 종종 앨범 패키징의 품질은 판매량과 직결되기도 한다. 디지털 앨범은 앨범 판매량 집계에 빠져 의도치 않게 불이익을 보는 경우도 있다. 

 

#뉴진스 앨범 직접 구매해보니

 

앨범 쓰레기가 많이 나온다는 비판은 팬이 아닌 ‘머글’이 이해하기는 다소 어렵다. 요즘 아이돌 앨범은 어떻게 발매될까? 뉴진스의 앨범을 구매해봤다. 순탄치 않았다. 구매할 수 있는 앨범의 종류가 너무 많아서다. 데뷔를 포함해 음원 발매를 두 번 했으니, 앨범도 2개일 거란 생각은 착각이었다. 앨범 종류는 다양했다. 가방이 패키징된 앨범부터 표지가 각각 다른 앨범까지. 심지어는 멤버별로도 앨범을 구매할 수 있었다. 물론 수록곡 목록은 같다.

 

데뷔 앨범 한 개를 구입했다. 전체 멤버가 포함된 뉴진스 버전(멤버별 앨범, 위버스 앨범, 백 앨범 버전 등이 있다) 앨범이었다. 앨범 크기가 노트북보다 큰 수준이다. 선물 상자처럼 박스로 포장돼 도착했다. 가격은 1만 8800원(정가 기준). 구성품도 많았다. 각종 포토카드와 포스터, 화보집, CD, ID카드까지. 흔히 말하는 ‘혜자’였다. 인디밴드 앨범과 비교하니 더욱 그랬다. 비슷한 가격에 구입한 잔나비 앨범에는 CD 한 장만 들어 있었다. 

 

위버스에서 판매되고 있는 뉴진스 앨범 목록. 사진=위버스

 

뉴진스 데뷔 앨범의 뉴진스 버전 앨범 구성품. 배송 상자를 제외, 포장지를 포함한 구성이다. 사진=전다현 기자

 

인디밴드 잔나비의 앨범. CD 한 장이 들어 있다. 사진=전다현 기자

 

뉴진스만 이런 건 아니다. 오프라인 매장을 방문하니 아이돌 앨범은 대부분 직접 들고 가기 힘들 정도로 거대했다. 앨범 하나 가격이 6만~7만 원에 육박한 경우도 있었다. 반면 인디 밴드나 외국 가수 등은 주로 CD나 LP 한 장으로만 앨범이 구성됐다. 언제부터 앨범이 이렇게 커졌을까. 

 

#앨범 많이 살수록 팬사인회 뽑힐 가능성 올라

 

한 아이돌 그룹의 팬이라는 30대 초반 A 씨는 “좋아하는 그룹의 앨범이 나오면 기본적으로 세트 앨범(모든 버전)을 구매한다. 멤버가 많으면 한 세트에 30만 원이 든다. 처음부터 멤버별로 앨범이 발매된 건 아니다. 초창기에는 앨범 버전이 하나, 조금 지난 후에는 2개 정도 나왔는데, 약 10년 전부터 멤버별로 앨범 버전이 나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20대 B 씨도 “요즘 앨범은 여러 가지 버전으로 나온다. 일반 앨범 버전 몇 개, 주얼 앨범 몇 개, 멤버별 앨범, 키트 앨범 등 한번 음반을 발표해도 여러 장의 앨범이 판매된다. 콘서트나 팬 사인회를 갈 정도의 팬이 아니더라도 대부분 세트로 구매하는 경우가 많다. 좋아하는 그룹의 앨범이니 모든 버전을 구매하고 싶은 건 당연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팬이라면 기본적으로 모든 버전의 앨범을 구매한다는 설명이다. ​

 

문제는 앨범 구매가 ​소장을 위한 것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20대 C 씨는 “아이돌 팬이라면 다 알겠지만, 대부분 팬싸(팬 사인회)를 가기 위해 다량의 앨범을 구매한다. 일명 ‘팬싸컷’이란 게 있다. 앨범 하나당 팬 사인회 응모 기회를 주는데, 얼마 이상 사면 당첨이 확실해진다는 대략의 기준이 있다. 팬싸를 가고 싶은 팬이라면 그 기준 이상의 앨범을 구매해 응모한다. 박스째로 앨범을 사는 정도인데, 그룹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200만 원에서 400만 원이 든다”고 설명했다. 

 

C 씨는 “한 판매처에서만 팬싸컷을 맞추는 건 그나마 양호한 편이다. 보통 애플뮤직, 사운드웨이브, 메이크스타, 위드뮤, 신나라, 핫트랙스 등 판매처​에서 팬 사인회 이벤트를 기획사와 함께 기획한다. 판매처마다 사인회를 연다는 말이다. 그래서 사인회를 여는 판매처마다 팬싸컷에 맞춰 구매한다”고 말했다.

