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바로가기 본문바로가기
전체메뉴
HOME > Story↑Up > 스타일

[디자인 와이너리] 선거 포스터에 보수도 진보도 없는 까닭

정당별 특색 드러나지 않고 다양성 부족…15년 이상 유지되는 디자인 정체성 '기대'

2024.04.11(Thu) 11:36:28

[비즈한국] 제 22대 국회의원선거가 모두 마무리됐다. 보수와 진보를 대표하는 양당인 국민의힘, 더불어민주당을 제외하고도 국민의미래, 새로운미래, 녹색정의당,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당과 후보자가 저마다 내세운 비전과 정책으로 국민의 심판을 받았다. 각 당의 성향과 인적 구성은 많이 다르지만 시각 디자인 관점에서 보면 그렇지 않다. 일관성 결여의 측면에서 보수・진보의 구분이 없다고 해도 좋을 정도다.


그런 느낌이 드는 가장 큰 이유는 선거 포스터와 현수막에 사용된 서체와 로고타입에 정당별 특색과 기준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저 주목성 높은 두꺼운 고딕을 기준 없이 섞어 쓸 뿐이다. 예를 들어 우파를 표방하는 보수정당이라면 강력하고 묵직한 고딕이나 두꺼운 명조로 전통과 권위를 강조할 수 있다. 반면 약자와의 동행이나 사회 복지를 중시하는 진보정당은 가벼우면서도 세련된 터치를 지닌 글자로 지향성을 드러낼 수 있다.

각 정당 별 포스터나 현수막 디자인을 살펴보면 천편일률적인 서체 사용과 디자인 정체성 측면에서 차별화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사진=한동훈 제공


물론 이것은 1차원적인 예시로서 반대되는 방향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다만 정치 철학과 비주얼 아이덴티티 그중에서도 타이포그래피가 크게 연결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이것은 홍보물 디자인 실무에 전문 디자이너의 참여가 저조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최근 몇 년간 발표된 정당 로고타입은 기성 폰트의 외곽선을 변형한 쪽과 아예 처음 그린 쪽 두 가지인데 둘 다 어색하다. 특히 개혁신당의 경우처럼, 획 수가 글자마다 다양한 한글 내부 공간 처리에 실패하여 바깥쪽으로 불규칙하게 돌출되고도 그것이 디자인의 일환인 양 인식되는 로고타입은 이제 그만 보고 싶다.

다양성 부족의 원인은 문구 사용이 기성 폰트에 국한되는 점에서도 찾을 수 있다. 선거 포스터에 기성 폰트 대신 특정 후보를 위해 제작한 개성적인 레터링을 쓰면 후보의 모습과 공약을 돋보이게 할 수 있다. 이런 방법은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한 녹색당 신지예 후보가 시도했고 후에 진보당의 포스터에서도 조금씩 보였다.

지금까지 이어지는 정치 체제의 기틀이 잡힌 시기는 1987년 헌법 개정 때다. 87년 말 치러진 대통령 선거는 민주정의당, 통일민주당, 평화민주당이 경쟁하는 구도였다. 이 해의 홍보물 디자인을 보면 정당명과 후보명을 적은 로고타입도 3명의 후보만큼이나 뚜렷한 개성을 지닌다. 소위 ‘87년 체제’로 불리는 현 체제 개막이 40년을 향해 가는 지금, 정치 풍토와 더불어 선거 관련 비주얼은 얼마나 발전했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관련 디자인에 타이포그래피가 강조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정돈된 타이포그래피로 주요 지지층의 투표 성향이 달라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 정당의 수명이 너무 짧은 탓도 있다. 언제 경영위기가 올 지 모르는 사기업보다도 체감상 훨씬 짧은 것 같다. 크고 작은 이해관계에 따른 잦은 합종연횡도 짧은 수명을 부채질한다. 중심이 잡히지 않은 환경에서는 제대로 된 서체를 개발・활용하기 어렵다.

각자의 정치색을 드러낸 로고타입과 고유의 서체 사용 가이드라인을 따른 선거 홍보물이 늘어나는 풍경을, 그리고 한번 잡힌 방향이 손바닥 뒤집듯 바뀌지 않고 최소 15년 이상은 유지되는 풍경을 보고 싶다. 정당 지향점을 명확히 드러낸 디자인으로 상대방의 핵심 지지층을 끌어올 수는 없지만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하는 중도층에는 충분히 어필할 수 있다고 본다. 미래 선거엔 당선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 중 하나로 홍보물 디자인의 타이포그래피가 꼽히는 선진적인 환경을 기대해 본다.​

 

​​​필자 한동훈은?

서체 디자이너. 글을 쓰고, 글씨를 쓰고, 글자를 설계하고 가르치는 등 글자와 관련된 모든 분야에 관심이 있다. 현재 서체 스튜디오 얼라인타입에서 다양한 기업 전용폰트와 일반 판매용 폰트를 디자인한다. ‘월간 디자인’​, 계간 ‘디자인 평론’​​등에 기고했으며 온·오프라인 플랫폼에서 서체 디자인 강의를 진행한다. 2021년 에세이집 ‘글자 속의 우주’​를 출간했다.​​

한동훈 서체 디자이너 writer@bizhankook.com


[핫클릭]

· [디자인 와이너리] 꿈과 낭만이 가득한 '무비랜드를 찾아서'
· [디자인 와이너리] '자동차 디자인 거장' 마르첼로 간디니를 추모하며
· [디자인 와이너리] '갤럭시 링'이 추구해야 할 반지 디자인의 방향성
· [디자인 와이너리] 서울시 마스코트 '해치'의 정체성은 누가 해쳤나
· [디자인 와이너리] "무난하지만 2% 아쉬운" SSG 랜더스 BI 리뉴얼


<저작권자 ⓒ 비즈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