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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림 탐식다반사] '고독한 미식가 한국편'을 음미하다

일본인의 거울에 비친 한식의 맛…종점숯불갈비 촬영 현장 직접 지켜봐

2018.06.18(Mon) 12:48:06

[비즈한국] 이노가시라 고로 씨가 한국에 출장을 왔다. 성시경 씨의 회사에서 그를 불러들였다. 박정아 씨와 전주로 출장을 가서 지우산 장인을 만나고, 남부시장에서 고가구와 베개를 둘러봤다. 이튿날엔 서울에서 짧은 업무를 보고, 밝은 낮에 일본으로 돌아갔다.

 

일본 TV도쿄에서 방송 중인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의 설정이다. 지지난주, 지난주에 걸쳐 방송됐다. 시즌7까지 인기리에 달려오고 있는 이 드라마의 9화, 10화가 각각 전주와 서울을 배경으로 방송됐다. 드라마 팀은 지난 5월 7일부터 11일까지 한국에 머무르며 촬영을 진행했는데, 이미 드라마 팬들의 실시간 목격담과 사진을 통해 크게 화제가 됐다.

 

나 역시 원작 만화의 엇박자 감성, 그리고 “나는 개처럼 먹을 것을 밝힌다”라는 명대사를 열렬히 지지하는 팬의 한 사람이다. 한국의 채널J에서 방송 중인 드라마 역시 기회 될 때마다 채널을 고정하고 있다. 그리고 촬영지로 선정된 식당 중 한 곳이 마침 단골이다 보니 마치 축제 같은 5월을 보냈다.

 

고독한미식가 시즌7 10화에서 고로 씨가 찾은 종점숯불갈비. 방송 촬영 소식이 알려지기 전에 서둘러 칼럼에서 다뤘다. 사진=도라마코리아 캡처

 

드라마 설정에서 고로 씨가 한국에 머무른 일정은 1박 2일. 이론상 점심, 저녁, 아침, 점심 식사가 가능하다. 드라마에선 분량상 세 끼만 먹었다. 9화의 전주 편에선 ‘토방’이라는 식당이, 10화의 서울 편에선 무명의 분식 포장마차와 ‘종점숯불갈비’가 등장했다. 

 

사실 외국 드라마가 한국을, 특히 음식을 다루면 얼마나 어떻게 다룰까…. 마블 영화에서 묘사된 한국처럼 낯설고 어색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 아닌 걱정이 있었다. 동시에 기대가 되기도 했다. 낯설고 어색하게 한국 음식을 바라봤을 때 한식이 얼마나 어떻게 다르게 보일지가 궁금했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우리의 눈에 비친 한식이 가상의 ‘한국인 거울’을 통한 것이라면, ‘일본인 거울’을 통해 봤을 때는 어떤 모습으로 비치는지 우리가 놓치고 있던 신선한 관점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오히려 그 이방의 거울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고 말이다.

 

드라마 제작진의 입장에서도 딜레마가 있었을 것이다. ‘우호적인’(한국엔 정말이지 ‘고독한 미식가’ 팬이 많다!) 이웃나라의 음식을 그들이 다 아는 것처럼 능숙하게 다뤄야 할지, 잘 모르는 그대로인 채 다만 즐겨야 할지에 대해 분명 어떤 의사결정이 있었을 것이다(전자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충분한 취재와 전문가 조언을 통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다. 보통의 매체가 다루는 이국은 전자의 관점을 취할 때가 더 많다).

 

시즌7 시작에 앞서 예고편에서 해외 출장 소식이 소개되며 드라마 팬들 사이에서 한국 촬영 가능성이 미리 점쳐지기도 했다. 사진=도라마코리아 캡처

 

방송이 나오자, 딜레마에 대한 답은 겸허한 후자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드라마라서 부담 없이 모르면 모르는 대로 정직하게 부딪혀도 되는 일이다. 일본인이 한국에서 겪을 수 있는 상황을 하이퍼 리얼리즘으로 그려냈다. 한글은 읽을 수 없고,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달랑 두 마디 말으로 맨땅에 헤딩하듯 한국에 뚝 떨어진 고로 씨였다.

 

일본에서 한국 음식은 어느 정도 기반이 닦여 있지만, 그 경험은 어디까지나 일본에 맞춘 한식이 아니던가. 고로 씨의 한국, 한식 경험은 모든 것이 처음이었다. 맨몸으로 진검승부를 하는 정도의 모양새다. 한식을 왜곡 없이 읽어낼 고로 씨의 먹방이다.

