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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천문학자의 눈으로 본 영화 '애드 아스트라'

'우주와의 권태' 우리는 앞으로 무엇을 통해 인간성을 상기할 수 있을까

2019.09.30(Mon) 11:32:03

[비즈한국] 인류 역사상 최초로 로켓을 타고 달까지 날아가서 파랗고 둥근 지구의 모습을 지켜본 주인공은 누구였을까? 아폴로 미션의 우주인? 아니다. 놀랍게도 우주여행과 가장 안 어울릴 것 같은 동물, 거북이다.

 

아폴로 11호 우주인들이 달에 발자국을 남기기 바로 1년 전인 1968년, 소련의 과학자들은 자국의 우주인을 달로 보내는 미션을 준비하면서 사람이 아닌 다른 동물을 또 실험체로 삼아 달까지 다녀오는 테스트 비행을 했다. 1968년 9월 우주로 올라간 존드 5(Zond 5) 탐사선은 달까지 날아가 착륙하지는 않고, 달 주변을 선회한 뒤 다시 지구로 돌아오는 여행을 했다. 이 탐사선에는 아주 특별한 승객이 타고 있었다. 러시아 거북(Russian Tortoise) 두 마리였다.[1] 

 

카자흐스탄 바이코누르 발사기지에서 존드 5 탐사선을 싣고 발사되는 로켓(왼쪽)과 존드 5 탐사선이 약 9만 km 거리에서 바라본 지구의 모습(오른쪽). 탐사선 안에 타고 있던 거북도 이런 지구를 바라볼 수 있었을까? 사진=RKK Energiya

 

재밌게도 거북은 지구상에서 땅바닥 가장 가까이 살아가는 생명체 중 하나다. 당시 우주선 안에 탔던 거북이들은 둥근 지구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 파란 구슬이 자기가 며칠 전까지만 해도 발을 딛고 있던 고향 행성이라는 것을 알아채기나 했을까?

 

당시 소련의 과학자들은 이런 로맨틱한 고민 없이, 그저 거북이 몸집이 크지 않고 탐사선 안에 고정시키기 좋다는 지극히 실용적인 이유로 선정했다. 이솝우화에서처럼, 달까지 벌어진 레이스의 최종 승자는 이번에도 정말 거북이 되었다.* 

 

지구로 귀환하고 인도양 바다에 떨어진 존드 5의 캡슐(왼쪽)과 달을 여행하고 돌아온 거북 두 마리를 테스트하는 소련의 과학자들(오른쪽). 사진=RKK Energiya

 

#우리는 벌써 우주에 권태를 느낀다

 

라이트 형제가 처음 비행을 시도한 지 불과 한 세기도 되지 않아서 인류는 달까지 날아가 발자국을 남겼다. 아폴로 우주인들은 처음으로 달의 잿빛 지평선 위에 걸려 있는 푸른 구슬의 모습을 한 지구의 모습을 인류에게 보여주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아폴로 미션에서 촬영된 사진들 중에서 시민들, 그리고 천문학자들까지 가장 큰 감동을 주었던 것은 달이 아닌 우리 지구의 사진이었다.

 

아폴로 8호의 우주인 빌 엔더스가 촬영한 지구오름(Earthrise) 장면. 우주선이 달 주변을 빠르게 돌면서 달의 지평선 위로 지구가 떠오르는 것처럼 보이는 모습을 촬영한 것이다. 사진=NASA

 

이후 더 많은 인류의 탐사선들이 달 너머 더 먼 우주를 여행하며, 더 먼 곳에서 고향 행성을 바라봤다. 1977년 지구를 떠났던 태양계 탐사선 보이저 1호는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는 기약 없는 외로운 항해를 시작했다. 꿋꿋하게 예정된 궤도를 따라 목성을 지나고 더 먼 태양계 외곽을 향해 가던 중, 1990년이 되어서야 해왕성 궤도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천문학자들은 마지막으로 탐사선에게 태양계 안쪽을 바라보도록 했다.

