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이재명 대통령이 싱가포르와 필리핀을 방문한다. 이번 순방을 계기로 그동안 중국에 절대적으로 의존했던 핵심 광물 공급망을 다변화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될지 주목된다. 특히 세계 니켈 생산 중심지 중 한 곳인 필리핀과의 협력은 우리 기업들이 직면한 ‘니켈 안보’ 위기를 타개할 열쇠로 부상하고 있다.
#이 대통령, 경제·안보 외교 본격화
27일 청와대는 이 대통령이 오는 3월 1일부터 3월 4일까지 싱가포르와 필리핀을 국빈 방문한다고 밝혔다. 3월 1일부터 3일까지 싱가포르에서 로렌스 웡 싱가포르 총리와 정상회담 및 친교 오찬, 타르만 샨무가라트남 싱가포르 대통령과 면담 및 국빈 만찬 등의 일정이 예정됐다.
양국이 공동으로 개최하는 ‘AI 커넥트 서밋’에도 참석한다. 한국과 싱가포르는 지난해 수교 50주년을 기점으로 수립된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토대로 AI와 원전 등 미래 유망 분야로 협력의 외연을 확대할 계획이다.
3월 3일부터 4일까지는 필리핀 마닐라를 국빈 방문한다. 정상회담이 개최되는 3월 3일은 한-필리핀 수교 77주년을 맞이하는 날로 의미가 깊다. 이번 방문에서 양국은 방산, 인프라 등 기존 협력을 심화하는 동시에 핵심 광물과 AI 분야에서 실질적인 성과를 도출할 것으로 기대된다.
#‘니켈 산업 핵심’ 필리핀, 한국 공급망 다변화에 필요
필리핀은 전 세계 니켈 공급망에서 인도네시아와 함께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미국지질조사국(USGS) 등에 따르면 필리핀의 니켈 매장량은 세계 5~6위권이며, 아시아에서는 인도네시아에 이어 두 번째로 크다. 2024년 말 기준 상업적 채굴이 확인된 니켈 매장량은 6억 1298만 DMT(Dry Metric Ton, 건조톤)에 달한다. 전년 대비 약 28.6% 증가한 수치다.
글로벌 시장 환경은 필리핀의 가치를 더욱 높이고 있다. 전기차와 에너지저장장치(ESS) 시장의 급성장으로 고순도 배터리용 니켈 수요는 향후 10년간 연평균 20% 이상 증가할 전망이다. 니켈은 하이니켈 배터리 비중의 60~80%를 차지하며 ‘전기차 시대의 석유’로 불린다. 미국과 EU 등이 IRA(인플레이션 감축법)와 CRMA(중요원자재법)를 통해 중국 의존도를 낮추려 하면서 필리핀의 전략적 입지는 더욱 공고해졌다.
현재 한국의 니켈 안보 상황은 낙관적이지 않다. 니켈 산화물과 수산화물의 대중국 수입 의존도는 사실상 100%에 육박하며, 황산니켈 역시 68% 이상을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공급망 분절 시 국내 배터리 산업의 취약성이 매우 높은 구조다. 따라서 이 대통령의 순방을 계기로 필리핀과 핵심 광물 협력을 강화하는 것은 국가 안보 차원의 전략적 대응이라 할 수 있다.
#필리핀 원광 수출 제한 논의가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
필리핀 니켈 산업은 현재 중요한 전환점에 서 있다. 필리핀 상원은 2025년 초, 금속광 원광의 수출을 단계적으로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을 통과시켰다. 비록 산업계의 우려를 반영해 최종 법률(공화국법 제12253호)에서는 직접적인 수출 금지 조항이 제외되었으나, 광산별 이익률에 연동된 단계형 로열티와 초과이익세 부과 등 강화된 재정 규율이 도입됐다.
이는 필리핀 정부가 단순 채굴과 원광 수출 중심의 구조에서 벗어나, 현지 제련 및 정련을 통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쪽으로 산업을 개편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특히 저품위 리모나이트 광석을 활용해 니켈 중간재(MHP)를 생산하는 고압산 침출(HPAL) 공정이 산업 전환의 핵심 기술로 부각된다. 현재는 니켈 수출에서 원광 비중이 여전히 절대적이지만, 필리핀 정부는 세제 혜택 등을 통해 HPAL 기반의 제련 시설 확충을 적극적으로 독려하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은 필리핀 니켈 산업의 구조적 변화를 선점하려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중국의 저장화유코발트는 필리핀 기업과 HPAL 제련 플랜트 건립을 위해 협력 추진 중이며, 일본 스미토모 금속광업은 필리핀 내 기존 제련소 지분을 확대하며 원료 확보를 강화하고 있다.
반면 한국 기업들의 현지 진출은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거나 경제성 문제로 인해 사업이 중단됐다. 포스코그룹이 2023년 추진한 필리핀 니켈 합작 사업은 경제성 및 리스크 요인으로 철회됐다. 현재는 제이스코홀딩스 등 일부 민간 기업이 광산 개발을 타진하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필리핀의 원광 수출 제한 논의가 규제 검토 수준을 넘어 글로벌 니켈 공급망의 구조적 변화를 불러올 수 있다고 짚는다.
형민혁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마닐라무역관은 ‘필리핀 니켈 산업, 원광 중심 구조의 전환 압력, 글로벌 공급망 재편의 분기점’ 보고서에서 “글로벌 공급망의 다변화 압력이 커지는 만큼 필리핀의 정책·투자 방향은 중장기적으로 한국을 포함한 주요 수요국의 조달 전략 변화와 직결될 전망이다”며 “향후 HPAL·NPI(니켈 선철) 프로젝트의 추진 속도가 동북아 배터리 공급망 안정성을 가늠하는 핵심 지표로 부상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김민호 기자
goldmino@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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