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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TO 개도국 지위 포기' 논쟁, 해법은 결국 돈?

예산 증액, 보조금 지원 놓고 정부-농민단체 이견…전문가들 "세금 한계, 혁신할 방안 모색해야"

2019.10.31(Thu) 17:01:06

[비즈한국] 정부와 농민단체의 신경전은 예고된 수순이었다. 정부가 23년 만에 세계무역기구(WTO)의 개발도상국 지위를 포기하기로 하면서다. 정부는 세금을 투입해 보조금을 지급하는 해결책을 제시했지만, 농민단체는 개도국 지위를 유지하라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일부 농민단체는 관련 예산 증액 등 더욱 적극적인 해결책을 요구한다.

 

앞서 25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우리나라의 대외적인 위상이 더는 개도국 특혜를 견지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장래에 진행될 협상에서 개도국 특혜를 주장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대한민국은 대만, 브라질, 아랍에미리트(UAE), 싱가포르에 이어 5번째로 개도국 지위를 졸업한 나라가 됐다.​ 우리나라는 1996년 농업 분야에 한정해 개도국 지위를 인정받았다. 

 

정부가 23년 만에 세계무역기구(WTO)의 개발도상국 지위를 내려놓기로 했다. 정부는 차기 협상이 현재로서는 사실상 없는 상태라며 안심해도 된다는 입장이지만 농업계의 우려는 수그러들지 않는다. 사진=전국농민회총연맹 페이스북 페이지


#차기 협상 사실상 없는 상태라지만…농업계는 전전긍긍

 

정부가 이러한 결정을 내린 배경에는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있다. 지난 7월 트럼프 대통령은 “WTO가 90일 안에 실질적인 진전을 이뤄내지 못하면 미국 차원에서 이들 국가의 개도국 대우를 일방적으로 중단하겠다”고 말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개도국 제외 기준으로 △G20 회원국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세계은행이 분류한 고소득 국가 △세계 상품 교역의 0.5% 이상을 차지하는 나라를 제시했는데, 우리나라는 이 요건을 모두 충족했다.

 

WTO 개도국 지위는 정부가 영세 소농을 배려하는 핵심 수단이었다. 우리나라는 수입산 농산물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며 국내 농산물 시장을 보호해왔다. 개도국은 10년 동안 선진국(36%)의 3분의 2 수준인 평균 24%의 관세를 감축하면 된다. 또 개도국은 특별품목 제도를 활용해 할당량 내에서 관세 감축을 면제받거나, 수입이 급증할 때 특별세이프가드 조치를 통해 추가 관세를 부과할 수 있었다. 이러한 WTO 내 개도국 우대 조항은 150여 개에 달한다.

 

앞으로 우리는 이를 누리지 못할 가능성이 커졌다. 다만 곧바로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농업 분야에 대한 협상이 언제 진행될지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라서다. WTO 내 농업 부문만을 의논하는 위원회인 도하개발아젠다(DDA) 협상은 회원국들의 견해차로 2008년 이후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협상이 체결된 단계가 아니기에 농업 분야에 즉각적인 타격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역시 차기 협상이 현재로서는 사실상 없는 상태라며 안심해도 된다는 입장이지만 농업계의 우려는 수그러들지 않는다.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관계자는 “당장 피해가 나타나지 않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차기 협정에서 개도국 지위를 주장하지 않는다는 점은 확실하기에 장기적인 피해가 걱정된다”며 “기존에 받던 혜택이 줄어들면 안정적인 먹거리를 생산할 수 있는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기형 전국농민회총연맹 사무총장은 “정부는 당장 피해가 없다고 하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당장 효과가 없는 결정을 왜 굳이 지금 내놓았는지 의문이다”​며 “​​​미국이 이번을 계기로 또 다른 통상압력을 가할 수 있다고 본다. 농업의 현실과 중요성을 고려해 WTO 개도국 지위 포기 방침을 철회해야 한다​”​고 밝혔다.

 

지난 25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장래에 진행될 협상에서 개도국 특혜를 주장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29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도 홍 부총리는 농업 예산 관련 질의를 받았다. 사진=박은숙 기자


#‘돈’으로만 귀결되는 대책에 전문가들 “안타깝다”

 

이에 정부는 2조 2000억 원을 투입하겠다며 ‘공익형 직불제’를 핵심 대안으로 제시했다. 공익형 직불제는 모든 농가에 동일한 보조금을 지급하는 제도인데, WTO에서 규제하는 보조금에 해당하지 않는다. 반면 농협 농정통상위원회 조합장들은 직불제 예산을 5조 원까지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부 농민단체는 농업 예산을 국가 전체 예산의 4~5%로 증액하고, 1조 원​의 농어촌상생협력기금 부족분​을 정부에서 출연하라고 전달한 상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정부와 농민단체가 내놓는 대책이 주로 ‘돈’으로만 귀결된다며 아쉬움을 드러낸다. 김상봉 교수는 “가장 하위 대책에 대한 논의만 반복되고 있다. 공익형 직불제, 보조금 정책 모두 세금이다. 논만 가지고 있다고 세금을 그쪽으로 이전해주겠다는 발상은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고 밝혔다. 송영관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략 연구위원은 “지금은 이성적인 상황이 아닌 듯하다. 대안을 놓고 얘기를 해야 하는데 밥그릇 싸움이 되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추후 열릴 협상에서 제시할 전략을 논의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제껏 소농을 보호해주던 개도국 지위를 내려놓게 된 만큼 이들을 보호할 수단을 새롭게 마련해야 한다는 얘기다. 송기호 변호사(전 민변 국제통상위원장)는 “대규모 다국적 기업과 똑같이 경쟁할 수 없는 소농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부분은 통상법적으로도 가치가 있기 때문에 이 내용을 협상에 담아내야 한다”며 “개도국이든 선진국이든 지역사회를 돌보고 자연환경을 유지하는 소농을 보호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농민들의 삶을 보존해주면서도 우리나라 농업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는 의견도 적잖다. 김상봉 교수는 “업종 자체 혹은 같은 농업 안에서도 쌀이 아닌 다른 농산물로 바꾸는 등의 방법도 이야기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앞서의 송 연구위원은 “농민 중 나이 드신 분들은 연금 가입이 안 돼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분들의 기초 생활을 보장하는 방법은 필요하다”면서도 “불필요한 시설 구축에 들어가는 농업 예산이 많은데 이런 부분을 정비해야 한다. 또 현재 시스템은 땅이 많은 사람에게 돈이 많이 가는 구조인데 가구별, 소득별로 구분하는 등의 방안을 이야기해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김명선 기자 line23@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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