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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랑] '태조 이성계'를 찾아 떠나는 의정부 여행

함흥 갔다 돌아온 태조가 머물며 회의한 곳…수도했던 절들도 남아 있어

2019.07.23(Tue) 17:43:44

[비즈한국] 한여름 의정부는 평양냉면 마니아들의 성지가 된다. 서울 을지면옥과 필동면옥의 ‘원조집’에 해당하는 의정부 평양면옥이 의정부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 의정부를 대표할 만한 상징은 의정부역 맞은편 광장에 있다. 말을 타고 화살을 쏘는 모습의 ‘태조 이성계상’이 그것이다. 

 

의정부역 맞은편 행복로 광장에 있는 ‘태조 이성계상’. 의정부를 대표할 만한 상징이다. 사진=구완회 제공

 

의정부와 이성계가 무슨 관계가 있냐고? 지금부터 그 둘을 알아보기 위해 의정부 구석구석을 누벼보자. 

 

# 의정부시가 의정부로 불린 까닭

 

의정부시 행복로 광장에 있는 이성계상은 의정부역에서 나온 방문객들을 제일 처음 맞이하는 의정부의 상징이다. 의정부시와 이성계의 인연은 왕자의 난 이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왕자의 난으로 졸지에 아들들을 잃고 왕위마저 빼앗긴 태조는 자신의 고향인 함흥 지방으로 가버린다. 이때 태조를 모시러 간 함흥차사들이 그대로 ‘함흥차사’가 되어버려 ‘함흥차사’라는 고사성어가 생겨나기도 했다(태조가 함흥차사들을 죽였다는 전설은 사실이 아니다).

 

우여곡절 끝에 함흥에서 돌아온 태조는 한양으로 가기 전 바로 이곳 의정부 호원동 인근에서 머물렀다고 한다. 태조를 맞이하기 위해 정승들이 의정부로 왔고, 이들이 이곳에서 국정을 논의하였기에 이름이 의정부가 되었다는 것이다. 의정부란 의정부시의 명칭이자 조선시대 정승들이 국정을 논의하는 일종의 국무회의였다. 

 

이성계상이 있는 행복로는 의정부의 명동이라 불릴 만큼 번화한 거리이다. 곳곳에 휴식시설이 있어 가족끼리 나들이를 나오는 곳이기도 하다. 

 

# 용이 되어 돌아온 곳, 회룡사

 

‘이성계를 찾아 떠나는 의정부 여행’의 두 번째 목적지는 회룡사(回龍寺)다. 서울과 의정부시에 걸쳐 있는 도봉산 자락에 회룡사가 처음 문을 연 것은 신라 신문왕 무렵. 창건 당시의 이름은 법성사였으나 이성계와 인연을 맺으면서 회룡사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한다. 

 

고려 말에 회룡사를 중창한 무학대사가 아직 장군의 신분이던 이성계와 함께 머물며 불공을 드렸는데, 훗날 이성계가 왕이 되어 다시 찾으면서 ‘용이 돌아온 절’이라는 의미로 회룡사라 했다는 것이다. 

 

고종 때 지어진 ‘회룡사 중창기’에는 조금 다른 이야기가 실려 있다. 이에 따르면 개국공신 정도전의 탄압을 받아 이곳 토굴에서 은신하던 무학대사가 함흥에서 돌아온 태조를 만나 며칠을 지냈는데, 이 사건을 기념해서 회룡사를 지었다. 

 

회룡사는 창건 당시 법성사였으나 이성계와 인연을 맺으면서 회룡사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한다. 사진=구완회 제공

 

둘 중 어느 것이 사실인지는 알 수 없으나, 어쨌든 이곳이 태조 이성계와 깊은 인연이 있는 곳임은 틀림없는 듯하다. 

 

지하철 1호선 회룡역에서 회룡사로 올라가는 입구에 있는 수백 년 된 회화나무도 이곳의 역사를 증언한다. 회화나무를 지나 회룡사로 오르는 길은 요즘 찾는 사람이 많은 북한산 둘레길이기도 하다. 길옆으로 이어진 시원한 계곡이 오르막길에 힘을 보태준다. 

 

# 회룡사 석조와 오층석탑

 

계곡을 따라 도착한 회룡사는 아담한 절집이다. 이곳에서 놓쳐서는 안 될 유물은 큰 규모를 자랑하는 석조와 아담한 오층석탑, 그리고 대웅전 안에 있는 회룡사 신중도 등이다. 

