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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그룹 신년사로 본 올해 한국 경제 핵심 키워드

위기는 상수, 체질 재배치로 새로운 시장 규칙 제시해야…AI, 선언을 넘어 적극적 실행 '주문'

2026.01.02(Fri) 14:52:34

[비즈한국] 주요 그룹 신년사에서 ‘위기’가 언급되지 않은 해는 거의 없었다. 글로벌 경기 둔화, 지정학 리스크, 기술 혁신은 매년 반복된 단골 키워드다. 2026년 새해를 맞아 나온 재계 신년사 역시 이 같은 인식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올해는 위기를 다루는 방식 자체가 달라졌다. 위기를 강조하면서도 그 결론이 ‘경계’나 ‘대비’에 머물지 않고, 더 과감한 혁신과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2026년 주요 그룹 신년사는 위기를 일시적 변수로 보지 않고 상수로 받아들이며, 경기 전망보다 기업 체질의 재배치와 선택의 문제를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 사진=생성형 AI

 

주요 그룹 총수들의 신년사를 종합하면, 올해 한국 경제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불확실한 경기 전망이 아니다. 불확실성은 이미 고정된 조건으로 받아들여졌고, 그 위에서 기업 체질을 어떻게 다시 배치할 것인가가 중심 키워드로 떠올랐다. 또한 위기를 극복해야 할 사건이 아니라 전제로 놓고 설계를 다시 짜야 할 환경으로 인식했다는 점에서, 우리 경제가 올해 직면한 문제와 도전 과제를 짐작케한다.

#위기는 ‘외부 변수’가 아닌 ‘내부서 극복해야 할 상수’

올해 신년사에서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변화는 위기의 책임을 외부로 돌리지 않는 태도다. 경기, 금리, 환율을 언급하되 설명에 그치지 않고 내부 선택의 문제로 화살을 돌렸다.

허태수 GS 회장이 기존 사업의 경쟁력을 먼저 점검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면에 둔 점, 신동빈 롯데 회장이 불확실성을 핑계로 삼지 말고 핵심 사업의 체질부터 바꾸라고 주문한 흐름, 장인화 포스코 회장이 위기 대신 ‘대전환’이라는 표현을 선택한 판단은 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이는 위기를 일시적 충격으로 보지 않고, 지속되는 조건으로 전제한 뒤 그 안에서의 생존 전략을 묻고 있다는 점이 동일하다.

이 같은 인식은 재계 전반에서 공통적으로 확인된다. 외부 환경을 탓하는 국면은 이미 지났고, 이제는 내부 구조와 실행력이 경쟁력을 좌우한다는 판단이 신년사 전반에 깔려 있다. 한마디로 위기는 더 이상 면책 사유가 아니라는 얘기다.

#성장 문법 교체…‘확장’에서 ‘재조립’으로

성장에 대한 접근 방식도 분명히 달라졌다. 과거 고성장기를 떠받쳤던 ‘목표 달성’이나 ‘초격차’ 등과 같은 단어는 신년사에서 더 이상 언급되지 않는다. 대신 이미 가진 사업과 자산을 어떻게 다시 엮고, 시장의 규칙을 새로 만들 것인가가 성장의 조건으로 새롭게 제시됐다.

정용진 신세계 회장이 2026년을 다시 성장의 해로 규정하면서도 성장 방식의 전환을 강조한 점, 구광모 LG 회장이 기존 성공 공식의 유효기간이 끝났다는 판단을 전제로 새로운 혁신을 요구한 흐름은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성장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와 같은 방식의 성장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 공통된 인식이다.

손경식 CJ 회장이 기존 문법으로 준비한 전략이 무력화될 수 있음을 경고한 대목도 같은 맥락이다. 규모와 속도 중심의 관성에서 벗어나 기술·데이터·콘텐츠 중심으로 기업 구조를 재편하지 않으면 생존이 어렵다는 판단이다. 정기선 HD현대 회장이 주력 사업 전반에 대한 선제적 사업 재편을 언급한 것도, 새 산업을 하나 더 얹기보다 포트폴리오 자체를 다시 짜겠다는 선택으로 읽힌다. 이러한 흐름은 한국 경제가 ‘얼마나 키울 것인가’보다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버릴 것인가’의 단계로 넘어갔음을 보여준다.

#AI, 이제는 선언이 아닌 실행의 영역

2026년 신년사에서 가장 현실적인 키워드는 단연 AI다. 다만 AI를 다루는 방식은 이전과 확연히 다르다. 기술 도입이나 준비를 넘어, 실제 비즈니스 구조와 손익에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가 전면에 등장한다.

노태문 삼성전자 사장이 AI 전환을 사고방식과 업무 프로세스 전반의 변화로 규정한 점은 상징적이다. AI를 연구개발 보조 수단이 아니라 제조·영업·서비스 전반의 생산성 기준으로 재정의하려는 시도다. 이는 AI 활용 여부가 아니라, AI를 통해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가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단계로 접어들었음을 의미한다.

최태원 SK 회장이 AI를 수출 경쟁력과 연결한 것도 같은 흐름이다. AI 반도체를 넘어 서비스까지 엮은 생태계를 통해 글로벌 시장에서 신뢰를 확보하겠다는 전략은, AI를 투자 테마가 아닌 실질적인 수출 자산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허태수 GS 회장이 AI의 ‘비즈니스 임팩트’를 강조하며 현장 중심의 적용을 주문한 것도, 기술이 아닌 결과를 요구하는 신호로 해석된다.

김승연 한화 회장은 AI를 방산과 결합한 핵심 기술로 바라보면서도, 기술 속도전 속에서 안전과 책임을 별도의 축으로 분리했다. 성과보다 신뢰와 지속 가능성이 중요하다는 판단이다. 기술 전환이 가속화될수록, 안전과 책임은 비용이 아니라 생존 조건으로 격상되고 있다는 인식이 눈길을 끈다.

2026년 주요 그룹의 신년사는 한국 경제가 ‘경기 예측’의 국면을 지나 ‘체질 재배치’의 단계로 이동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올해의 성패는 경제성장률 수치보다, 바뀐 환경에서 기업들이 얼마나 빠르게 기존 성공 방식을 내려놓고 새로운 수익 구조를 설계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에 따라 올해 한국 경제의 가능성은 외부 환경이 아니라, 각 기업이 어떤 선택을 하고 그것을 얼마나 집요하게 실행하느냐에 의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봉성창 기자

bong@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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