 

탐사선은 1990년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에 인류에게 역사상 가장 로맨틱한 선물을 보내주었다. 약 60억 km 거리에서 찍은 우리 고향 행성의 셀카. 태양계의 텅 빈 공간을 부유하는 작은 먼지 같은 모습의 지구가 사진에 담겨 있었다. 인류는 다시 한 번, 스스로가 써온 그 긴 역사가 이 작은 티끌 안에서만 벌어져왔다는 현실을 직시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작고 희미한 푸른 점의 지구를 보며, 우리의 존재를 되돌아보며 잠깐 겸손해질 수 있었다.[2]

 

약 60억 km 거리에서 바라본 작은 지구의 모습, 칼 세이건은 이 지구의 낯선 모습을 보고 ‘희미한 푸른 점(Pale blue dot)’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보이저 1호는 이 사진을 찍은 이후로 지금까지도 계속 태양계 바깥 우주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사진=NASA/JPL-Caltech

 

인류가 처음으로 달의 지평선 위에서 지구를 바라보고, 태양계 마지막 행성 궤도를 지나며 희미하고 푸른 점을 바라본 지도 벌써 많은 시간이 흘렀다. 1990년 2월 14일 이후에 태어난 포스트-보이저(post-voyager) 세대가 벌써 서른이 되었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인류는 많은 탐사선을 태양계 행성 곳곳으로 보냈고, 벌써 미션을 끝내고 은퇴한 채 우주 공간에서 차갑게 식어 표류하는 로봇들도 많아졌다.

 

우리에게 푸른 구슬의 모습을 한 지구의 모습은 더 이상 새롭지 않다. 인공위성들이 매일같이 찍어 보내는 둥근 지구의 모습은 이제 일상이다. 누구도 둥근 지구의 모습을 보고 낯설어하지도, 감동을 받지도 않는다.

 

최근 개봉한 브래드 피트 주연의 영화 ‘애드 아스트라’는 가까운 미래, 우주선을 타는 일이 비행기를 타는 것처럼 흔한 일상이 되기 시작한 시대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제 누구나 돈만 있으면 상업용 우주선을 타고 달 정도는 편하게 오고 간다. 지구의 공항처럼 식당과 숙박업소의 화려한 네온사인으로 가득한 달의 우주 기지에는 더 이상 우주 시대의 낭만은 없다. 그저 평범한 일상의 영역이 지구 너머 달로 확장되었을 뿐이다.

 

영화 속에서 브래드 피트가 연기한 우주인 로리 맥브라이드는 그간의 많은 우주비행에서도 심장 박동이 크게 변하지 않고 안정적인 심리 상태를 잘 유지하는 베테랑이다. 로리 맥브라이드에게 달의 밤하늘 위에 떠있는 푸른 지구의 모습은 더 이상 감동을 주지 않는다. 그저 당연한 일상의 풍경일 뿐. 그는 인류의 우주 활동 영역이 넓어지면서 이제 어지간한 모습에는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인류의 모습을 요약한 캐릭터처럼 느껴진다. 

 

#새로운 자극을 찾아, 더 먼 우주로

 

(*주의: 아래부터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는 결국 우리에게 오래된 질문을 다시금 던져준다. 대체 왜 우리는 이렇게 우주를 여행하는 데 집착하는 걸까? 왜 멈추지 않고 공허한 먼 우주를 향해 계속 나아가려고만 하는 걸까? 조금 다르게 이야기하면, 왜 인류는 계속해서 우주를 개발하고 인류의 활동 영역을 넓혀가려는 걸까?

 

나를 비롯한 많은 천문학자들이 자주 받는 질문이지만, 솔직히 말하면 뭔가 뚜렷한 답을 꺼내기 쉽지 않다. 여전히 우주 개발은 막대한 사회적·공적 비용이 들어가는 프로젝트이지만, 당장 실용적인 무언가를 우리 손에 쥐어주지는 않는다. 그저 막연한 꿈, 인류의 미래를 향해 먼 우주로 향하는 것도 어떤 면에서는 허황된 꿈을 좇아가는 무모한 여행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영화 ‘애드 아스트라’는 우리가 멈추지 않고 계속 더 먼 우주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이 어쩌면 우리가 우주 개발과 함께 상실해가는 인간성을 다시 상기하고 우리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를 깨닫게 해주는 더욱 새로운 자극을 찾아 떠나는 것일지 모른다는 질문을 던져준다.

