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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랑] 신석기 시대에도 '불멍'이?! 서울 암사동 선사유적지

최대 규모 신석기 유적…신석기 상징 간석기, 토기 등 유적과 당시 움집 생활상 재현

2021.06.01(Tue) 09:18:39

[비즈한국] 경기도 전곡리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구석기 유적지라면 서울 암사동은 가장 유명한 신석기 유적지다. 서울에 있다는 사실도 유명세에 일조를 했을 테지만, 이곳은 지금까지 확인된 한반도의 신석기 시대 유적 가운데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수천 년 동안 잠자고 있던 유물들이 1925년의 기록적인 홍수 덕분에 우연히 발견된 것도 유명세를 더했다.

 

서울 암사동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신석기 유적지다. 전시관 바깥에는 신석기 시대 생활을 그대로 재현한 움집들이 있다. 사진=구완회 제공

 

#뾰족뾰족 뗀석기에서 맨질맨질 간석기로

 

지금부터 약 250만 년 전 호모 하빌리스(손쓴사람)가 처음으로 석기를 만들어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249만 년이 흐른 후 새로운 석기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산업혁명과 정보화혁명의 원조(?)인 ‘신석기혁명’이 바로 이 시기에 일어난 것이다.  

 

한반도 신석기 시대를 대표하는 서울 암사동 유적은 제1·2전시관과 야외 선사체험마을로 나뉘어 있다. 구석기와 신석기가 어떻게 다른지 알아보려면 우선 전시관으로 가야 한다. 거기에 전시되어 있는 돌도끼를 살펴보자. 전곡선사박물관의 주먹도끼는 돌을 떼어내 뾰족뾰족했는데, 이번 것은 갈아낸 듯 맨질맨질하다. 돌을 떼어서 만드는 석기를 ‘뗀석기’라 부르고, 갈아서 만든 석기를 ‘간석기’라고 부른다. 언뜻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이건 대단한 변화다. 뗀석기에서 간석기로 바뀌는 데 무려 249만 년이 걸린 셈이니까. 그래서 간석기를 새로운 석기, 즉 신석기라 하고 이때부터를 신석기 시대라 부르는 것이다. 

 

신석기 시대를 대표하는 빗살무늬토기. 사진=구완회 제공

 

신석기와 더불어 사용하기 시작한 토기는 사람들의 생활을 확 바꿔놓았다. 토기 덕분에 먹을 수 있는 식량이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신석기 시대의 대표적인 식량이 도토리다. 옛날부터 한반도에 지천이었던 도토리는 영양이 풍부하지만 ‘타닌’이란 성분 때문에 맛이 떫을 뿐 아니라 날로 먹으면 소화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토기에 넣고 물로 우려내거나 삶아서 타닌을 빼내면 훌륭한 음식이 되었다. 다른 음식물들도 삶거나 찌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살균이 되고 부드러워져 소화가 더 잘 되었고. 한마디로 토기 덕분에 식량이 늘고 영양이 좋아진 것이다. 

 

#신석기 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여기다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부터 사람들의 생활은 그야말로 혁명적으로 변화했다. 식량과 인구가 늘어났을 뿐 아니라, 더 이상 돌아다니지 않고 한 곳에 정착해 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디든 정착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아직은 기술이 부족해 농사짓기도 편하고 물고기가 풍부한 강이나 바닷가에 자리를 잡았다. 정착생활을 시작하니 집이 필요해졌다. 구석기 시대 사람들이 주로 동굴에서 살았던 것은 집 짓는 기술이 부족하기도 했지만 어차피 곧 옮겨야 하니까 굳이 애를 써서 집을 지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암사동선사유적지 바로 옆에는 한강이 있고, 이곳에선 많은 움집터들이 발견되었다. 

 

전시관에는 신석기 시대 마을을 재현한 모형이 보인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원뿔 모양으로 생긴 움집. 그 앞으로는 조그만 강이 흐르고 있다. 움집 옆의 사람들이 넓적한 돌 위에 둥그런 방망이 모양의 돌로 무언가를 열심히 갈고 있다. 이것들의 이름은 ‘갈판과 갈돌’. 갈판 위에 도토리 같은 것을 놓고 갈돌로 갈아서 가루를 내어 먹었다. 

 

신석기 시대 유물이 전시된 전시관 내부. 사진=구완회 제공

 

마을 구경을 했으니 이번에는 움집 속을 들여다볼까? 전시관을 나와 바깥으로 나가면 신석기 시대 생활을 그대로 재현한 움집들이 있다. 그 중 한 곳은 들어가서 내부를 살펴볼 수도 있다. 움집의 입구는 머리를 숙여야 겨우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좁은데, 내부는 제법 널찍하다. 땅을 1m쯤 파고 그 위에 집을 지었기 때문에 더 넓어 보이는 것이다. 이렇게 해야 두꺼운 벽이 없어도 바람을 피할 수 있고, 내부의 온기가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시대에는 아직 두꺼운 벽을 만들 수 있을 만큼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으니까. 

 

‘움집’이란 ‘땅을 파고 지은 집’이란 뜻이다. 집 가운데 나무를 쌓아 불을 피워 놓고 사람들이 둘러 앉아 있다. 실제로 암사동에서 발견된 움집에는 가운데 불을 피웠던 흔적이 남아 있었단다. 거기다 음식을 저장했던 구멍, 기둥을 세웠던 구멍도 있었고. 아마도 신석기 시대 사람들은 이처럼 가운데 불을 피워 놓고 둘러 앉아 시간을 보내지 않았을까? 요즘 캠핑장에서 유행한다는 ‘불멍(불을 보며 멍 때리기)’은 신석기 시대부터의 풍습일 수도 있겠다. 

 

신석기 시대 마을을 재현한 모형. 원뿔 모양으로 생긴 움집 앞으로 조그만 강이 흐르고 있다. 사진=구완회 제공

 

움집 내부 모형. 가운데 불을 피우는 곳과 음식을 저장하는 구멍, 기둥을 세운 구멍도 있다. 사진=구완회 제공

 

<여행메모> 

 

서울 암사동 유적

△위치: 서울시 강동구 올림픽로 875

△문의: 02-3425-6520

△이용시간: 09:30~18:00, 매주 월요일, 1월 1일 휴관

 

필자 구완회는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여성중앙’, ‘프라이데이’ 등에서 기자로 일했다. 랜덤하우스코리아 여행출판팀장으로 ‘세계를 간다’, ‘100배 즐기기’ 등의 여행 가이드북 시리즈를 총괄했다. 지금은 두 아이를 키우며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역사와 여행 이야기를 쓰고 있다.​​​​​​​​​​​​

구완회 여행작가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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