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책임준공형 토지신탁(책임준공신탁) 사업장에서 준공 기한을 지키지 못한 부동산 신탁회사들이 사업장 리스크를 온전히 떠안을 위기에 처했다. 그간 책임준공신탁은 신탁사가 자체 자금을 투입하는 대신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장 신용을 보강하는 형태로 리스크가 적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최근 시공사가 제때 공사를 마무리짓지 못하는 현장이 늘면서, 신탁사가 사업장 PF대출뿐만 아니라 수분양자 위약금과 미분양 리스크까지 짊어지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다.
책임준공확약은 건설사업 시공사가 천재지변 등 불가항력이 없는 경우 정해진 기간에 공사를 완료하고, 미이행 시 시행사 채무를 인수하겠다는 약속을 말한다. 통상 신용이나 담보물이 부족한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 시행사가 PF 대출을 일으킬 때 신용을 보강하는 방식으로 사용된다. 책임준공신탁은 시공사가 앞선 책임준공확약을 이행하지 못하는 경우 신탁사가 이를 대신 이행하는 신탁 상품이다. 시공사 신용마저 부실한 PF 사업장에 신탁사가 재차 신용을 보강하는 구조다.
#수분양자는 분양계약 해지, 위약금 청구
신탁업계에 따르면 교보자산신탁은 지난 3일 부산 기장군 기장역유림노르웨이숲센트럴 아파트 수분양자 18명이 제기한 위약금 청구 소송에서 패소했다. 수분양자들은 책임준공신탁 수탁자로 사업에 참여한 교보자산신탁이 아파트 책임준공기한을 지키지 못했다며 지난해 6월 계약해지를 통보하고 위약금 소송을 냈다. 이들이 계약한 아파트는 총 16세대로 분양대금은 67억 4000만 원, 위약금은 6억 7000만 원(세대당 4000만 원) 수준이다. 현재 이 아파트에서는 책임준공 미이행을 이유로 50여 세대가 분양계약을 해지해 30억 원가량의 위약금이 발생한 것으로 파악된다.
기장역유림노르웨이숲센트럴은 부산 기장군 기장역 인근에 지상 최고 26층 2개 동(219세대)으로 지어진 아파트다. 아파트 건설 사업 시행사인 우경개발은 수탁자인 교보자산신탁, 시공사인 대우조선해양건설, 대출금융기관들과 함께 책임준공신탁 계약을 맺고 PF 대출을 받아 사업을 추진했다. 이 계약에서 시공사는 대출실행일로부터 31개월까지 아파트를 준공하기로 약속했지만 이를 지키지 못했다. 책임준공 의무를 떠안은 교보자산신탁도 6개월 연장된 책임준공기한을 맞추지 못했다. 결국 책임준공기한을 약 1년 4개월 넘긴 끝에 최근에서야 아파트가 준공됐다.
교보자산신탁 관계자는 “기존 시공사가 추가 공사비를 지속적으로 요구했는데, 회사가 이를 수용하지 않자 공사가 중단됐다. 결국 책임준공기한을 지키지 못했지만 이후 시공사를 변경해 공사를 마무리지었다”며 “책임준공확약 미이행에 따라 계약을 해지한 수분양자에게는 분양계약에서 정한 지연 이자를 반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남은 PF 대출은 170억 원 수준으로 오는 11월 만기가 도래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신탁사가 수분양자 위약금은 물론 대주단 PF 대출과 향후 미분양 물건까지 떠안게 될 위험에 처한 셈이다.
#대주단은 대출 원리금과 지연이자 상환 요구
부동산신탁회사가 시공사 책임준공 미이행으로 책임준공신탁 현장 빚을 떠안는 경우도 나타난다. 앞서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지난 5월 책임준공신탁 방식으로 진행된 경기 평택시 물류센터 신축 사업 PF 대주단이 신한자산신탁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법원은 책임준공기한을 지키지 못한 신한자산신탁이 새마을금고에 PF 대출 원리금 256억 원 전액과 연체 이자를 지급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책임준공 의무를 이행하지 못한 신탁사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판결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사업은 경기 평택시 청북읍 어연리에 지상 3층(연면적 1만 8589㎡) 규모 창고시설을 짓는 내용이다. 시행사는 수탁자인 신한자산신탁과 시공사, 대주단과 책임준공신탁 계약을 맺고 총 300억 원 규모인 PF 대출을 실행했다. 시공사는 대출실행일로부터 16개월 이내 건물을 준공하기로 계약했다. 신한자산신탁은 시공사가 제때 준공을 못 하면 기존 책임준공기한에서 6개월 연장된 시한까지 공사를 마무리짓겠다고 했다. 이 기한조차 넘길 경우 대주단에게는 손해를 배상하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양사 모두 책임준공기한을 맞추지 못했다.
신한자산신탁 관계자는 “공사비 증액을 둘러싼 기존 시공사와의 분쟁으로 공사가 지연되면서 책임준공기한을 맞추지 못했다. 현재는 대체 시공사를 투입해 공사를 마무리한 상황”이라며 “PF 대출은 이자가 쌓이는 상황이기 때문에 일단 대지급으로 상환했다. 진행 중인 대주단과의 소송 결과에 따라 지급한 대금 일부나 전부를 돌려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관련 소송은 1심에서 주장한 내용과 같은 취지로 항소했다”고 전했다.
최근 책임준공신탁 사업장에서 신탁사가 책임준공 의무를 이행하지 못하는 사업장이 속출하고 있다. 앞선 사례처럼 공사비 인상 문제로 시공사가 시행사와 갈등을 빚다가 공사가 지연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KB부동산신탁, 교보자산신탁, 한국투자부동산신탁, 대신자산신탁, 한국토지신탁, 대한토지신탁, 코람코자산신탁 등 7개사 책임준공신탁 사업장 142곳 중 43곳(21%)이 책임준공기한을 지키지 못했다. 이들 사업장의 PF 잔액은 1조 6128억 원으로 추산된다.
신탁업계 관계자는 “책임준공신탁은 부동산 호황기이던 2020년대 초반부터 금융계열 신탁사를 중심으로 규모를 키웠다.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자체 자금 투입을 꺼리던 신탁사들이 PF 사업장에 신용만 제공하는 책임준공형에 뛰어들었다”며 “아파트든 아니든 분양만 하면 완판이 되던 시기가 저물고 금리와 원자재 가격이 오르면서 공사비 갈등으로 준공이 늦어지는 현장이 속출한다. 신탁사가 책임준공을 이행하지 못해 리스크를 떠안게 되는 현장도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고 전했다.
차형조
기자
cha6919@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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