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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림 뉴욕 한식다반사] '반찬 타파스'의 발칙함, 아토보이

42달러에 3가지 고르는 '타파스' 스타일…훈장질 없는 뉴욕의 자유 만끽

2018.07.23(Mon) 05:00:50

[비즈한국]​ 2018년, 지금은 뉴욕의 한식이 그 어느 때보다도 가장 재미있는 시기이다. ‘미식의 격전지’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국제도시 뉴욕에 매우 천천히, 그러나 자연스럽게 물들어간 한식은 이제 비로소 하나의 장르로 탄생하며 바야흐로 세 번째 세대를 시작했고, 그 물결은 거세다. ‘사업’이 아닌 현상으로서의 한식.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 지난 5~6월 뉴욕에 체류하며 한식과 한식 요리사들을 만나고 맛보며 이모저모를 관찰한 기록, ‘이해림의 뉴욕 한식다반사’를 연재한다.

 

뉴욕의 한식을 만나며 여러 번의 충격을, 여러 의미로 받았다. 가장 큰 충격 중 하나가 맨해튼 노마드 지역에 있는 아토보이(Atoboy)의 한식이었다. 그리고 아토보이가 처음 받았던 ‘한식의 충격’이었던 점은 이번 취재 여행을 돌아봤을 때 마침 알맞은 시작이었다.

 

한마디로 말해, 그것은 이전에 알던 한식이 아니었다. 아토보이의 음식은 차라리 아시아였고, 뉴욕이었고, 세계였다. 동시에 그것은 확고한 한식이기도 했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요리사가, 한식으로 소개하며 만들어 내는 음식이었으니 한식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특히 한식이 단지 새로운 음식이며 따라서 고정관념도 전무한 뉴요커들과 세계 각지에서 온 관광객들에겐.

 

요즘 뉴욕에서 한식 캐릭터로 인기를 구가 중인 식당들의 공통점은 한국인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 않는다는 점이다. 내가 찾은 날의 디너에도 역시 한국인 손님은 적었다. 대다수가 뉴욕에 거주 중인 현지인 또는 관광객, 체류자들로 보였고 모두가 즐거운 표정이었다. 아토보이의 시간과 그 음식을, 분명 즐기고 있었다.

 

고추장과 통깨가 들어가 감자탕을 연상케 하는 아토보이의 양고기 스튜. 사진=이해림 제공

 

캐주얼한 스타일의 아토보이는 42달러(약 4만 7700원)라는 부담 없는 가격에 15가지 요리 중 3가지를 골라 먹도록 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현지 미디어는 ‘코리안 타파스’라는 표현으로, 한식의 ‘반찬’을 모티프 삼아 소개하기도 한다. 반찬이라는 표현이 소환된 것은 흰 쌀밥이 기본으로 딸려 나오기 때문이다. 표고버섯과 다시마로 감칠맛을 낸 버섯밥을 선택할 수도 있다. 세 접시의 반찬과 함께 충분한 양이 되도록 잘 설계돼있다. 

 

‘뉴욕타임스’ 푸드 라이터인 피트 웰스(Pete Wells)는 한국 식당의 반찬 문화 팬이기도 한데, 아토보이를 세 번 찾은 후 쓴 리뷰에서 “반찬 콘셉트를 기본으로, 매우 스마트하고 놀라운 음식을 낸다”고 평했다. 참고로 뉴욕에서 ‘뉴욕타임스’가 리뷰를 쓰는 식당이 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며, 오픈 후 10개월 만에 리뷰를 ‘받은’ 것은 매우 빠른 편이다. 

 

뉴욕에 거주 중인 푸드 라이터 신현호 씨(부업은 맨해튼의 직장인), 역시 뉴욕에 살고 있는 칼럼니스트 홍수경 씨가 동석한 덕분에 셋이서 아홉 가지 다양한 ‘반찬 타파스’를 맛볼 수 있었다.