 

전주의 토방에서 고로 씨가 고른 것은 안전한 선택, 가장 싼 6000원짜리 가정식 백반. 한글을 읽지 못해 가격만 보고 싼 것을 일단 골랐다. 한국의 절대다수 식당은 외국인 손님을 받을 언어적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특히나 ‘고독한 미식가’ 취향의 서민적이고 은둔적인 식당은.

 

반찬은 무료라는 개념이 거의 없는 일본 외식 문화에 비추어 보면 한국 외식 문화는 파격 그 자체다. 사진=도라마코리아 캡처

 

전주의 모든 백반집이 그러하듯 반찬이 쫙 깔리고 청국장 한 뚝배기에 제육볶음에 밥 한 공기. 상다리가 휘어졌다. 고로 씨에게는 포크와 나이프가 6개씩 깔리는 프렌치 레스토랑에 처음 간 것만큼이나 당황스러운 광경이었을 터, 그래도 인간에겐 직감이 있다. 반찬을 인지하고 밥을 인지하고, 국과 메인 고기반찬을 인지할 수 있었다. 제육볶음과 밥을 맛깔나게 먹으려는 찰나, 한국인 거울이 등장했다는 점이 내겐 ‘훅’이었다. 

 

반찬의 구성과, 결정적으로 테이블에 놓인 고추장과 참기름, 사발을 보면 한국인은 적당히 고기와 찬을 넣고 청국장을 얹어 석석 비벼 먹으라는 뜻임을 안다. 그 암호를 해독하지 못한 일본인은 단지 찬과 밥으로서 밥상을 대했는데 사실 따로 좀 먹으면 어떤가. 식당 주인이 득달같이 달려와 비빔밥을 제조해야 한다며 방법을 알려주는 데서 TV 화면은 다시 한국인 거울의 반영이 되었다.

 

그러나 말이 통하지 않는 일본인은 셀프 비빔밥을 배우고서도 여전히 일본인 거울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 청국장을 두고는 좀 다르지만 맛있는 ‘낫토국’이라고 하는 점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다큐멘터리나 여행 예능에서 그 지역의 음식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기를 쓰고 ‘우리네 XX’ 하는 식으로 음식 설명을 하곤 한다. 그것이 가장 설명하기 쉬운 방법이고, 딱히 틀린 말도 아니기 때문인데 청국장을 놓고 ‘우리네 낫토국’이라고 설명하는 일본인을 보는 것도 꽤 재미있는 역할 바꾸기 놀이다.

 

아침 식사로 떡볶이와 튀김 그리고 오뎅국물을 맛보는 고로 씨. 사진=도라마코리아 캡처

 

10화에서 전주에 다녀온 이튿날 아침식사로 때운 분식 포장마차에서 오뎅 국물을 마시며 ‘오뎅국’이라고 하는데, 말은 비슷하지만 일본의 오뎅이 자작한 국물을 가진 좀 다른 요리라는 점도 떠올릴 수 있다.

 

종점숯불갈비에선 반찬 무한리필 문화가 일본인 거울에 비친다. 9화와 10화에 걸쳐 고로 씨는 시종 어마어마하게 많은 ‘공짜’ 반찬 수에 놀라며 즐거워하는데, 10화 종점숯불갈비에선 반찬 그릇이 비자 자동으로 다시 채워서 가져다주는 한국적 서비스를 생경하게 바라봤다. 일본인 거울이 콕 집어 부각시켜 보여준 문화다.

 

같은 쌀 주식 문화를 가진 일본의 밥 먹는 방식은 우리와 사뭇 다르다. 이제까지 ‘고독한 미식가’가 일본서 먹었던 상차림은 한국인 거울로 말하자면, 밥과 메인 반찬만 덜렁 나오는 셈이다.

 

돼지갈비를 주문하자 세 가지 김치(묵은지, 부추김치, 쪽파김치)와 고사리나물, 잡채, 콩나물무침, 사과 ‘사라다’, 김무침, 양념게장 등 아홉 가지 반찬에 된장찌개와 상추가 차르르 깔리는 한국의 평범한 밥상.