 

영화 ‘애드 아스트라’의 원제 ‘To the Stars’로 우리말로 옮기면 ‘별로’라는 뜻이다. 21세기 버전으로 옮긴 ‘스페이스 오디세이 2001’ 같은 이 영화는 우주를 통해 인류 스스로의 모습을 비춰보는 여정이다.

 

아폴로 우주인들이 보내온 달 지평선에 걸려 있는 지구의 모습, 칼 세이건의 제안으로 보이저 1호가 촬영했던 희미한 푸른 점의 모습을 한 작은 지구의 모습. 이 사진들이 처음 공개되었을 당시 지구에서 살아가던 모든 이들은 아주 낯선 고향별의 모습을 처음으로 봤다. 그리고 국경은커녕 행성 전체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는 그 외롭고 창백한 모습을 보며, 우리가 얼마나 소모적인 것들에 집착하며 고향 행성의 소중함을 잊고 사는지를 느꼈다. 멀리서 바라본 지구의 모습은 잠깐 잊고 있던 우리의 인간성을 회복하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이제 이 선구자들이 멀리서 지구를 바라본 지도 한참 또 시간이 흘렀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달에서 본 지구의 모습을 보며, 멀리 토성이나 해왕성 근처에서 바라본 작은 지구의 모습을 보며 감동을 받지 못한다. 그 사이 탐사선들의 활동 영역이 넓어지며 우리는 태양계 정도로는 큰 감동을 받지 못할 정도로 인간성이 다시 둔감해졌다.

 

그렇기에 우리는 또 한 번, 우리의 인간성을 회복시켜줄 새로운 자극이 나타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끝없이 펼쳐진 저 공간을 향해 스스로를 계속 밀어내고 있는지 모른다. 아직도 다른 행성에 로봇의 바퀴 자국만 남겼을 뿐, 진짜 사람이 가서 발자국을 남기지 못했다. 우리 인류는 이제야 천천히 진짜 우주 문명으로 진입하기 위한 작은 발걸음을 떼고 있다. 그렇지만 벌써 우리는 태양계 정도의 우주는 우습게 생각하고, 지루하다고 느낄 정도로 대단한 거드름을 피우고 있다. 어쩌면 바로 그 거만함이 연료가 되어 인류의 멈추지 않는 우주 탐사라는 로켓을 밀어내는 추진력을 만들어내고 있는지 모르겠다.

 

영화의 이야기는 결국 마지막에 가서 최종 목적지(스포방지)에 도착해, 주인공이 아버지를 만나며 절정에 달하고, 또 그간의 모든 갈등이 한꺼번에 해소된다. 이는 인류가 외계 문명의 신호를 포착했을 때 벌어지는 혼란을 다룬 1997년 조디 포스터 주연의 영화 ‘콘택트’에서 주인공이 아버지의 모습을 한 외계인을 만나는 장면, 그리고 거대한 블랙홀 속으로 들어가 시공간이 교차하면서 다시 딸과 아버지가 조우하는 장면을 담고 있는 2014년 영화 ‘인터스텔라’의 장면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새 시대를 의미하는 자식이 구시대를 의미하는 아버지를 만나, 아버지에게서 가르침과 교훈을 얻어 지구로 돌아오는 과정은 이런 우주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클리셰 또는 자주 인용되는 오마주다. 하지만 이번 영화 ‘애드 아스트라’에서는 한 가지 새로운 방식으로 그 클리셰를 뒤집는다.

 

영화 ‘​콘택트’​는 외계인들이 인류에게 보내온 설계도로 만든 우주선을 타고 주인공이 외계행성으로 떠난다. 그곳에서 주인공은 아버지의 형상을 한 외계인을 만나고 평생 품어왔던 질문에 대한 힌트를 얻는다(위). 영화 ‘​인터스텔라’​에서는 블랙홀을 통해 딸의 과거 방으로 넘어간 아버지가 딸에게 메시지를 남긴다(아래). 그리고 그 메시지를 통해 현재의 딸은 인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힌트를 얻는다. 구시대와 새 시대의 조우를 다루는 이런 영화적 장치는 우주를 무대로 하는 많은 영화에서 활용하는 방식이다.

