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2011년 6월 25일 허블 우주 망원경의 눈은 해왕성을 향했다. 아래 사진이 촬영되기 5년 전 명왕성이 태양계 행성의 지위를 잃었기 때문에, 이미 해왕성이 공식적인 태양계 가장 마지막 행성이었다. 해왕성은 이제 태양계를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만나는 최후의 행성, 최후의 관문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사실 태양계는 해왕성 너머에도 계속 이어진다. 해왕성 너머에도 훨씬 작은 소천체들이 바글바글하다. 생각보다 엄청나게 많다. 특히 해왕성 궤도를 갓 넘어갔을 때부터 그 바깥에서 크게 찌그러진 타원 궤도를 그리며 도는 소천체가 연이어 발견됐다. 이러한 천체를 해왕성 주변 천체(TNO)라고 부른다. TNO는 지금까지 발견된 수만 3000개를 넘는다. 작게는 태양-지구 사이 거리의 100배 거리에서부터 멀게는 200~300배 거리에 이르기까지, 아주 크게 찌그러진 특징적인 타원 궤도를 그린다.
한때 TNO의 타원 궤도가 유독 한쪽으로 쏠려 분포한다는 사실이 발견됐다. TNO들이 무작위로 분포할 거라 생각한 예상과는 다른 어색한 분포였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일부 천문학자들은 TNO의 궤도가 쏠리지 않은 정반대 쪽에 아직 발견되지 않은 아홉 번째 행성이 숨어 있을지 모른다는 가능성을 제기했다. 명왕성처럼 애매한 수준이 아니라 천왕성, 해왕성 정도로 누가 봐도 명백히 행성으로 인정할 만한 덩치 큰 행성이 하나 더 숨어 있다는 주장이었다. 하필이면 명왕성이 행성에서 쫓겨나는 계기를 마련한 천문학자, 일명 ‘플루토 킬러’ 마이크 브라운이 이런 주장을 한 터라 더 많이 주목받았다.
어둠 속을 헤매며 태양계 ‘진짜’ 마지막 행성을 찾는 천문학자들의 사냥은 지금도 끝나지 않았다. 아직까지 아홉 번째 행성은 확인되지 않았다. 어쩌면 아예 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닐까?
최근 이에 대해 아주 흥미로운 분석 결과가 나왔다. 어쩌면 우리 태양계가 지금 같은 모습이 된 데에는 아홉 번째 행성이 아니라 다른 진짜 이유가 따로 있을지 모른다. 태양계가 갓 만들어진 직후, 얼마 지나지 않아 거의 태양만 한 별 하나가 태양계 안쪽까지 깊게 들어와 우리 곁을 스쳐지나갔을 가능성이다.
지금까지 발견된 TNO는 크게 세 그룹으로 구분된다. 우선 해왕성 궤도 안팎에서 거의 완벽한 원에 가까운 궤도를 그리는 카이퍼 벨트에 속한 천체들이 있다. 두 번째로 훨씬 크게 찌그러진 타원 궤도를 그리며 해왕성 궤도 안과 밖을 크게 넘나드는 천체들이 있는데, 대표적인 게 세드나다. 그리고 마치 혜성처럼 60도 가까이 아주 크게 기울어진 궤도를 그리는 경우도 있다.
TNO들도 어쨌든 태양 중력에 붙잡힌 태양계 멤버들이다. 다만 너무나 외곽에 떨어져 있다 보니 순수하게 태양 중력 영향만 받지 않는다. 이들의 궤도는 태양뿐 아니라 태양계 바깥, 어둠 속에 숨어 있을지 모르는 다른 천체들의 영향도 함께 받는다. 따라서 이들의 궤도가 어떻게 분포하는가는 어둠 너머에 누가 어디에 숨어있을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길잡이가 된다.
천문학자들은 우리 태양계가 과거에 다른 별과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서 서로 스쳐지나가는 일종의 플라이 바이를 경험했을 가능성을 고민했다. 사실 별과 별이 서로 가까이서 스쳐 지나가는 건 굉장히 흔하게 벌어진다. 아무리 별의 밀도가 낮고 휑한 텅 빈 성단이라도 전체 별들 중에서 별끼리 플라이 바이를 하는 경우가 1% 이상은 벌어진다. 모든 별은 다른 별과 서로 인기척을 느낄 수밖에 없다. 한 번 태어나서 우주에서 사라질 때까지 평생 그 어떤 다른 별과 아무런 상호작용을 주고받지 않고 외롭게 살다 가는 별은 없다.