 

석조란 생활에 필요한 물을 저장해 사용하는 수조이다. 회룡사 석조는 길이 224cm, 폭 153cm, 깊이 67cm로 현재 남아 있는 석조 중 최대 규모란다. 크기도 크기지만 표면이 매끄럽고 모양이 아름다워서 조선시대 석조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인정받는다. 

 

석조란 생활에 필요한 물을 저장해 사용하는 수조를 말한다. 회룡사 석조는 현재 남아 있는 석조 중 최대 규모다. 사진=구완회 제공


회룡사 오층석탑에는 회룡사를 창건한 신라 의상대사의 사리가 봉안되어 있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사진=구완회 제공


회룡사 오층석탑은 전체적인 양식으로 보아 15세기 작품으로 추정된다.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석조에 비해 아담한 크기로, 회룡사를 창건한 신라 의상대사의 사리가 봉안되어 있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회룡사 신중도는 조선 말기의 작품이다. 제석천과 범천, 팔부중 등 불교에 등장하는 여러 신들이 한꺼번에 나와서 신중도(神衆圖)라고 불린다. 

 

# 조선 왕실의 원찰, 회암사

 

‘이성계를 찾아 떠나는 의정부 여행’의 마지막 코스는 양주다. 의정부와 바로 붙어 있는 양주에는 이성계가 수도했던 회암사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 회암사는 절터만 남아 있는 상태. 고려 이전에 지어져 조선시대 최대 사찰로 떠오른 회암사는 조선 중기 이후 억불정책이 강화되면서 불타버렸다. 

 

그러면 뭐 볼 만한 것이 있을까, 하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2년 전에 지어진 최신 시설의 회암사지박물관에서 유물과 각종 전시물을 통해 당시의 모습을 생생하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회암사지박물관에서는 유물과 각종 전시물을 통해 옛 모습을 생생하게 볼 수 있다. 궁궐 건축에서나 볼 수 있는 화려한 용두. 사진=구완회 제공

 

회암사가 창건된 것은 고려 충숙왕 15년(1328)이라고 전해진다. 이 무렵 원나라를 통해 고려에 들어온 인도 승려 지공이 회암사를 지었다고 한다. 하지만 개창이 아니라 중창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이 자리에 이미 다른 절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무학대사가 이곳에 머물렀는데, 마침 왕자의 난으로 상심에 빠져 있던 태조가 이곳에 와서 무학에게 법명을 받고 수도생활을 했다고 한다. 

 

# 회암사 푸른 기와의 비밀

 

회암사지박물관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유물은 청기와다. 청기와는 중국의 명나라 황실에서 유행한 것으로, 평기와에 유약을 발라 청색이 나도록 구워낸 것이다. 당연히 평기와에 비해 제작비가 많이 들었고, 왕실에서도 쉽게 사용할 수 없었다. 그런 청기와가 나왔다는 것은 회암사가 왕실의 전폭적인 후원을 받았음을 알려준다. 이 밖에도 궁궐 건축에서나 볼 수 있는 화려한 토수와 용두, 봉황 문양의 기와 등이 다수 출토되었다. 

 

청기와는 중국의 명나라 황실에서 유행한 것으로, 회암사가 왕실의 전폭적인 후원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사진=구완회 제공

 

사실 회암사는 고려시대부터 왕실의 지원을 받았다. 회암사를 아끼기는 조선 태조도 마찬가지였다. ‘조선왕조실록’에는 태조가 회암사에 곡식을 내리고 승려들을 공양했다는 기록이 여러 차례 나온다. 

 

태조 이후 중종의 계비였던 문정왕후의 불교 우대정책으로 전성기를 누리던 회암사는 그녀의 죽음과 함께 억불정책의 거센 파도를 넘지 못하고 불타버렸다. 화재로 폐허가 된 회암사지는 아직도 발굴이 한창이다. 발굴 조사가 마무리된 후에는 시민들을 위한 역사공원으로 거듭날 예정이다. 

 

<여행정보>

 

회룡사 

△위치: 경기 의정부시 전좌로155번길 262

△문의: 031-873-3391

△관람시간: 일출~일몰, 연중무휴

 

회암사지박물관 

△위치: 경기 양주시 회암사길 11 

△문의: 031-8082-5673 

△관람시간: 3월~10월 9시~18시, 11월~2월 9시~17시, 월요일·1월 1일·설날·추석 휴관

 

필자 구완회는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여성중앙’, ‘프라이데이’ 등에서 기자로 일했다. 랜덤하우스코리아 여행출판팀장으로 ‘세계를 간다’, ‘100배 즐기기’ 등의 여행 가이드북 시리즈를 총괄했다. 지금은 두 아이를 키우며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역사와 여행 이야기를 쓰고 있다.

구완회 여행작가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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