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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가격 인상으로 본 AI 전쟁의 그림자

AI 슈퍼사이클의 반대편, 더 비싸진 우리의 디지털 일상

2026.06.29(Mon) 14:27:14

[비즈한국] 애플이 맥북, 그리고 아이패드를 비롯해 거의 모든 제품의 가격을 올렸습니다. 사실상 아이폰 빼고는 다 올랐어요. 너무 갑자기 올라서 좀 당황스러운데, 인상 폭도 적지 않습니다.

 

가격이 중심이라는 맥북 네오는 99만 원에서 119만 원으로 20만 원이 올랐고, M5 맥북 에어도 기본 모델이 179만 원이었던 게 219만 원이 됐습니다. 무려 단숨에 40만 원이 올랐습니다. 이번 가격 인상의 이유는 명확히 메모리에 있습니다. 고가 모델일수록 더 많이 오른 것 같은 기분이 들긴 할 텐데, 실제 제품 가격에 비례해서 오른 건 아니고 딱 메모리 가격만큼 올랐습니다. 애플은 대략 8GB당 20만 원씩 올리는 것으로 보입니다.

 

애플이 아이폰을 제외한 맥북·아이패드·애플TV 등 주요 제품 가격을 대거 올린 것은 단순한 가격 정책 변화가 아니라 메모리 공급 부족이 소비자 제품 가격으로 본격 전가되기 시작했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사진=애플 제공

 

가장 놀라운 건 애플 TV인데, 64GB 기본 모델은 21만 9000원이던 게 35만 9000원, 무려 14만 원, 64%가 올랐고, 128GB 이더넷 모델은 24만 9000원이었던 게 44만 9000원이 됐습니다. 진짜 엄청나죠. 80% 인상입니다. 얘는 메모리도 DDR4이고, 용량도 작은데 좀 심하죠. 이건 아무래도 DDR4 메모리 생산이 거의 끊어지다시피 해서 그런 것 같아요. 삼성, 하이닉스, 마이크론 모두 이제 DDR4는 생산을 안 하니 재고가 없고, 그래서 더 공급난을 겪는 것 같습니다.

 

정말 이상한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진짜 뭐든 나올 때 출고가에 사는 게 최고인 상황이에요. 이건 애플을 탓할 수도 없죠. 애플이 갑자기이긴 하지만 그래도 예고가 없었던 건 아니에요. 지난주에 팀 쿡 CEO가 메모리 가격 때문에 애플의 제품 가격을 인상할 수밖에 없다는 메시지를 주었었죠.

 

저는 다음 신제품이 나올 때 반영되려나 하고 조금 느긋하게 생각했는데, 애플이 가격 인상을 예고할 정도였으면 이미 공급가가 턱에 찼다는 이야기였던 겁니다. 팀 쿡 CEO는 원래 SCM(Supply Chain Management), 그러니까 공급망 관리 분야의 전문가예요. 필요한 부품의 최적의 공급자, 생산량, 원가 변동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이걸 잘 조정해서 안정적으로 공급받는 걸 지구에서 가장 잘하는 사람이거든요.

 

그런데 이 팀 쿡 CEO도 자기 40년 커리어 중에 이런 건 처음 본다고 말할 정도였어요. 부품 가격이 이렇게 예상할 수 없을 만큼 오르는 건 처음이라고 합니다. 저도 사실 PC 업계가 성장하는 모든 과정을 봐왔는데, 그 사이에 메모리나 프로세서 가격이 급등하는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짧은 기간에 크게 오르고, 이게 끝나지 않을 거라는 캄캄한 상황은 처음 봅니다.

 

애플은 어느 정도 예상을 했을 테고, 이에 대한 대비를 했지만 그 사이에 마이크론도 PC용 메모리 생산을 중단했죠. 이건 이제 올해, 내년에 해결될 일이 아니고 몇 년은 버텨야 하는 보릿고개이고, 어쩌면 이 가격 아래로는 다시 내려가지 못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빠른 기간 안에 메모리 가격 인상은 반영해야 하고, 이번 가격 인상은 당장뿐 아니라 앞으로 몇 년을 안전하게 봐야 합니다. 계속해서 물건 가격을 조정하는 건 기업과 제품 신뢰에 치명적이라는 걸 가장 잘 아는 사람이니까요.

 

그래서 팀 쿡 CEO가 그 매듭을 짓는 것 같습니다. 가을이면 존 터너스 신임 CEO가 자리를 이어받게 되는데, 임명과 동시에 가격을 올렸다가는 지금의 상황을 떠나 시장의 아쉬운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습니다. 대신 공급망 전문가인 팀 쿡 CEO가 상황을 설명하는 것이 시장의 이해를 살 수도 있고, 차기 CEO의 부담을 크게 덜어줄 수 있을 테니까요. 시장도 이 가격 인상에 애플을 원망하기보다는 ‘올 것이 왔다’에 가깝습니다. 사실 오래 버텼죠.

 

문제는 이게 단기에 끝날 일이 아니라는 겁니다. 완전한 공급 부족에서 오는 거고, 이미 세상은 AI를 다음 플랫폼으로 꼽았기 때문에 앞뒤를 가리지 않습니다. 누구도 멈출 수 없는 전쟁이 시작됐고, 그 승자는 GPU와 메모리를 많이 가진 쪽으로 갈 테니까 말이죠. 메모리는 이미 내년 공급량까지 계약이 다 끝났고, 2028년이라고 숨통이 트일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이제 이걸 기본으로 인정하고 가야 하는 상황이 오게 된 거예요.

