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2025년 제61회 백상예술대상에서 나온 이른바 ‘최초’의 기록은 충분히 주목할 만했다. 홍경표 촬영감독과 예능프로그램 ‘흑백요리사’가 각각 영화부문과 방송부문 대상을 받았다. 예능이라고 차별하지 않는다는 세간의 평가가 확인된 셈이다. 국내 방송사가 아닌 글로벌 OTT 넷플릭스의 작품도 배제하지 않았다. 같은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가 대상을 못 받고 아이유와 박보검도 수상하지 못해 팬들이 불만을 표출했으나 작가상과 드라마 작품상을 받았으니 크게 안타까울 일은 아니다.
그런데 정작 ‘흑백요리사’가 대상을 받을 만한 작품인지를 두고는 그다지 논쟁이 벌어지지 않았다. 백상 시상식 다음 날, ‘흑백요리사’ 심사위원이었던 백종원 대표가 모든 방송 활동을 그만두겠다고 발표했고, ‘흑백요리사 시즌 2’ 공개도 예정된 상황인데 말이다. 어쩌면 이것이 백상예술대상의 정체성이자 한계다. 그동안 보여준 차별성이 스스로를 옭아맬 수도 있다.

상대적으로 지상파 시상식은 너무 많고 나눠 먹기 식이어서 공신력과 권위가 많이 떨어진 반면 케이블과 OTT에는 아직 변변한 시상식이 없다. 그렇기에 백상예술대상의 공신력이 더 높아진 감이 있다. 공신력과 권위가 올라간다고 해서 대중의 주목을 더 받는 것은 아니다. 그 공신력과 권위를 치열한 경쟁률이 담보해주는 것도 아닐 것이다. 백상예술대상은 무한 경쟁이 특징인데 그 치열한 경쟁 속에서 최종 수상은 하나만 가능하다. 그것도 작품이 될 수도 있고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올해만 해도 공동 대상에서 하나는 사람이고, 하나는 프로그램이었다.
사실 ‘흑백요리사’와 백상예술대상은 공통점이 있다. 여건과 상황을 가리지 않는 무한 경쟁 방식이다. 특히 이번에 이름을 바꾼 방송 부문은 지상파, 종편, 케이블, OTT를 가리지 않는다. 예능은 인터넷, 유튜브를 막론하고 지상파, 케이블, OTT 등이 똑같이 경쟁 자격을 갖는다. 유명, 무명 요리사를 막론하고 계급장 떼고 붙는다는 ‘흑백요리사’와 닮았다.
‘흑백요리사’는 오로지 맛으로 승부한다는 핵심적인 평가 원칙을 내세웠다. 백상예술대상은 대중적인 결과를 중시한다. 결국 입맛 당기는 요리를 누가 잘 만드는가와 닮았다. 그 요리는 식당에서 파는 음식이다. 바로 요식업에 해당된다. 하지만 셰프가 곧 요식업 경영자일 수는 없다. 이런 성과와 결과 측면에서 가장 맞춤한 이가 백종원 대표였던 것이다. 그가 심사위원에 포함된 이유일 것이다.
그런데 시청자들은 맛있는 음식만을 원하지는 않는다. 공정 무역이나 ESG 경영 등 음식을 생산하는 과정과 운영도 중요하다. 음식에 들어가는 식재료가 건강한 것은 물론 만드는 이가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식당을 공정하게 관리 운영하며, 고객을 제대로 대우하는 것도 중요시한다. 또 방송에 나온 식당을 찾아가는 시청자들의 소비 행태를 간과하거나 모른 체해서는 안 된다. 실제로 ‘흑백요리사’에 등장한 이들의 식당에서 나중에 문제가 불거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점은 ‘흑백요리사’에서 평가 대상이 아니었다.
