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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춘욱 경제팩트] 당장 효과 있는 인기 정책만 시행해서 선진국이 될 수 있을까

최근 가계동향조사 비공개 유감…'라이프 프로젝트' 영국 코호트 연구 성과와 '대비'

2017.10.30(Mon) 11:37:46

[비즈한국] 한국 가계의 소득과 지출 동향을 보여주는 ‘가계동향조사’가 2016년 4분기를 끝으로 공개되지 않고 있다. 물론 대략의 사정은 이해가 된다. 일단 2010년부터 가계금융조사가 발표되면서 필요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을 수도 있다. 또한 민감한 ‘소득 분배지표’가 엇갈리는 것도 문제가 되었으리라 짐작된다. 

 

사진=통계청 홈페이지 캡처


그럼에도 불구하고 1963년부터 이어져 오던 가계동향조사가 사실상 중단된 것은 매우 뼈아픈 손실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어떤 특정 집단을 대상으로 장기간에 걸쳐 이어진 설문조사는 매우 귀한 정보를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그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바로 영국의 역사적인 출생 코호트 연구다. 

 

최근 발간된 흥미로운 책 ‘라이프 프로젝트’는 잘 설계된 출생 코호트 연구가 어떤 어마어마한 성취를 가져다 줄 수 있는지 실감나게 보여준다. 일단 본격적으로 이 책을 소개하기에 앞서, 코호트가 무엇인지부터 살펴보자. 

 

코호트(Cohort)란 공통점을 지닌 사람들의 집단을 의미한다. (중략) 더글러스는 1946년 산모 조사를 실시하면서 사실상 출생 코호트, 즉 같은 시기에 태어난 사람들의 집단을 파악하고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원래는 그들에 대한 정보를 딱 한번만 수집할 생각이었다. 과학자들은 이런 유형의 연구를 횡단연구(Cross-sectional Study)라고 부른다. 어느 한때의 일부 인구에 대한 정보를 포착하기 때문이다. 일단의 사람들을 어느 한 순간 정지된 상태의 모습으로 보여주니, 스냅 사진과 같다고 볼 수 있다. 

 

코호트 연구는 질병이나 사망 등의 발생률을 파악하기 위해 한 집단을 오랫동안 추적한다는 점에서 표본조사와 다르다. 출생 코호트 연구에서 대상 집단은 모두가 거의 같은 시기에 태어난다. 하지만 출생 시기가 아닌 다른 특성들, 이를테면 사는 지역이나 직업 유형, 행동 방식을 기준으로 삼아 코호트를 정할 수도 있다. 이처럼 장기간 이어지는 코호트 연구를 종단연구(Longitudinal Study)라고도 한다(책 42~43쪽).

 

특히 1946년 코호트는 역사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런던정경대의 제임스 더글러스 박사 등이 주도한 이 연구는 1946년 3월 첫 주에 태어난 1만 7000명의 출생 정보를 기록하고, 그 뒤에도 5362명을 평생 추적했다. 1946년 코호트 연구가 밝혀낸 새로운 사실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1952년 런던 스모그 사건이 건강에 미친 영향에 대한 것이다. 

 

더글러스의 아기들(1946년 조사 대상자)이 6살 반이었던 1952년 12월의 어느 금요일, 런던 사람들은 유독한 안개 때문에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중략) 그날은 보통 때와 달랐다. 살을 에는 듯 추운 날이라 모든 집이 석탄불을 때며 굴뚝으로 연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날씨 탓에 그 연기는 흩어지지 않았고, 공장의 독성 폐기물과 마침 유럽 대륙에서 불어오고 있던 공해 구름이 한데 뒤섞였다. (중략) 나흘 후 안개가 겨우 걷힐 때까지 런던은 엄청난 타격을 입었다. 1만 2000여 명이 안개로 사망하고, 더 많은 사람이 호흡곤란을 겪은 것으로 추산된다(책 102~103쪽).

