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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짜오 호찌민] 씨클로 대신 '배민'이…베트남의 첫인상은 예상과 달랐다

편의점·극장·커피점·외식·드라마…베트남 젊은이 사로잡은 한국 브랜드들

2021.04.13(Tue) 09:56:29

[비즈한국] 2주간의 격리 생활을 마치고 설레는 마음으로 택시를 탔다.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우와, 정말 오토바이가 많구나!’

 

이 도시를 처음 방문하는 여느 사람과 마찬가지로, 처음 나를 압도한 것은 거리를 가득 채운 오토바이의 물결이었다. 오토바이만큼은 아니지만 눈에 많이 띈 것이 하나 더 있었으니, 그건 바로 친숙한 한글 간판들이다. GS25, 롯데리아, 뚜레쥬르, 파리바게트….

 

호찌민의 한국 브랜드들. GS25, 블랙핑크 사진이 들어간 음료수와 한국 스낵들, 한국 맥주들. 사진=김면중 제공


‘내가 지금 한국에 있는 베트남타운에 있는 건가?’ 

 

이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런 풍경을 기대한 게 아니었는데…. 뭔가 실망스러운 기분이 몰려들었다. 이곳에 오기 전 상상했던 풍경과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다. 베트남에 온 지 거의 3개월이 다 되었건만, 내가 본 아오자이(베트남 전통 의상)는 고급 베트남 레스토랑에서 서빙 하는 여성이 입은 옷뿐이었다. 심지어 씨클로(베트남 전통 교통수단)를 끄는 모습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하지만 민트색 헬멧과 점퍼를 입고 거리를 누비는 배민 라이더들은 하루에도 수십 명씩 보게 된다.

 

처음엔 베트남에 대한 환상을 배반한 한국 브랜드의 물결에 짜증도 났다. 하지만 점점 생각이 바뀌었다.

 

나의 호찌민행은 자발적으로 결정한 게 아니었다. 어느 날 갑자기 아내가 주재원 발령을 받게 돼 급하게 오게 된 것이다. 프로야구 선수가 갑자기 트레이드 돼 하루아침에 다른 팀으로 가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가끔 트레이드 소식을 접할 때마다 생각하곤 했다. 

 

‘저 선수는 하루아침에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다른 팀에 가는데 얼마나 청천벽력일까?’ 

 

그런데 만약 새로 이적한 팀에서 중고등학교 때 동기나 선후배처럼 친분이 있는 동료나 코치를 만나게 된다면 어떨까? 한결 마음이 편하지 않을까? 

 

한국 브랜드인 굽네치킨 앞을 배민라이더가 지나고 있다. 사진=김면중 제공


시간이 흐를수록 호찌민 땅에서 마주치는 한국 브랜드들이 그런 존재가 되어줬다. 아무 뜻도 모르는 베트남어 간판들의 홍수 속에서 길을 걷다가도 친숙한 한국 편의점이나 커피숍을 마주치면, ‘아, 그래도 완전 사막 한가운데 내던져진 건 아니구나’ 하는 안도의 심정이 들곤 한다. 실생활에서도 친숙한 우리 브랜드는 오아시스의 역할을 해주곤 한다.

 

얼마 전, 한국에서 가져온 ‘실탄’이 다 떨어졌다. 생활비로 준비해온 미국 달러를 다 쓴 것이다. 현지 계좌를 개설해 해외송금을 해야 용돈을 쓸 수 있게 된 상황.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베트남 은행에서 계좌를 개설하는 건 왠지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호찌민의 중심지인 1군(Quan·서울의 구 개념)에 가면 쉽게 계좌를 개설할 수 있다.

 

신한은행, 우리은행, 국민은행, 기업은행 등 국내 은행들의 베트남 지점이 몰려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한인타운인 푸미흥에 가면 더 쉬울 것이다. 심지어 이곳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모두 한국어가 능숙하다. 금리는 얼마이고, 앱은 어떻게 사용하는지 등을 우리말로 친절히 설명해주니 흐뭇한 미소가 지어질 정도다.  

