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태광산업이 애경산업 인수 등 대규모 투자를 추진하고 있다. 태광산업은 투자금 조달을 위해 교환사채(EB) 발행을 추진했으나 주주들의 반대로 잠정 중단된 상태다. 자금을 조달하지 못하면 투자 계획도 차질을 빚을 전망이다. 태광산업이 끝내 자금 조달에 실패하면 애경산업 인수를 포기할 것이라는 예상도 일각에서 나온다.

태광산업은 7월 2일 “화장품, 에너지, 부동산개발 관련 기업의 인수와 설립을 위해 약 1조 5000억 원을 투자할 계획”이라며 “석유화학·섬유 업황 악화로 사업구조 재편 및 성장동력 확보 위한 기업 인수·설립 추진과 석유·섬유 산업의 경쟁력 확보를 위한 것”이라고 공시했다.
태광산업이 언급한 기업 인수는 애경산업 인수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태광산업은 이미 애경산업 인수 예비입찰에서 적격 인수 예비후보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현금이다. 태광산업이 현재 집행할 수 있는 투자금은 1조 원 미만으로 알려졌다. 공시에 밝힌 1조 5000억 원 규모 투자를 위해서는 외부에서 자금을 조달해야 한다.
태광산업은 6월 27일 3186억 원 규모의 교환사채를 발행한다고 공시했다. 교환사채란 기업이 보유한 다른 회사 주식과 교환할 수 있는 권리가 부여된 채권이다. 태광산업이 발행하려던 교환사채는 태광산업 자사주 24.41%가 교환 대상이다.
태광산업 관계자는 “내년까지 집행할 투자 규모가 현재 보유한 투자가용자금을 크게 초과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사업구조 재편을 통한 기업가치 제고를 위해서는 ‘올인’ 수준의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태광산업 2대 주주인 트러스톤자산운용이 교환사채 발행을 반대했다. 트러스톤자산운용은 6월 30일 법원에 교환사채 발행을 반대하는 내용의 가처분을 신청했다. 트러스톤자산운용은 “태광산업이 보유 자사주 전량을 기초로 교환사채를 발행하기로 한 결정은 주주가치 훼손은 물론 소수주주권을 보호하겠다는 신정부의 정책에도 정면으로 배치되는 만큼 가처분 소송 등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금융당국도 태광산업의 교환사채 발행에 제동을 걸었다. 금융감독원(금감원)은 태광산업 교환사채 발행과 관련해 정정보고서를 요청했다. 금감원은 “제출된 주요사항보고서에 대한 심사결과 신고서의 내용 중 발행 상대방 등에 대한 중요한 누락이 있어 정정명령을 부과했다”고 설명했다.
태광산업은 논란이 불거지자 교환사채 발행 작업을 잠정 중단했다. 시장에서 추정하는 애경산업의 매각가는 6000억~7000억 원 수준이다. 태광산업이 교환사채를 발행하지 않더라도 인수가 불가능한 수준은 아니다. 그러나 태광산업의 투자 계획에는 애경산업만 있는 것이 아니다. 태광산업은 석유화학 및 섬유 부문에 약 5000억 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또 사업구조 재편 및 중단 공장 시설 철거, 인력 재배치 등에 상당한 자금을 투입할 예정이다.
태광산업 관계자는 “트러스톤자산운용 측의 가처분 신청에 대한 법원의 결정을 존중할 계획”이라며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교환사채 발행 여부 등 향후 의사 결정에 이를 반영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교환사채 발행을 포기하면 회사채 발행, 유상증자, 금융권 대출 등을 통한 자금 조달이 가능하다. 그러나 태광산업은 예전부터 무차입 경영을 기조로 삼고 있다. 비단 경영 기조가 아니더라도 최근 금리 상황과 석유화학업계의 불황 등을 고려하면 차입은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사실 태광산업 입장에서 자사주를 대상으로 한 교환사채 발행은 금리 부담 없이 손쉽게 자금을 마련할 수 있는 방법이다.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과 특수관계자는 태광산업 지분 54.53%를 갖고 있다. 자사주가 제3자에게 넘어가더라도 이호진 전 회장의 지배력에는 큰 문제가 없다. 그러나 이 경우 다른 주주들의 지분이 희석되는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지만 제3자에게 넘어가면 의결권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상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 상법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하는 것이다. 상법 개정안은 7월 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상태다. 이런 분위기에서 태광산업이 주주들의 의견을 무시한 채 교환사채 발행 작업을 진행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고 투자를 미루기도 어렵다. 태광산업은 2022년 12월 신사업 육성 및 공장 설비 개선 등에 10조 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2년 6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이렇다 할 투자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10조 원 투자 계획은 거짓말이었다고 의심하는 시각도 나온다. 이번에도 투자를 미루면 태광산업에 대한 비판이 가중될 수 있다.
태광산업의 현 상황을 감안했을 때 외부에서 자금을 조달하지 못하면 투자 계획을 조정할 가능성이 높다. 거론되는 방안 중 하나는 애경산업 인수를 포기하는 것이다. 애경산업의 가치가 생각보다 크지 않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애경산업의 최근 실적은 하락세를 보였다. 매출은 지난해 1분기 1691억 원에서 올해 1분기 1511억 원으로 10.66% 감소했고,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165억 원에서 60억 원으로 63.45% 줄었다.
향후 전망도 긍정적이지 않다. 한유정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애경산업에 대해 “내수는 소비 부진, 중국은 재고 이연으로 2024년 하반기부터 큰 폭의 감익이 이어지고 있다”며 “중국 외 해외 시장에서는 성장하고 있으나 아직 규모가 작아 내수 및 중국 부진을 상쇄하지 못한다”고 평가했다.
태광산업과 애경산업의 시너지 효과도 불확실하다는 평가다. 애경산업의 주요 사업은 화장품과 생활용품의 제조·판매다. 석유화학 업체인 태광산업과 사업적으로 크게 연관성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시너지 효과는 기대해볼 만하다는 의견도 있다. 태광그룹 계열사인 티알엔은 홈쇼핑 채널 ‘쇼핑엔티’를 운영하고 있다. 홈쇼핑에서 애경산업 제품을 판매하면 시너지 효과를 볼 수 있다는 분석이다.
앞서의 태광산업 관계자는 “교환사채 발행이 무산될 경우 애경산업 인수에 필요한 자금 조달에 상당한 애로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일단 법원의 가처분 결정을 보고 나서 추후 자금 조달 계획이나 애경산업 인수 전략을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형민 기자
godyo@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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