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세계 2위 스테이블코인 USDC 발행사 서클의 히스 타버트 사장이 방한하면서 가상자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최근 국정기획위원회가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 가상자산 현물 ETF와 스테이블코인 규제 내용을 포함하면서, 그동안 제도권 밖에 머물던 가상자산이 점차 금융 인프라 속으로 편입되는 흐름이 가속화될 전망이다.
가상자산 시장에서 가장 주목받는 키워드 중 하나는 ‘한국형 비트코인 현물 ETF 도입’이다. 지난해 1월 미국에서 현물 ETF가 출시되자 가상자산 투자에 대한 인식은 근본적으로 달라지고 있다. 그동안 가상자산은 개인 투자자 위주로 거래되며 투기적 성격이 강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러나 ETF라는 제도권 상품을 통해 대형 기관 자금이 직접 시장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같은 날 동시에 출시된 11종 ETF의 시가총액은 지난달 말 기준 1520억 달러에 달했으며, 블랙록의 ‘IBIT’는 출시 50일 만에 100억 달러를 돌파했다. 이는 금 ETF(GLD)가 같은 규모에 도달하는 데 27개월, 나스닥 100 추종 ETF(QQQ)가 9개월 이상 걸린 것과 비교해도 기록적인 속도다. 이처럼 가상자산 현물 ETF 도입은 가상자산 시장의 체질을 바꾸고 있다.

국내에서도 현물 ETF가 도입될 경우 파급력은 작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김진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K-비트코인 현물 ETF가 출시된다면 우리나라도 ETF 시장 확장은 물론, 글로벌 스탠다드에 준하는 가상자산 인프라 구축, 투자 저변 확대, K-프리미엄 완화, 자본시장 혁신 가속 등을 기대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법과 제도적 장벽이 여전히 높은 상황이다. 비트코인을 기초자산과 신탁재산으로 인정하려면 자본시장법 개정이 필요하고, 금융회사의 가상자산 참여도 허용돼야 한다. 현재 개인 투자자는 업비트나 빗썸과 같은 민간 거래소를 통해 직접 매매할 수 있다. 그러나 기관 투자자는 가상자산이 ‘금융투자상품’으로 분류되지 않기 때문에 직접 투자나 보유가 불가능하다. 결국 법·제도 정비 없이는 한국형 비트코인 현물 ETF가 현실화되기 어렵다.
김진영 연구원은 “현물 ETF에 앞서 블록체인이나 스테이블코인과 관련한 주식형 ETF와 선물 ETF가 단계적으로 도입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며 “기술적 인프라 구축을 거쳐 현물 ETF가 출시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와 함께 스테이블코인도 또 다른 화두다. 스테이블코인은 가격 변동성이 큰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과 달리 달러처럼 법정화폐나 금 등 실물 자산에 가치를 연동해 1코인=1달러 수준을 유지하도록 설계된 가상자산이다. 가령 사용자가 100달러를 발행사에 보내면 발행사는 100달러를 예치한 뒤, 사용자에게 100달러 규모의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해주는 방식이다. 이러한 안정성을 바탕으로 송금·결제 등 실생활에도 활용할 수 있고, 가상자산 시장에서는 달러 대체 통화처럼 거래의 기준이 된다.
미국에서는 이미 스테이블코인 관련 법안인 지니어스법이 통과됐고, 국내에서도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만약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국내 결제·송금 수단으로 자리 잡을 경우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에 영향을 줄 수 있어 원화 기반의 스테이블코인을 제도적으로 관리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스테이블코인이 금융 시장에 안착하면 영향력은 단순 결제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부동산·미술품 등 비유동 자산을 쪼개 거래하는 ‘토큰화 금융’과 결합해 소액 투자자들의 접근성을 높일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더 나아가 디파이(DeFi·탈중앙화 금융) 시장에서도 새로운 활용 모델이 열릴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예를 들어 토큰화된 자산을 디파이에 담보로 맡기고 이를 바탕으로 스테이블코인을 대출받게 될 수도 있다. 해외에서는 이미 이러한 흐름이 나타나고 있으며, 제도권과 블록체인 금융이 결합하는 실험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국내 상황은 조금 다르다. 국내는 아직 디파이 시장이 충분히 형성되지 않았고, 기존 결제·송금 인프라도 편리해 소비자들이 굳이 스테이블코인을 선택할 이유가 부족하다. 이에 따라 안정적인 수요를 창출할 만한 경제적 유인과 신뢰 확보 장치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연착륙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가상자산은 단순 투기 대상에서 제도권 금융 인프라의 일부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가상자산 현물 ETF, 스테이블코인, 자산 토큰화라는 세 가지 흐름이 맞물릴 경우, 개인 투자자의 투자 환경과 금융 인프라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이 변화가 진정한 혁신으로 이어지려면 법·제도 정비, 시장 성숙, 소비자 수요라는 세 박자가 맞아떨어져야 한다. 개인 투자자라면 단기적인 가격 변동에만 매몰되기보다는 가상자산이 금융 시스템 속에서 어떤 구조적 변화를 만들어내는지 긴 안목으로 지켜볼 필요가 있다.
김세아 금융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핫클릭]
·
[가장 보통의 투자] "샤넬백보다 낫네" 명품 살 돈으로 '명품주' 사볼까
·
[가장 보통의 투자] 서학개미 최애주 테슬라와 팔란티어 "이제라도 들어갈까?"
·
[가장 보통의 투자] "내용보다 방향이 문제" 세제 개편안이 부른 증시 급락
·
[가장 보통의 투자] 상승장이 주는 묘한 불안감 막아주는 '옵션 ETF'
·
[가장 보통의 투자] '케이팝 데몬 헌터스' 열풍, K-콘텐츠 주가도 'up, up, u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