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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공사비 올려달라며 착공 지연' 현대건설, 한토신에 133억 원 배상 판결

기준 소비자물가지수보다 3배 높은 증액 요청에 갈등…법원 "정당한 지연 사유 없어"

2025.11.05(Wed) 10:46:03

[비즈한국] 현대건설이 신탁방식으로 진행되는 정비사업장에서 공사비 증액을 요구하며 착공을 미루다가 최근 133억 원의 손해배상 판결을 받은 것으로 비즈한국 취재 결과 확인됐다. 사업 시행자인 한국토지신탁은 현대건설과 1205억 원 수준의 공사 도급계약을 맺으면서 특정 시점부터는 소비자물가지수를 기준으로 공사비를 조정하기로 협의했는데, 이후 현대건설이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보다 3배가량 높은 수준으로 공사비 증액을 요구하자 갈등 끝에 계약 해제를 통보했다.

 

현대건설이 신탁방식으로 진행되는 정비사업장에서 공사비 증액을 명분으로 착공을 지연하다가 최근 133억 원의 손해배상 판결을 받은 것으로 비즈한국 취재 결과 확인됐다. 서울 종로구 현대건설 계동사옥. 사진=임준선 기자


서울중앙지방법원 제18민사부(재판장 류승우)는 지난달 21일 한국토지신탁이 현대건설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현대건설이 한국토지신탁에 132억 55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현대건설이 정당한 사유 없이 1개월 이상 공사 착공을 지연해 도급계약에 따른 계약 해제 사유가 발생했다고 봄이 타당하다”며 “현대건설은 한국토지신탁에 도급계약 해제에 따른 손해배상 예정액과 이에 대한 지연 손해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양측 분쟁은 대구 중구 78태평상가아파트 가로주택정비사업에서 시작됐다. 한국토지신탁은 2018년 10월 이 사업 시행자로 지정된 이후 2020년 5월 현대건설과 공사도급계약을 맺었다. 이듬해 9월에는 공사기간을 1개월, 공사비를 115억 원가량 늘리는 내용으로 변경계약을 체결했다. 최종 합의된 공사기간은 착공계 제출 후 39개월, 공사비는 1205억 원, 계약보증금은 공사비 10%였다. 78태평상가아파트는 2021년 5월 사업시행계획 인가를 받아 2023년 2월 주민 이주를 마쳤다.     

 

현대건설은 도급 변경계약 1년 뒤인 2022년 9월 한국토지신탁에 공사비 인상을 요청했다. 물가 상승과 설계 변경, 마감 변경 등을 이유로 공사비를 기존보다 488억 원 올려달라는 취지다. 증액 요청 금액 중 물가 상승분은 386억 원 수준이었다. 앞서 양측은 도급계약을 체결하면서 공사비 산정기준일을 2019년 5월로 하되, 2020년 9월까지는 공사비를 인상하지 않고 2020년 10월 이후 실착공까지는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을 기준으로 도급공사비를 협의해 조정키로 합의했다.

 

한국토지신탁은 이 같은 공사비 증액 요청에 2022년 10월부터 수차례 거부 의사를 밝혔다. 현대건설이 요구한 공사비 증액 규모가 도급계약 범위를 초과한다는 게 이유였다. 한국토지신탁은 현대건설 공사비 증액 요청에 거부 의사를 담은 공문을 발송하면서 철거공사 착수와 철거공사 수행계획 제출, 계약보증금 납부 또는 계약보증서 제출 의무를 이행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현대건설은 공사비 증액 없이는 앞선 의무를 이행할 수 없다고 맞섰다. 

 

현대건설이 요구한 공사비 증액 규모는 실제 한국토지신탁과 합의한 수준을 넘어섰다. 양측 도급계약에 따라 2020년 10월부터 현대건설이 공사비 인상을 요구한 2022년 9월까지는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을 기준으로 도급공사비를 조정하는데, 이 기간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8.42%에 그쳤다. 하지만 현대건설이 요청한 전체 증액 규모는 기존 계약 공사비 대비 40%에 달했다. 증액 요청한 공사비 가운데 물가 상승분만 따졌을 때에도 상승률은 32%였다.

 

결국 양측은 공사비 증액 다툼을 벌이다 결별했다. 한국토지신탁은 지난해 3월 현대건설에 철거공사 수행 계획을 제출하고 계약보증금을 납부하거나 계약보증서를 제출하라고 재차 요청했다. 같은해 4월까지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공사를 수행할 의사가 없는 것으로 간주하겠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현대건설이 이에 응하지 않자 한국토지신탁은 지난해 10월 현대건설에 계약 해제를 통보했다. 도급계약에 따른 약정해제권과 현대건설의 이행지체, 이행거절에 따른 법정해제권이 근거였다.

 

한국토지신탁은 계약 해제에 따른 손해 배상 책임을 물으며 지난해 11월 현대건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현대건설이 도급계약에 따라 예정된 손해배상금을 지불해야 한다는 취지다. 양측이 맺은 도급계약에 따르면 도급사인 현대건설의 채무불이행 등으로 계약이 해제되는 경우 계약보증금은 한국토지신탁에 귀속된다. 한국토지신탁은 앞선 규정에 따라 현대건설이 계약보증금(120억 5000만 원)에 부가가치세를 더한 132억 5500만 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계약 해제 책임이 현대건설에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현대건설은 공사에 착수할 의무가 있었음에도 도급계약에 따른 공사비 인상비율인 8.42%를 현저하게 상회해 총 공사대금 40%, 그 중 물가상승 명목으로는 32% 수준의 공사대금 증액을 요청하면서, 한국토지신탁이 도급계약을 해제한 2024년 10월까지 착공에 나아가지 않았다”며 “현대건설이 정당한 사유 없이 1개월 이상 공사 착공을 지연한 것으로 도급계약에 따른 계약 해제 사유가 발생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지적했다.  

 

현대건설은 이번 소송에서 소비자물가지수를 물가상승 지표로 삼은 계약 조항이 무효라고 주장했다. 소비자물가지수는 물가상승률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기준으로, 해당 조항을 적용하면 현대건설이 물가 상승 부담을 떠안게 된다는 취지다. 현대건설은 한국토지신탁의 우월적 지위로 이 조항에 관한 실질적 협의를 하지 못하고 계약을 맺었다고 주장했다. 이 밖에도 대외 경제 여건 변화와 착공 지연 등 앞선 조항 전제가 된 사정이 중대하게 변경돼 합의 효력이 소멸됐다는 주장도 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법정에서 기각됐다. 재판부는 시공자 선정 과정에서 양측이 나눈 공문 등을 미뤄 “현대건설이 도급계약 체결 과정에서 해당 조항을 수용하기로 하는 분명한 의사가 있었다고 봄이 합리적”이라며 “한국자산신탁이 현대건설에 대해 우월적 지위에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공사 발주처 지위에서 현대건설로 하여금 해당 조항을 도급계약에 포함시키도록 강요했다고 볼 만한 자료도 없다”고 판단했다. 해당 조항 전제로 삼았던 사정도 중대하게 변경되지 않았다고 판단됐다.

차형조 기자

cha6919@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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