 

여기에서 두 가지 시선이 겹칩니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의 주주 관점에서 보면 이 공급 부족 사태가 끝나지 않기를 기대하겠죠. 지금 두 회사의 놀라운 실적은 생산량이 늘었거나, 파격적인 제품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디램 그 자체의 시세가 올랐기 때문이에요. 불과 지난해 초만 해도 메모리는 위기론이 계속 나왔었고, 두 회사는 과잉 공급에 대한 대응에 애를 먹고 있었습니다. 지금 한창 관심을 받고 있는 평택, 용인 등의 신규 반도체 클러스터도 사실 얼마 전까지 공사 속도를 늦추고, 2023년, 2024년에는 심지어 건설을 중단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각 기업이 오픈AI나 구글, 앤트로픽 등에 기대지 않고 자체 AI 데이터센터를 구축하는 흐름이 자리를 잡으면서 메모리 수요가 폭증하게 됩니다. 기업뿐 아니라 국가들도 나서서 이른바 소버린 AI로 인공지능 기술의 독립성을 챙기기 시작했죠. 그런데 HBM의 공급량은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마이크론이 공급을 시작하지만 그것도 언 발에 오줌 누기 수준입니다.

 

새 공장에서는 내년 하반기부터 슬슬 제품이 나올 거고, 2028년에도 생산 규모가 늘어나긴 할 겁니다. 근데 메모리는 진짜 수요 공급이 가장 예민한 부분이라서 당장 가격이 확 떨어지지도 않을 테고, 여기에서 일반 소비자용 메모리를 얼마나 찍어낼지 모릅니다. 글로벌 HBM 시장에 뛰어들지 못한 중국 기업들이 DDR5 메모리 양산에 성공하는 것이 지금 거의 유일한 해법으로 꼽힐 정도입니다.

 

주주의 입장에서 보면 이 슈퍼 사이클이 이어지는 위태로운 상황이 곧 수익으로 연결되니 좋은 일이지요. 사실상 지금 온 나라가 이 두 기업의 기록적인 성과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또 응원하죠. 우리나라 기업이 AI 시장의 가장 중요한 축을 차지하고 있으니 좋은 일인 건 분명합니다. 주식 시장에서 큰 성과를 얻은 분들도 많을 테고요.

 

하지만 다른 시선으로 보면 이 메모리 성과의 이득을 보는 사람들은 아주 일부입니다. 무엇보다 이 실적이 완전한 공급 부족에서 오는 것이라 기존 생태계의 가격을 모두 흔들고 있습니다. 벌써 소니는 플레이스테이션 5 가격을 셀 수 없이 많이 올렸고, 최근에는 그 폭을 더 키웠습니다. 마침 마이크로소프트도 잘 팔리지도 않는 엑스박스 게임기의 가격을 또 올렸습니다. PC와 스마트폰 가격은 이미 5배 이상 오른 메모리 가격을 실시간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건 AI뿐 아니라 일반 데이터센터의 운영 비용과도 연결되기 때문에 구독이나 여느 서비스 가격도 다 따라서 오릅니다. 메모리가 들어가지 않는 기기는 없으니 이제 그 여파는 곧 자동차, 가전제품, 심지어 건축까지 모두 옮겨붙게 될 겁니다.

 

애플의 가격 인상은 이제 더 이상 아무도 버틸 수 없다는 신호에 가깝습니다. 사실은 이제 우리가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합니다. AI의 편리함과 혁신은 환영할 만한 일이고, 그 안에서 우리 기업들의 성장도 반갑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지난 50여 년간의 PC 역사상 처음으로 성능의 역주행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늘 더 빠른 프로세서, 더 많은 메모리와 저장공간을 바탕으로 성장해온 이 생태계가 처음 경험하는 거대한 벽입니다.

 

우리가 지금 손에 쥐고 있는 스마트폰과 책상 위의 PC, 거실의 게임기를 앞으로 몇 년이나 더 껴안고 버텨야 할지 예측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필요한 게 있으면 지금 사는 게 가장 쌉니다. 신제품 출시는 더 위축될 거고, 소비자들도 그동안의 풍요를 과거의 추억으로 돌아봐야 할지 모를 일입니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의 성장은 단순한 축제가 아닙니다. 이건 사실상 전 세계 모두의 일상을 담보로 한 희생을 통해 만들어지는 성과입니다. 그들을 탓할 일은 아니지만, 이 낯선 흐름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여러 가지 입장과 시선이 엇갈립니다. 책임이 뒤따르는 무거운 성장의 길이라는 건 이 중심의 모든 기업이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세상의 모든 자원처럼 세상의 모든 컴퓨팅 자원 역시 한정되어 있습니다. 어쩌면 지금 우리의 기술력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컴퓨팅은 아직 AI의 이상에 미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결국 우리는 자원을 한쪽으로 몰았고, AI의 편리함에 대한 대가를 일상의 디지털 경험과 맞바꾸고 있습니다. 누구나 당연하게 누리던 풍요로운 IT 시대는 끝났습니다. 그 영수증이 하나씩 다가오고 있습니다.

최호섭 IT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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