 

1946년 코호트 연구가 밝혀낸 새로운 사실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1952년 런던 스모그 사건이 건강에 미친 영향에 대한 것이다.


지구과학 관련된 책에 필수적으로 실리는 역사적 사건, 런던 스모그는 이후 환경오염에 대한 정부의 대책을 촉발시키는 계기로 작용했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증이 제기된다. 환경오염의 충격은 평생 지속되는가, 아니면 대기오염이 완화되면 금방 회복되는가. 이 질문에 1946년 코호트가 답을 내놓았다. 

 

마침 더글러스는 그 문제를 독특한 방법으로 파고들 수 있었다. 1946년 코호트의 아이들 수천 명은 대기 오염 방지법(1956년 제정)이 만들어지기 전 10년 동안 오염된 공기를 마시며 살았고, 더글러스는 이미 그들의 호흡기 건강 상태를 꼼꼼하게 기록해놓았다. (중략) 더글러스는 세계 2차 대전 직후 연료가 아직 배급을 통해 공급되던 시절에 지역 연료 감독관들이 석탄 분배량을 기록해 둔 문서를 수집할 수 있었다. 더글러스는 그 기록을 이용하여 최고 오염 지역에서부터 최저 오염 지역까지 네 범주로 나누었다. 그런 다음 코호트 아이들의 주소를 그 지역 오염도와 아이들의 15세까지의 건강 기록과 맞춰 보았다. 

 

1966년 그가 발표한 결과는 깨끗해진 런던 하늘만큼이나 투명한 패턴을 나타냈다. 최고 오염지역에서 자란 아이들은 기침이 잦았고, 기관지염과 폐렴 같은 하기도 감염에 걸릴 확률이 상당히 높았다. (중략) 이번만은 사회적 지위와 상관없었다. 노동계급이든 중간계급이든 상관없이 오염 지역에 산다면 똑같이 영향을 받았다. (중략) 가장 놀라운 일은 새로운 법이 제정된 이후, 즉 아이들이 10살이 된 이후부터는 대기오염이 급격히 개선되었는데도 건강의 문제가 15세까지 지속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어릴 때 오염에 노출되면 폐에 영구적인 손상을 입을 수 있음을 암시한다(책 102~103쪽).

 

이제는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어릴 때 심각한 공해에 노출되면 평생 이 악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알 수 없었다. 1952년 런던 스모그뿐만 아니라, 각종 교육제도의 개편이나 정부의 복지정책 시행이 인간의 생애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연구 등이 1946년 코호트 때문에 가능했다. 

 

그런데, 왜 한국 정부는 1963년부터 작성하던 귀한 통계 가계동향조사를 없애는 걸까. 그 이유는 비용도 비용이지만, 그 돈을 지출한 사람들이 성과를 확인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출생 코호트 연구의 경우 규모가 크고 비용도 많이 드는 데다, 주요한 결과물을 내기까지 수년, 수십 년, 심지어는 평생이 걸릴 수도 있기 때문에 과학자들과 자금 제공자들은 이런 현실적인 문제를 무시할 수 없다. 4~5년의 임기 동안 어떻게든 가시적인 결과를 내려고 하는 정치인들과 정책 입안자들에게는 비용과 시간이 큰 장벽이다. 그들의 시각에서 보자면 출생 코호트는 고비용·고위험에다 시간도 너무 오래 결려서, 설사 기적적으로 자금을 따낸다 해도 실제로는 한 푼도 만지지 못할 도박이나 마찬가지다(책 161쪽).

 

즉각적인 효과를 볼 수 있는 정책(혹은 사업)에만 돈이 집중되고, 시간이 많이 흘러야만 효과를 볼 수 있는 정책은 관심에서 벗어나는 일은 어디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영국은 그 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1946년 코호트부터 시작해 5개의 코호트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이게 바로 한국이 과학 분야의 노벨상을 단 하나도 받지 못하는 이유가 아닐까?

홍춘욱 이코노미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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