천문학자들은 오늘날 태양계에서 발견되는 TNO들의 궤도를 재현할 수 있는지, 아주 많은 시뮬레이션을 계산하고 그 결과를 비교했다. 결과는 굉장히 흥미롭다.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우리 태양 질량의 80% 정도 되는 살짝 가벼운 별이 우리 태양으로부터 100AU 정도 거리를 두고 근처를 지나갔다고 가정했을 때 지금 태양계의 모습을 가장 잘 재현한다. 100AU 정도 거리면 현재 태양-해왕성 사이 거리의 네 배보다 살짝 작다. 오늘날 태양을 중심으로 크게 찌그러진 기다란 타원 궤도를 그리는 TNO의 궤도 범위 안에 들어오는 수준이다. 약 165억 km다. 해왕성 궤도 너머 태양계 바깥으로 떠나가던 보이저 탐사선이 지구를 찍은 ‘창백한 푸른 점’ 사진이 지구에서 약 60억 km 떨어져서 찍은 것이다. 165억 km라면 창백한 푸른 점 사진을 찍을 당시 보이저가 자리한 거리의 2~3배 정도라고 볼 수 있다. 이 정도면 별이 태양계 곁을 스쳐지나갔다기보다는 사실상 태양계 안쪽으로 한 번 쑥 들어왔다가 나갔다고 볼 수 있을 정도다. 우리 태양계가 형성되고 나서 겨우 1000만 년밖에 지나지 않았을 아주 극초반에 두 별의 조우가 벌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과거 태양계 깊숙이 찾아왔던 별과의 중력적 상호작용은 태양 곁을 맴돌던 행성과 소행성, 소천체의 궤도에 큰 변화를 일으켰다. 특히 태양계 가장자리를 맴돌던 소천체들의 궤도는 크게 요동치며 길게 찌그러진 타원으로 변했고, 궤도 기울기도 심하게 기울어졌다. 단순히 아홉 번째 행성만 가정했을 때에 비해서 현재 태양계 가장자리 소천체들의 분포를 훨씬 잘 설명한다.
이러한 두 별의 플라이바이는 태양계 가장자리뿐 아니라 좀 더 안쪽에도 다양한 연쇄작용을 일으켰을 것이다. 지금도 목성과 토성 등 거대 가스 행성 주변 위성들을 보면 일부 다른 위성들과 달리 정반대로 역주행을 하면서 공전하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위성들은 중심의 행성이 처음 탄생할 때부터 함께 만들어진 존재라고 보기 어렵다. 대신 나중에 외부에서 사로잡힌 위성으로 볼 수 있다.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전체 TNO 중에서 7% 정도가 태양계 안쪽에 끌려들어온다. 태양계 가까이 다른 별이 지나가는 과정에서 태양계 가장자리에 있던 많은 소천체들이 태양계 안쪽으로 더 깊게 끌려들어왔다가 목성과 토성의 중력에 사로잡히고 역주행하거나 크게 기울어진 궤도를 그리는 위성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일부 천문학자들은 한 발짝 더 나아가 두 별의 우연한 근접 조우가 우리 지구에 특별한 행운으로 작용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현재 우리 주변에 거대한 달이 존재하게 해준 거대 충돌의 이유가 될 수도 있다. 또 태양계 최외곽 차가운 가장자리를 떠돌던 얼음 천체들이 대거 지구를 비롯한 태양계 안쪽으로 쏟아지면서 얼어 있던 물과 유기 물질을 공급해주는 중요한 사건의 계기가 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많은 천문학자들은 이제 지구 생명체의 기원을 지구에서만 찾는 게 아니라 소행성이나 혜성 등 얼음 천체에 얼어붙어 있던 외계 물질이 지구에 날아와 공급되었을 가능성까지 모두 열어두고 고민하고 있다.
현재 우리 태양계 바깥 가장 가까운 별은 빛의 속도로 약 4.2년을 가면 닿을 수 있는 프록시마 센타우리다. 태양을 비롯해 주변의 별들도 우주에 가만히 고정되어 있지 않다. 서로 조금씩 다른 방향과 속도로 우리 은하 공간을 누비고 있다. 그래서 시기에 따라 각 별 사이의 거리도 조금씩 달라지고, 태양계에서 가장 가까운 별도 달라진다. 앞으로 약 4만 년 정도가 지나면 우리와 제일 가까운 별이었던 프록시마 센타우리는 살짝 멀어지고, 그 사이 Ross 248이라는 별이 제일 가까이로 다가온다. 이때가 되면 이 별은 태양계로부터 거의 3광년 안팎까지 접근하게 된다. 그러는 동안 이미 오래전 태양계 바깥으로 떠난 보이저도 우주 공간을 누비며 다른 별 곁을 지나가게 된다. 앞으로 4만~5만 년 정도가 흐르면 보이저 1호는 글리제 445라는 별 곁을 거의 1광년 거리에서 곁을 지나가게 된다. 그때가 되면 인류가 만든 보이저 1호에서 가장 가까운 별은 처음으로 우리 태양이 아닌 다른 별이 될 것이다.
현재 우리 태양은 별다른 성단에 속하지 않은 외톨이 별이다. 우주의 절반 가까이가 곁에 동반성을 거느리고 있는 쌍성이건만, 불쌍한 우리 태양은 곁에 아무도 없다. 하지만 그동안 다른 어떤 별과도 상호작용을 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옷깃만 스쳐지나가는 비교적 가벼운 상호작용이라도 우리 태양 역시 오래전부터 꾸준히 주고받았을 것이다. 오늘날 태양계 가장자리에서 발견되는 크게 찌그러진 TNO들, 소천체들의 분포는 우리 태양도 분명 우주의 수많은 존재들과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외롭지 않은 존재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우주론적 인식이라는 말이 있다. 우주에서 보이는 모든 것들이 보이지 않는 것들의 영향을 받으며, 알려진 모든 것들이 아직 알려지지 않은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태양계 가장자리 천체를 보며 그 너머 성간 우주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지를 상상한다. 태양계라는 거대한 울타리 너머 그 바깥 세계와 우리가 분명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해나가고 있다.
참고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50-024-02349-x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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