자세히 뜯어보면, ‘흑백요리사’는 넷플릭스라는 세계적인 거대 식당에서 히트한 상품이다. 세계적으로 크게 히트했기에 높이 평가되는데, 아마도 실력으로 승부를 벌인 끝에 유명하지 않은 셰프가 승리한 것이 극적인 재미까지 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실력만을 최종 평가 기준으로 삼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흑백요리사’는 결과로만 승부를 벌이는 포맷이 가진 역설을 간과했다. 그것이 바로 백종원 대표가 한국에서 방송을 통해 신화적 인물이 되고 문어발식 독과점적 경영과 관련한 여러 가지 불법이나 편법적인 행위들이 간과된 배경이라고 할 수 있다. 요식업자인 백종원 대표도 온갖 방송에서 실력 있는 요리사로 일컫었지만, 백종원 대표에게 불거진 각종 논란과 범죄 혐의는 현재의 심각한 위기를 낳았을 뿐이다. 방송 프로그램에서 보인 승리와 신화가 현실과 매우 달랐기에 벌어진 위기였다.

그 연장선에서 백종원 대표가 ‘흑백요리사’의 심사위원으로 공신력을 가졌는지도 의구심이 일었다. ‘흑백요리사’의 구체적인 내용을 짚어보면, 최종 우승자가 파이널 라운드에 진출할 수 있었던 것은 게국지 기반의 요리 때문인데, 그가 게국지를 제대로 알고 만들었는지 의심스러웠다. 심사위원 아무도 그것을 간파하지 못했다. 본래의 게국지를 아무도 먹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진짜 게국지를 먹거나 만들어본 사람이 심사했어야 한다. 백종원을 포함한 단 두 사람의 심사위원이 모든 요리를 평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더구나 요식업 전문가가 과연 요리 그 자체를 얼마나 평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모든 평가 기준은 시청시간 세계 1위라는 결과에 포획되었고 백상예술대상도 마찬가지인 셈이다.
백상예술대상은 결국 콘텐츠 자체를 무한 경쟁 속에서 선정할 때 어떤 부작용이 있는지 잘 보여준 셈이 되었다. 음식을 만드는 과정과 그 음식을 어떻게 전달하는지가 매우 중요한 만큼 방송 콘텐츠도 당연히 그래야 한다. 공영방송이 25개 프랜차이즈 요식업체 대표를 방송에 출연시키면서 가맹점주의 눈물을 전혀 고려하지 않을 수는 없다. 백종원과 제작진은 수많은 다른 식당을 방문했지만, 백종원의 식당 매장은 아무도 방문하지 않고 분석도 하지 않았다. ‘흑백요리사’도 그런 과정이 전혀 없었다. 오로지 스튜디오 세트장 안에서만 평가했다. 참가자들이 대부분 식당 운영자들인데 말이다. 미슐랭이 그렇게 했다가는 난리가 났을 것이며 공신력과 권위도 오늘날과 같기 힘들었을 것이다.
근본적으로 백상예술대상은 공영방송이건 상업 방송이건, 토종이건 글로벌 OTT건 똑같이 취급해 최고의 프로그램을 선정하면서 그것이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 시상은 변화무쌍한 상황을 반영해야 의미가 있는데 이 점도 전제하지 않았다. 각자의 상황과 여건은 다르다. 절대 평가가 아니라 상대 평가가 중요한 이유다. 각각의 여건과 상황 속에서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내는가가 보통 사람들에겐 중요하다. 그것이 상이 갖는 우리 시대의 보편성이자 대중성이라고 할 수 있다.
백상예술대상은 자본과 시스템의 힘에 종속되는 현상이 강화되고 있다. 국내 영화 ‘하얼빈’의 제작비가 300억 원,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제작비는 600억 원이었다. 더구나 21세기 스마트모바일 환경에서는 대중문화를 팬들이 만들어 가는 상호성이 더 커지는데, 그 팬들을 도외시하고 오로지 한 명의 대상이나 사람만 선정하는 방식은 걸맞지 않다. 20세기 매스미디어 시대의 프레임에 19세기 예술 도그마에 빠져 있음을 말해줄 뿐이다. 이제는 팬들과 함께 누리는 잔치의 마당이 되는 게 우리 방식 즉, 글로컬 방식이 될 것이다.
필자 김헌식은 20대부터 문화 속에 세상을 좀 더 낫게 만드는 길이 있다는 기대감으로 특히 대중 문화 현상의 숲을 거닐거나 헤쳐왔다. 인공지능과 양자 컴퓨터가 활약하는 21세기에도 여전히 같은 믿음으로 한길을 가고 있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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