 

돼지갈비 1인분을 시키고 함께 나오는 반찬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사진=도라마코리아 캡처

 

고로 씨는 먹보의 천당에라도 온 듯 ‘또 다시 채워주기 전에’ 황급히 식당을 나선다. 대체 우리는 왜 다른 반찬이 많이 남았는데도 다 먹은 반찬을 당당히 다시 채워 먹는 문화를 갖고 있는 걸까? 싫어해서 남길 반찬은 왜 물리지 않고 손만 대는 걸까? 남의 거울로 보면 당연하던 것이 까끌까끌 불편해진다.

 

여기부터는 좀 다른 얘기인데, 사실 나는 8일 종점숯불갈비 촬영 현장에 있었다. 물론 종점숯불갈비가 촬영지 중 한 곳으로 선정됐다는 소식을 들은 것도 실은 한참 전부터였다. 팬의 한 사람으로서 ‘부정 탈까 봐’ 가게 사장님 가족보다도 더 쉬쉬했을 뿐이다.

 

실제로 일본 방송 종사자들이 얼마나 조심스러운지도 어찌어찌 알고 있다 보니 더욱더 함구하고 몸을 사렸다. ‘고독한 미식가’에 종점숯불갈비를 소개한 숨은 연결고리이자, 10화에서 술 좋아하는 단골손님으로 비중 있게 카메오 출연한 이명세 감독님과의 인연으로 얼렁뚱땅 그곳에 있게 됐다.

 

고독한 미식가에서는 매번 음식이 나올 때마다 이렇게 설명과 함께 가벼운 평가를 더해 이해를 돕는다. 사진=도라마코리아 캡처

 

협의된 취재 같은 건 아니었고, 하릴없이 구경 갔다, 고 하는 게 정확하다. 그래서 그곳에서 본 드라마의 내밀한 사정에 대해서는 한 자도 글로 옮겨 적지 않는다. 어차피 유명세를 탈 곳이라 감추지 않고 드러내는 의미에서 일찌감치 칼럼을 쓰긴 했지만 말이다.

 

종점숯불갈비에 대해 내가 가진 감정은 ‘리스펙트’, 아니 그 이상의 경애와 애착인데 일본인 거울로 놓고 본 그곳이 어디까지 리스펙트 받을 수 있을지를 조마조마하게 바라봤다. 사장님과 두 아드님이 얼마나 성실하고 정직하게 동네 장사를 해왔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신실한 노력을 ‘수요미식회’나 ‘맛있는 녀석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고독한 미식가’는 알아봐줄지, 마치 수능시험장 밖에서 기도하는 부모 같은 심정으로 방송을 기다렸다.

 

열심히 돼지갈비를 맛보는 고로 씨. 사진=도라마코리아 캡처

 

속이지 않은 돼지갈비와 하나하나 지어 만든 반찬이 화면 속에서 특별한 의미로 그려지고, 무엇보다도 드라마가 끝난 후 에필로그처럼 따라 붙는 ‘불쑥 쿠스미’ 코너에서 2년 이상의 시간을 보내야 비로소 손님상에 올리는 묵은지가 극찬, 극찬을 받을 때 나는 사장님 가족에게 온 마음을 다해 축하를 보냈다. 그곳을 지지하며 많이도 먹어온 나의 먹부림까지 덩달아 축하를 받는 것만 같았다. 

 

종점숯불갈비가 오래도록 그 낡은 동네에서, 감사한 마음으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변함없이 해나가면 좋겠다. 비록, ‘고독한 미식가’ 효과가 잠재워지지 않아 연일 문전성시라 도통 갈 엄두가 나지 않아, 그곳의 돼지갈비와 매운갈비찜, 그리고 그 대단한 묵은지는 상상으로만 먹고 있지만 말이다.​ 

 

필자 이해림은? 패션 잡지 피처 에디터로 오래 일하다 탐식 적성을 살려 전업했다. 2015년부터 전업 푸드 라이터로 ‘한국일보’ 등 각종 매체에 글을 싣고 있다. 몇 권의 책을 준비 중이며, ‘수요미식회’ 자문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페이스북 페이지에서도 먹는 이야기를 두런두런 하고 있으며, 크고 작은 음식 관련 행사, 콘텐츠 기획과 강연도 부지런히 하고 있다. 퇴근 후에는 먹으면서 먹는 얘기하는 먹보들과의 술자리를 즐긴다.​ 

이해림 푸드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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