 

‘애드 아스트라’ 속 로리 맥브라이드는 79일이 넘게 걸리는 외로운 여정 끝에서 그토록 만나고 싶었던 아버지를 만난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아버지는 지금까지의 인류가 그랬듯이, 외계 지성체의 신호를 포착하고 말겠다는 더욱 새로운 자극을 찾아 끝내 포기하지 못한 채 계속 우주를 떠돌고 있었다. 이제 더 이상 태양계 여행 정도로는 별다른 감동을 느끼지 못하게 된 우리의 미래를 나타내기도 한다.

 

하지만 ‘애드 아스트라’는 과감하게 구시대의 교훈을 우주에 버리는 용기를 보여준다. 결국 주인공이 로프에서 손을 놓고 눈물과 함께 떠나보낸 우주복 속 아버지라는 존재는 언젠가 우리 인류가 버려야 할 새로운 우주에 대한 미련, 그리고 익숙한 우주에서 감동을 느낄 줄 모르는 우리의 거만함이었다. 그렇게 주인공은 주변의 가까운 존재, 자신 스스로의 모습을 통해서 감동을 느낄 수 있는 더욱 새로운 존재로 성장하여 지구로 돌아온다.

 

우리는 정녕 더 먼 우주로 나아가야만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가? 낯선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자극이 있어야만 우리는 우리의 소중한 존재를 깨달을 수 있는가? 물론 우주가 주는 새로운 감동은 매번 우리가 잊고 살았던 우리 스스로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좋은 자극제가 되었다.

 

최근 스페이스 X에서는 화성에 사람을 보낼 새로운 우주선 스타십(Starship)의 모델을 공개했다. 물론 엔지니어링이 항상 그렇듯, 실제 상용화되기 위해서는 또 긴 시간이 걸리겠지만, 멀지 않은 미래 정말 이 거대한 우주선이 사람을 가득 태우고 달과 화성까지 오가는 영화 속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3]

 

하지만 우리 스스로가 그 소중함을 깨달을 수 없게 된다면 결국 인류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이 광막한 우주에서 우리는 어쩌면, 결국 더 이상 새로운 낯선 우주를 만나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가장 가까운 곳에 이웃한 별까지 날아가는 데만 수만 년이 걸려야 하고, 또 오늘날의 기대만큼 외계 생명체나 외계 지성체를 쉽게 발견하지 못할 수도 있다. 아니 정말 새로운 외계 생명체를 찾게 된다 하더라도 그 자극이 우리를 흥분시키는 것도 잠깐일 뿐, 또 다시 거만해진 인류는 이제 외계 생명체는 당연한 일상으로 받아들이며 그것이 주는 감동에 또 다시 둔감해질 것이다.

 

결국 우리는 새로운 우주가 주는 외부 자극에만 의존해서는 우리의 존엄성을 영원히 지킬 수 없을 것이다. 곁에 있을 때는 소중한 것을 모르지만, 그 곁을 떠나야만 소중함이 느껴진다는 표현처럼. 우리는 여전히 지구를 떠나야만 지구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궁극적으로 지구에 살면서도 지구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진정한 천문학적 통찰을 터득해야할 것이다. 우리의 탐사선은 계속 더 먼 우주를 향해 떠나고 있지만, 인류가 보낸 모든 탐사선의 선미의 불꽃은 모두 지구를 향해 빛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아폴로 14호 우주인 에드거 미셸은 멀리서 작은 지구를 바라보며 그 작은 지구에서 정치적이고 소모적인 논쟁으로 시간을 허비하는 인류에게 아주 강렬한 한 마디를 남겼다.

 

릴 디키의 ‘지구(Earth)’ 뮤직비디오.

 

[1] https://www.nasa.gov/feature/50-years-ago-on-the-way-to-the-moon-0/

[2] https://solarsystem.nasa.gov/resources/536/voyager-1s-pale-blue-dot/

[3] https://www.spacex.com/webcast

 

*러시아 거북 이야기는 필자가 번역한 ‘진짜 우주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원제  Ad Astra)에 나오는 이야기를 각색한 것이다.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galaxy.wb.z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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