 

애플뮤직에서 공지한 아이돌 그룹과의 영상 통화 이벤트. 애플뮤직 사이트에서 앨범을 구매하면 응모기회가 주어진다. 사진=애플뮤직


D 씨는 “팬싸컷을 맞춘다고 100% 당첨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팬 사인회 추첨이 완전 무작위는 아닌 것으로 알려져, 팬들도 확실하게 하기 위해 앨범을 많이 사는 거다”고 설명했다. 

 

다른 목적도 있다. 앨범 판매량이 곧 인기 순위로 이어지기 때문에 팬들로서는 의무감을 느낀다. E 씨는 “앨범 판매량은 여러 차트에 반영된다. 음악방송 순위도 음반 기준으로 매겨진다. 글로벌 차트에서 K팝 아이돌의 앨범 판매량이 강세인 건 이런 영향도 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외국 가수들도 음반 하나를 여러 버전으로 발매하는 추세다. 팝가수 테일러 스위프트는 작년 10월 ‘미드나이츠(Midnights)’​를 발매하면서 LP 버전, CD 버전의 앨범을 5개씩 내놨다. 카세트테이프로 구성된 앨범도 있다. 

 

미국 팝스타 테일러스위프트는 최근 앨범을 LP, CD 버전으로 5장씩 발매했다. 사진=네이버 쇼핑

 

팝음악 팬이라는 F 씨는 “K팝 문화의 영향인지 요즘은 외국 가수들도 여러 버전의 앨범을 내놓는다. 아이돌처럼 굿즈가 많이 들어 있는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빌보드 차트가 음반 판매량과 직결되니까 그런 것 같다. 이전에는 기껏해야 두 가지 버전이었다. K팝 문화​가 세계 음악 시장에 악영향을 주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앞서의 C 씨는 “아이돌들이 이런 식으로 다들 앨범 판매량을 늘리는 터라,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의 앨범을 사지 않으면 그들의 활동 실적이 저조해지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앨범을 살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결국은 처치 곤란…엔터사 “차트 집계 방식 바뀌지 않는 한 계속될 것”


다량으로 구매한 앨범은 결국 ‘처치 곤란’이 된다. 앞서의 B 씨는 “이런 구조다 보니 남는 앨범이 넘쳐난다. 팬카페, 트위터 등에서 무료나눔을 하거나 행사에 가져가서 나눠주기도 한다. 이래도 안 되면 당근마켓 같은 곳에 올리고, 기부도 한다. 생일카페를 가면 앨범을 무료로 가져가라고 쌓아둔다”고 설명했다. 

 

D 씨는 “최근에 이런 마케팅에 대해 비판이 나오자 ​친환경 패키지로 나오는 앨범도 많다. 콘서트 티켓도 디지털화한다고 한다. 그렇지만 친환경 패키지라고 해서 버전이 더 늘면 결국 쓰레기가 늘어나는 거다. 제발 버전을 줄였으면 좋겠다. 요즘 누가 CD를 듣나. 디지털 앨범도 내놓는데, 보통 그것만 발매하는 게 아니라 여러 개 버전 중 하나로 발매하는 형식이다. 처음에는 좋은 마음으로 구매했지만, 요즘은 낭비라고 느껴진다”고 비판했다.  

 

당근마켓에 올라온 아이돌 앨범 무료나눔 글. 개봉도 하지 않은 앨범을 무료로 쉽게 구할 수 있다. 사진=당근마켓

 

엔터사들도 이런 비판을 알고 있다. 그래서 CD 대신 음원 정보가 담긴 QR 종이 앨범이나 디지털 플랫폼 앨범을 함께 발매하기도 한다. 패키징 재질을 플라스틱이 아닌 친환경 종이로 바꾼 사례도 있다.

 

그러나 실물 CD가 없는 앨범 발매는 종종 논란의 대상이 된다. 2017년 지드래곤은 ‘무제(無題)’​를 발매하면서 USB만 있는 앨범을 판매했는데, 음반으로 인정되지 않아 국내 차트 집계에 반영되지 않았다. USB 안에 있는 링크로 음원을 다운 받는 형태였는데, 저작권법상 음반으로 볼 수 없다는 이유였다.

 

BTS 멤버 제이홉은 작년 ‘​잭 인 더 박스(Jack In The Box)’를 발매하면서 실물 CD 없이 소량의 굿즈만 포함된 종이 박스 앨범만을 내놨다가 일부 팬들의 빈축을 샀다. 소장가치가 적고 성의가 없다는 비판이었다. 이로 인해 실제 인기보다 앨범 판매량이 다소 적었다는 얘기도 있다. 국내 앨범 차트에는 판매량이 반영됐지만 빌보드 차트에는 실물 앨범으로 인정되지 않아 판매량이 반영되지 않았다.

 

한 엔터사 관계자는 “앨범 쓰레기를 줄이라고 하는데 기획사도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기존 음원 사이트 집계에도 영향이 있다. 막상 CD를 없애면 팬들의 비판에 직면하는 게 현실이다. 음원 차트나 실적 집계 등 방식을 획기적으로 개선하지 않는다면 당분간 변화는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다현 기자 allhyeon@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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