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국내 제약업계에서 100년 넘게 이름을 이어온 유한양행과 동화약품이 각자의 역사를 담은 기념 공간을 새롭게 정비했다. 두 회사의 기념관에는 창업주의 경영 철학과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 얽힌 기록, 대표 의약품의 변천사가 함께 전시됐다. 오래된 기업의 역사가 단순한 과거 회고에 머물지 않고, 오늘날 기업 정체성과 사회적 책임을 설명하는 자산으로 활용되는 모습이다.
#유한양행, 창립 100주년 맞이 ‘윌로우하우스’ 개관
국내 상장기업 중 11번째로 창립 100주년을 맞은 유한양행은 지난 20일 서울 동작구 대방동에서 복합문화공간 ‘윌로우하우스(Willow House)’ 개관식을 진행했다. 기업의 상징인 버드나무(Willow)를 영문으로 풀어낸 이 공간은 1962년부터 35년간 유한양행이 성장해온 옛 본사 건물의 낡은 뼈대를 그대로 살려 현대적인 감각을 더했다. 조욱제 유한양행 대표이사는 개관식에서 “오래된 외벽을 그대로 보존하고 35년의 시간이 새겨진 벽돌 하나하나 위에 다음 100년을 향한 공간을 새롭게 자리 잡게 했다”며 “어제와 내일을 동시에 품고 창업 정신을 오늘의 언어로 새롭게 풀어낸 곳”이라고 윌로우하우스의 의미를 설명했다.
윌로우하우스는 시민과 지역사회에 개방됐다. 창업주인 고 유일한 박사의 철학을 고스란히 담은 것. 1926년 유한양행을 설립한 유일한 박사는 “가장 좋은 상품을 만들어 국가와 동포에게 도움을 주자”는 신념 아래 국민 보건 향상을 위해 매진했다. 1933년 자체 개발한 최초의 소염진통제 안티푸라민을 선보였는데 지금까지 국민 상비약으로 사용되고 있다. 윌로우하우스에서 최초의 안티푸라민을 포함해 그동안 유한양행이 출시한 의약품을 볼 수 있다.
유일한 박사는 기업 활동에만 머물지 않고 독립운동에 직접 몸을 던진 공을 인정받아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도 추서받았다. 그는 50세에 미국 전략첩보국(OSS)의 비밀 한반도 침투 작전인 ‘냅코 프로젝트(NAPKO Project)’에 암호명 ‘A’로 자원해 강도 높은 특수 공작 훈련을 받기도 했다. 조 대표는 “기업에서 얻은 이익은 그 기업을 키워 준 사회에 환원하여야 한다는 유일한 박사님의 가르침을 오늘의 방식으로 잇고자 하는 작은 실천”이라고 설명했다.
윌로우하우스는 네이버 예약을 통한 사전 예약제로 운영된다. 회차별 참여 인원을 8명 규모로 두고 전문 도슨트의 해설이 더해져 관람의 몰입도를 높일 예정이다. 방문객들은 1층 체험전시관에서 버드나무숲 미디어아트를 감상한 뒤 심리 진단 결과에 맞춰 맞춤형 차를 제공받는 마음 치유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 2층 메모리얼 홀에서는 터치스크린을 통해 AI로 구현된 창업주 유일한 박사와 가상 대담을 나누거나 과거 의약품 광고를 직접 디자인하는 등의 경험할 수 있다.
유한양행은 이러한 100년의 헤리티지를 글로벌 도약의 나침반으로 삼겠다는 방침이다. 조 대표는 “끊임없이 새로움을 여는 ‘진보(Progress)’와 원칙을 지키며 품격을 높여가는 ‘정직(Integrity)’이라는 두 가지 가치가 유한의 다음 100년을 이끌 것”이라며 “신뢰의 100년 위에 약속의 100년을 더하겠다”고 역설했다. 유한양행은 2024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은 렉라자를 필두로, 차세대 폐암 치료제, 알레르기 치료제 등 파이프라인 확장에 속도를 내고 있다.
#동화약품 129년 역사 품은 ‘동화 1897 라운지’
올해 129주년을 맞은 동화약품은 지난해 7월 신사옥을 준공하면서 1층에 기념관 ‘동화 1897 라운지’를 조성했다. 1897년 첫 문을 연 이후 단 한 번도 다른 곳으로 이전하지 않은 동화약품은 이 라운지를 옛 한옥 약방 느낌을 살린 나무 기둥과 기업의 상징인 펼친 부채를 표현한 한지 벽으로 꾸몄다. 내부에는 활명수를 만들던 옛 우물터 자리를 흰색 삼각뿔 조형물로 보존했다.
여기에 약작두와 약연 등 과거의 약재 도구부터 △국내 최고 제조회사 △국내 최고 제약회사 △최초의 등록 상품 ‘활명수’ △최초의 상표 ‘부채표’ 등 4개의 기네스북 인정서까지 전시하고 있다. 라운지는 카페 온선재와 경계 없이 자연스럽게 이어져 있어, 인근 직장인과 방문객들에게 120여 년의 역사와 함께 쉬어갈 수 있는 도심 속 휴식처를 제공한다.
동화약품은 1897년 궁중 선전관 출신 민병호 선생이 국내 최초 양약으로 개발한 ‘활명수’의 대중화를 위해 창업한 동화약방을 잇는다. 당시 민중들은 급체, 토사곽란 등으로 목숨을 잃는 일이 많았는데 활명수는 생명을 살리는 물로 불리며 만병통치약 대접을 받았다.
동화약품도 유한양행과 마찬가지로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역사를 품고 있다. 1919년 3·1 운동 직후 당시 사장이었던 민강 선생은 상하이 임시정부의 국내 비밀 연락망인 서울연통부를 운영했으며 활명수 수익으로 독립운동 자금을 조달했다. 사옥 한편에 서울시가 세운 ‘대한민국임시정부 서울연통부지’ 비석도 자리잡고 있다. 독립운동으로 인해 외압을 받아 경영이 어려워진 1937년에는 보당 윤창식 선생이 동화약방을 인수해 역사를 이어왔다. 윤도준 동화약품 회장도 2017년부터 각계각층의 인사들과 함께 남산의 일제강점기 역사 현장을 돌아보는 남산 역사 탐방을 진행하는 등 헤리티지 계승에 적극적이다.
구국 정신과 화합을 상징하는 부채표의 철학은 오늘날 동화약품의 ESG 경영으로 계승되고 있다. 활명수의 가치를 살려 전 세계 어린이들에게 깨끗한 식수를 제공하는 캠페인을 전개할 뿐만 아니라 부채표 가송재단을 통해 의약학 발전 및 인재 육성을 지원하고 있다.
동화약품은 활명수 외에도 감기약 ‘판콜’을 보유하고 있으며 최근 척추 임플란트 전문기업 메디쎄이를 통해 의료기기 분야 경쟁력을 강화하고 베트남 약국체인 중선파마를 기반으로 글로벌 헬스케어 시장 확대에 나서고 있다. 동화약품 관계자는 “활명수로 독립자금을 마련하던 시절부터, 국민의 일상 속에서 함께해온 129년의 시간이 우리의 가장 큰 자산”이라며 “앞으로도 국민들의 일상을 더 건강하게 만드는 일에 변함없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최영찬 기자
chan111@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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