 

같지만 다른 아토보이의 깍두기. 사진=이해림 제공

 

우선 박정현 셰프가 안내해준 프렙 키친(메인 주방과 별도로 재료 밑손질 등을 하는 주방)과 워크인(냉장 시설을 해놓은 재료 저장고) 풍경부터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뉴욕에는 이미 거의 모든 한식 식재료가 유통되고 있는데, 분명 빠진 것들이 있긴 하다. 

 

한식 외의 유사 재료도 충분히 공급된다. 즉 요리사는 질이 그다지 좋지 않은 멸치액젓 대신 고급 피시소스를 선택할 수 있다. 둘 다 생선의 단백질을 염장해 발효시킨 것이기에 요소를 해체하고 재조립하는 데에 익숙한 요즘 요리사들에겐 낯선 대체품이 아니다. 

 

영업 기밀일까 싶어 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의 주방에 있는 것들이 그런 식이었다. 꽉 채워진 재료와 발효, 숙성 중인 밑반찬들이 인상적이고도 성공적으로 재조립돼있었다.

 

백김치 슬러시를 곁들인 방어 요리. 사진=이해림 제공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이 대표적으로 아토보이의 김치다. 푸르고 단단한 토마토를 사용한 피시소스 깍두기! 향과 맛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발효의 진한 감칠맛과 매콤한 마무리. 깍두기가 가진 맛의 구성을 색다르게 재현한다. 밑반찬에서 이미 캐릭터가 충분히 표현된다. 

 

메인이 되는 음식들 역시 같은 맥으로 자유로운 변주를 통해 완성했다. 백김치 국물을 슬러시 얼음으로 만들어 곁들인 물회풍 방어, 통깨로 감자탕의 맛을 낸 양고기 스튜, 한국의 육회와 이탈리아의 비프 타르를 원형으로 또 한 번 변형, 엔초비와 허브로 맛을 낸 비프 타르타르 등 급진적이지만 자유로운 기풍의 한식을 즐길 수 있었다. 

 

이전에 알던 한식과 다르지만 맛이 좋았다. 뉴욕에서, 그리고 모든 문화가 활발하게 교류하는 지금의 세계에서 어떤 음식이 한식인지 아닌지를 더 이상 묻는 것은 무의미하다. 음식이 맛있으면 된 거 아닌가.

 

육회를 변형한 아토보이식 비프 타르타르. 사진=이해림 제공

 

한식에 대한 참견과 훈장질이 없는, 거의 완전히 자유로운 환경에서 창의하며 한식을 한다는 것. 동떨어진 문화권에서 자유를 얻은 한식의 약진 또한 응원한다. 이른바 모던 한식이라는 분류로 묶일 텐데, 뉴욕의 모던 한식은 서울의 모던 한식과 지향이 달라서 자극된다. 서로 다른 소구층을 공략하기에 가능한 제각각의 발전 방향을 갖고 있다.

 

특히 창의적인 작업을 즐기는 요리사들에겐 서울보다는 뉴욕이 정말 신나는 도전이 가능한 배경일 터. 손닿는 건 다 거리낌 없이 써먹을 수 있다! 아무도 참견하거나 야단치지 않는다! 순정하게 음식으로서만 판단해준다! 음식의 언어는 근본이 아닌 맛이 우선이다. 새로운 맛을 탐닉하는 먹보로서도 뉴욕의 한식이 매우 재미있다. 박정현 셰프에게도 분명 재미있는 창의의 장일 것이다.

 

필자 이해림은? 패션 잡지 피처 에디터로 오래 일하다 탐식 적성을 살려 전업했다. 2015년부터 전업 푸드 라이터로 ‘한국일보’ 등 각종 매체에 글을 싣고 있다. 몇 권의 책을 준비 중이며, ‘수요미식회’ 자문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페이스북 페이지에서도 먹는 이야기를 두런두런 하고 있으며, 크고 작은 음식 관련 행사, 콘텐츠 기획과 강연도 부지런히 하고 있다. 퇴근 후에는 먹으면서 먹는 얘기하는 먹보들과의 술자리를 즐긴다.​  

이해림 푸드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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