 

가족이나 지인의 생일이라면 구글맵을 열어 파리바게트나 뚜레쥬르를 검색하면 쉽게 케이크를 사러 갈 수 있다. 아들이 “아빠, 오늘 저녁엔 치킨을 먹고 싶어”라고 조르면 ‘배민’ 앱을 열어 굽네치킨을 주문하면 금방 집 앞까지 배달해준다. 매일 먹던 베트남 쌀국수와 반미에 물려 갑자기 ‘고향의 맛’이 떠오를 때도 집 앞 GS25에서 김치볶음밥 도시락이나 떡볶이를 사오면 뚝딱 해결된다. 

 

베트남을 파고든 배민. 사진=김면중 제공


지금껏 내가 한국 브랜드 예찬론을 펼쳤다고 해서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기업이 한인을 타깃으로 운영된다고 생각하시면 곤란하다. 이들 회사의 타깃은 당연히 현지인이다. 그리고 실제 현지인들의 삶 속 깊숙이 파고들었다. 

 

집 앞에 고등학교가 하나 있는데 그 옆에 위치한 GS25는 항상 현지 학생들로 북적인다. 한국 편의점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곳은 엄청난 수의 테이블과 의자를 갖추었다는 점. 외부와 내부에 각각 20여명 정도가 앉을 수 있는 공간을 갖추고 있다. 테이블들은 젊은이들이 점령하고 있다. 

 

BTS 노래가 울려 퍼지는 공간에서 도시락을 먹으며 수다를 떠는 무리도 있고, 블랙핑크 얼굴이 새겨진 펩시를 마시며 공부하는 학생도 있다. 이 정도로 한국 편의점 문화는 호찌민 젊은이들의 일상 깊숙이 파고들었다. 마치 베트남 쌀국수가 한국 젊은이의 식문화에 정착한 것처럼 말이다.  

 

베트남 사람들의 일상을 파고든 한국 문화는 편의점만은 아니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케이팝 뮤직비디오가 나오는 세련된 떡볶이 가게나 한국식 찜질방에서 데이트를 즐긴다.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문을 닫은 곳이 많다. 이 도시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영화관 체인은 다름 아닌 롯데시네마다. 넷플릭스 앱을 열면 ‘오늘 베트남의 TOP 10 콘텐츠’ 섹션에는 ‘빈센조’ ‘낙원의 밤’ ‘구미호뎐’ ‘시지프스’가 1~4위를 차지하고 있다.

 

베트남 넷플릭스의 인기 상위 콘텐츠는 한국 드라마다. 사진=김면중 제공


무엇보다 한국어를 배우는 젊은이들이 급속도로 늘고 있다. 올해 초 한국어가 공식으로 베트남 교육과정에서 제2외국어로 지정됐다. 얼마 전 아들 유치원에 가려고 그랩(grab)으로 택시를 불렀는데 기사가 한국어로 말을 걸어와 깜짝 놀란 적도 있다.  

 

하늘거리는 아오자이를 휘날리며 거리를 걷는 베트남 여인들, 삿갓처럼 생긴 베트남 전통 모자를 쓴 상인들, 씨클로를 끄는 운전수들…. 한국에서 상상했던 호찌민 풍경은 환상이었고 고정관념이었다. 수십 년 전에는 그런 풍경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하루가 다르게 급성장하는 2021년의 호찌민 모습은 아니다. 

 

언젠가 역병이 물러가는 날이 오면 수많은 사람들이 이 도시를 찾아오겠지? 그땐 나처럼 환상에 젖어 이 도시의 풍경에 실망하지 않길 바란다. 오히려 한국, 일본, 태국 등 수많은 브랜드들이 구석구석을 수놓는 글로벌 도시의 진면목을 적극적으로 경험해 보길. 이런 모습이야 말로 '지금 여기’의 진짜배기 모습일 테니까. 

 

김면중은 신문기자로 사회생활에 입문, 남성패션지, 여행매거진 등 잡지기자로 일한 뒤 최근까지 아시아나항공 기내지 편집장으로 근무했다. 올해 초부터 전 세계에서 가장 빨리 성장하는 도시인 베트남 호찌민에 머물고 있다.​

김면중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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